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이 – Fermata – IO Music, 2001 ‘잠시 쉼’이 필요한 토이적 서정의 완성 아직까지 토이를 무슨 그룹으로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만, 친절히 다시 안내하면 토이는 ‘제4회 유재하 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던 유희열과 윤정오에 의해 결성된 그룹이었다. 1994년 1집과 잠깐의 공백 이후 1996년 2집부터는 유희열이 주도하는 프로젝트로 바뀐다. 그리고, 지금 토이는 한국 주류 가요 씬에서 가수가 아닌 뮤지션으로 대접받는 몇 안되는 인물 중 하나이다. 2년 반만에 내놓은 5집 [Fermata](잠시 쉼 혹은 정류장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조금 길게 부르거나 연주하라는 늘임표’를 가리키기도 한다)은 고급스런 부클릿과 18곡의 수록곡에 김광민, 롤러코스터, 성시경, 윤상, 이승환, 이적, 조트리오 등의 초호화판 객원 가수까지(그까지 포함하면 한 앨범에 보컬만 13명이다). 참 많이 준비했다는 느낌을 주기 충분하다. 김건모의 예상 못한 대박을 제외하면 현재 판매고도 최고다. 그의 음악을 애타게 기다렸던 팬들이야 당연하겠고, 언론 방송 어디에서도 만족스럽지 않은 시각을 보여주는 곳은 없다. 그렇게 그는 또 한번 성공한 듯 보인다. 그의 음악은 크게 ‘아름다움’과 ‘고급스러움’이라는 단어로 표현된다. 밝고 경쾌한 곡에서나 “여전히 아름다운지” 같은 전형적인 ‘유희열표’ 발라드까지 슬픔이나 기쁨 모든 일상은 그의 음악 안에선 아름답게 표현되어 고급스럽게 다듬어진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는 다양한 스타일 속에서도 변함없는 ‘유희열표’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요즘 한참 방송을 타고 있는(그러니까 방송에 미는 곡인) “좋은 사람”은 경쾌한 멜로디와 함께 “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 이라는 토이다운 서정적인 가사를 들려준다. 이어지는 “내가 남자 친구라면”은 여전히 알싸한 기타 세션을 들려주는 함춘호와 드럼 프로그래밍의 가벼운 비트 속에 자신의 목소리로 일상을 담아내는 곡이다. 다음 곡 “언젠가 다시 만나면”은 “여전히 아름다운지”의 보컬 김연우가 다시 들려주는 ‘여전히 아름다운지 II’인데, 그가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분위기의 곡인 듯하다. “안녕 이젠 안녕”은 곡의 흐름이나 스트링, 피아노만으로 이루어진 편성, 건조한 곡 분위기 때문인지 류이치 사카모토의 “Rain”을 닮았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하지만, 표절이라기 보다는 그가 닮고 싶어하는 뮤지션의 영향이 녹아있는 느낌이다. 이어지는 “Complex”는 앨범 내에서 무척 튀는 훵키한 분위기의 곡이다. 조트리오의 보컬도 만족스럽지만 훵키한 연주와 하이톤의 보컬을 리드미컬하게 뽑아내는 프로듀서로서의 역량이 돋보이는 곡이다. “그 끝엔 너”에 이르면 언제일까 기다리고 있던 윤상이 나온다. 제3세계 음악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는 윤상의 텅빈 듯한 보컬과 미니멀한 김광민의 로맨틱한 재즈 피아노가 만나서인지 곡은 내내 여유 있고 자연스럽다. 다시 유희열의 보컬을 들을 수 있는 “목소리”를 지나면 세 번째 연주곡 “첫사랑”을 만난다. 싱클라비어의 음색을 표현하려는 듯한 유희열의 멜로디언 연주와 지누, 박인영의 코러스가 더해져 팻 메스니(Pat Metheny)를 듣는 듯한 느낌을 준다. 롤러코스터 조원선의 나른한 보컬이 매력적인 “기다립니다”, 토이표 음악과 가장 잘 어울리는 김연우가 다시 보컬을 맡은 발라드 풍의 곡 “마지막 노래”, 리코더와 기타만으로 이루어진 1분 58초짜리 연주곡 “잊진 않았겠죠”가 지나면 요즘 한참 뜨는 신인가수 성시경이 보컬을 맡은 “소박했던, 행복했던”을 만난다. 박효신을 닮은 매력적인 저음의 보컬에 아련한 옛 기억과 이별이라는 테마는 썩 어울린다. 영화 [화양연화]의 광고 문구 ‘두 사람이 있었다’를 보고 만들었다는 “두 사람”은 콘트라베이스와 피아노만으로 이루어진 연주곡이다. 다음 곡 “모두 어디로 간 걸까?”는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나 GRP 풍의 편곡과 긱스(Gigs)보다는 패닉에 더 가까운 이적의 보컬을 들을 수 있는 곡이다. “좋은 사람 (Sad Story)”은 세 번째 곡 “좋은 사람”을 달리 편곡해 이승환이 부른 곡이다(앨범에는 이철민이라는 가명이 적혀 있다). 늘 그랬듯이 마지막은 잔잔한 피아노에 유희열이 직접 보컬을 맡은 고즈넉한 느낌의 곡으로 마무리한다. 한국 주류 가요 씬의 조급함을 염두에 둔다면, 한 곡 한 곡 정성을 들인 흔적이 역력한 잘 만든 앨범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당황스러운 것은 그의 음악이 아니라, 그의 음악에 대한 절대적인 ‘반응’과 ‘지지’다(후자의 표현이 더 적절한 듯하다). 쉽게 거론되는 ‘비범하고 놀라운 음악적 성취’라는 표현이나 ‘대중적이면서도 뛰어난 음악성을 가진, 어쩌면 마지막일 듯한 뮤지션’이라는 표현이 그와 그의 음악에 과연 적절한 것일까. 자신의 음악에 대한 진지한 집중이 자연스럽게 많은 사람의 공감으로 이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그의 음악은 애초부터 하나의 지지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 그 자체의 완성도와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그의 음악은 단 한번도 ‘통속적인 고급스러움’과 “여성적 취향”에서 벗어난 적이 없는 음악이었다. 그렇게 5집까지 오는 동안 그는 단 한번도 변하거나 앞으로 나아가지 않았다. 물론 그에게 한국 주류 가요 씬의 벽을 뛰어넘는 ‘대안적인’ 음악을 기대하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에 대한 불분명하고 과한 지지가 그의 음악뿐 아니라 기존 가요의 외연을 넓히는 다양한 스타일의 시도를 제한하는 역할을 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대중 음악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에게서 배울 만한, 섬세한 토이적인 감수성이 더 많은 청자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선 지금 그에게 ‘잠시 쉼’이 필요한 듯 하다. 깊은 교감과 좋은 음악이란 스타일의 완성보다는 음악적 ‘성찰’과 더 가까우며, 뮤지션이라는 호칭의 실체 또한, 자신의 음악을 찾아가는 과정 중에 드러나는 것 일뿐이다. 20010526 | 박정용 jypark@email.lycos.co.kr 5/10 수록곡 1. Fermata 2. 그대 먼곳만 보네요 3. 좋은 사람 4. 내가 남자 친구라면 5. 언젠가 우리 다시 만나면 6. 안녕 이젠 안녕 7. Complex 8. 그 끝에 너 9. 목소리 10. 첫사랑 11. 기다립니다 12. 마지막 노래 13. 잊지 않았겠죠? 14. 소박했던, 행복했던 15. 두 사람 16. 모두들 어디로 간 걸까 17. 좋은 사람 (Sad Story) 18. 미안해 관련 사이트 토이 공식 사이트 http://www.toymusic.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