김건모 – #007 Another Days – 도레미, 2001 질주를 지나 복고의 바다로 복고의 바람은 가요계에도 예외 없이 불어닥치는 것일까? 싸이의 이른바 ‘엽기 열풍’이 좀 잠잠해질 무렵, 핑클의 [Memories And Melodies]의 수록곡이 거리를 장악하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이어 김건모의 신작이 대박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아,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수를 중심으로 볼 때 이야기다. 누가 뭐라 해도 현재 가요계의 왕중왕은 [연가]에서 [애수]로 이어지는 편집음반이고, 편집자(?) 이미연과 이영애이기 때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멀리 1970년대 노래에서부터 1980년대 노래, 1990년대 초반의 노래들이 주크 박스처럼 좔좔 흘러나오는 핑클의 앨범을 ‘복고’라는 말로 구획 짓는다고 이의를 제기할 이는 별로 없을 듯하다. 그런데 김건모의 신작 역시 복고라… 1990년대 초 데뷔 당시의 김건모는 별다를 것이 없는 TV용 가수였다. 흑인음악에서 적당히(적절히?) 자양분을 취하는 것도, 노래면 노래, 개그면 개그 가리지 않는 전천후 엔터테이너로 맹활약하는 것도 히트 가수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으로 보이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끈적한 감정이 묻어나는 보컬 능력이 예사롭지 않다거나, 노래에 대한 고집과 성실함이 돋보인다는 ‘설’들은 부차적으로 취급되었다. 어쨌든 그는 “핑계”와 “스피드”로 이어지는 인기의 질주를 거듭하였으니까. 1997년 5집은 그에게 일종의 전기로 보인다. 데뷔 당시부터 그의 전매 특허였던 빅 비트의 하우스 댄스 곡들과 미디엄 템포의 R&B 곡들이 여전히 주를 이루고 있지만, 한결 깊어진 감성과 여유로운 곡 운용은 음악 따라 나이 먹어가는 성숙한 팬들을 위한 배려로 보였다. 배수진까지 치고 만들었다는 이번 신작 역시 명백하게 5집의 연장선상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신작에서는 때로는 신산스럽게 비춰질 정도로 잃어버린 것, 사라져 가는 것, 그것이 자아내는 아쉬움에 대해 노래하고 있다. 끈적임을 넘어 느끼하게(-_-) 들리기까지 했던 보컬은 한결 담백해졌고, 악기 편성 역시 단촐해졌다. 반면 사운드는 가장 편안한 상태로 귀에 꽂히게 조율된 듯 들린다. 타이틀곡 “미안해요”는 신작의 변화라면 변화, 미덕이라면 미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분출되는 감정은 어쿠스틱 위주의 절제된 편곡으로 ‘감성의 과잉노출’이라는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비껴나고 있다. 폴카 리듬이 익살스럽게 끼어든 “짱가”와 김건모의 음악적 파트너 최준영이 만든 하우스 댄스곡 “Double”은 성인을 위한 댄스 음악의 전범이 될 듯하다. 오현경이 가사를 썼다고 해서 앨범 출시 전부터 입도마에 오른 “정”은 명실상부한 ‘트로트의 21세기 형 현현’이라 할 수 있다. 여기까지만 보면 ‘가요의 복고’는 곧 ‘성인을 위한 음악’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보인다. 사실 그런 면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취향과 조류를 받아들일 여유도 의지도 없는 성인들에게 ‘익숙함’은 곧 ‘기억의 재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김건모의 신작이 일종의 복고로 비춰진다면 이는 “빗속의 여인”과 “여름밤의 꿈”을 리메이크한 선곡의 변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신작은 적당히 세월의 때가 스민 ‘익숙함’을 가장 최적의 상태로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인도하는 감성은 ‘지금 이곳’이 아니라 막연한 과거 어느 지점에 맞추어져 있다. 김건모는 분명 중년으로 넘어가는 ‘지금의 그’를 노래하지만 듣는 이들은 현재의 그에게서 과거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기억해야 할 대상이 수시로 바뀌고, 그에 맞춰 수효도 늘어나는 요즘 변화무쌍한 가요계에서 그 모습으로 있어만 주는 것으로도 복고풍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그다지 환영할 일이 못 될른지 모른다. 나이 들어 도전과 실험 정신을 발휘하려니 자칫 실패하여 ‘노추’로 비춰질까 두렵고, 자신의 색채를 유지하면 복고풍이라는 딱지를 들이대고…. 이래저래 중견 가수는 괴롭다. 허긴 우아하게 나이 먹는다는게 어디 쉬운 일인감? 20010531 | 박애경 ara21@nownuri.net 5/10 수록곡 1. 바보 2. Y 3. 미안해요 4. 짱가 5. Double 6. 정(情) 7. 빗속의 여인 8. 여름밤의 꿈 9. Goodbye Yesterday 관련 사이트 김건모 공식 사이트 http://www.gunm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