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세 – Chapter 13 – Wad People/DMR, 2001 클리셰만 남은 한국형 발라드 1세대 기수 198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이지 리스닝(좁혀서 이른바 ‘팝 발라드’) 가요사에서 이문세는 제 1세대의 기수로서 의미를 가진다. 여기에 이문세 디스코그래피 초기부터 동고동락한 작사작곡가 이영훈은 반드시 동격 언급되어야 한다. 1970년대의 포크의 자취가 역력한 1983년 데뷔 앨범 [이문세 1]에서 선보인 송창식 풍의 창법도, 신중현의 손길 아래 만들어진 두 번째 앨범 [The Best](1984)에서 시도된, 지금의 이문세에서는 납득하기 힘든 인스파이럴 카피츠(Inspiral Carpets) 풍의 사이키델릭 록도 당시 청년 오락 프로그램이었던 ‘영 11’ 의 평범한 MC를 넘어서는 자리로 그를 옮겨 주지는 못했다. ‘가창력은 뛰어나지만 스타성이 결여된 가수’에서 ‘한국형 발라드의 비전을 제시하는 탁월한 목소리’로 도약한, 이른바 ‘이문세식 발라드’의 원년은 1985년의 [이문세 3]부터다. 여기서 이영훈은 “난 아직 모르잖아요”를 빅 히트시키면서 그보다 먼저 이문세적 음역을 발굴한 유재하의 세를 앞지르는 계기를 마련한다. 이후 확립된 이문세/이영훈의 ‘Twin Lee’s star system’은 [이문세 4](1986), [이문세 5](1988)로 계속되면서 198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제2 세대 이지 리스닝/팝 발라드 가수들(변진섭, 신승훈, 이승환, 조하문, 오석준, 박정운, 박학기 등)의 활발한 선전에도 세를 내주지 않는 위상을 확보한다. 복잡한 화성이 거의 탐미주의적이기까지 한 발라드 선율과 함께 죽음 앞에 선 생의 애착을 시한부 미학의 가사로까지 정련한 1988년작 [이문세 5]는 이문세 음악 인생의 정점으로서, “광화문 연가”,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시를 위한 시”, “기억의 초상”과 같은 수록곡들은 한국형 발라드의 최고 수준으로 평가할 만하다. 이후 1991년 7집 앨범 [이문세 7]의 “옛사랑”이 근근히 공중파를 타는 것에 그치는 것으로 이 공생관계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하자 유희열, 김현철, 조규찬 등의 뮤지션들이 이문세의 상업적 유효력 확보를 위해 투입되기도 하지만 이전 만한 아우라를 복원하는 데에는 실패한다. 1999년에 복귀, 레트로 스윙 풍의 “애수”를 선보이는 것으로 재개된 이문세/이영훈 시스템이 이번에 내놓은 [Chapter 13]은 음악 갱년기 장애를 앓는 이영훈 때문에 이문세의 ‘생사 확인’ 이상의 의미를 드러내지는 못할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거의 전적으로 이영훈 탓이다. R&B, 블루스, 재즈 등의 다채로운 색채가 엿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나, 이지 리스닝의 상투적인 틀에 머무르는 다채로움이라 답습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가령 앨범 전반에 거쳐 남용되다시피 한 트로피컬 발라드 풍의 사운드와 가성의 여성 코러스가 그렇다. 많지 않은 악기 편성으로도 화려하면서도 절제된 비극미를 가능케 했던 이 시스템의 전성기를 회상할 때 혼 섹션, 코러스, 다층적 신서사이저 텍스처를 동원하고도 노래방 반주 음악 같은 ‘야메’스러움만 느껴져 민망할 정도다. 타이틀 곡인 “기억이란 사랑보다…”는 전형적인 이영훈/이문세의 사운드라 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예전의 흡인력에는 못 미치고 있다. 라틴 팝 R&B 트랙인 “여인의 향기”는 김건모와의 하모니가 인상적이지만 전술한 반주 문제 때문에 귀에 거슬린다. “원치 않는 기억”에 이르면 이 싸구려 라틴 재즈 풍의 반주는 극에 달한다. 간소한 피아노 인트로로 시작되는 “아름다운 사랑”에 이르러서야 겨우 숨을 돌릴 수 있을 정도다.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곡은 “오늘 하루”정도. 1980년대, 해바라기 풍의 이지 리스닝 포크 사운드와 송창식 풍의 창법이 복고적이지만 안이하지 않다. 포크의 어법이 전형적인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풀피리를 연상시키는 신서사이저, 이문세의 세련되고 진중한 음색이 단아한 노스탤지어를 발하는 이런 노래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 아쉽다. 셀프 커버 곡인 “기억의 초상”(5집의 히트곡)은 오리지널보다 재지 블루스의 색채를 더 가미했지만 ‘클래식 이문세’를 서글프게 회고하는 것 이상의 울림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카바레 블루스’의 ‘어덜트’한 정서가 지나치게 노골적인 “窓”만큼 나쁘지는 않다. 이문세가 블루스의 관능을 재현하려고 애쓰고 있는 것은 알겠는데 작위적인 어색함밖에는 느껴지지 않으니 말이다. 결론적으로 이 앨범은 단명성 한국 가요 문화에서 비교적 장수해 온 가수/작곡가 시스템의 말로를 시사하는 예라 유감스럽다. 과거 스타일에서 더이상 창의적이고 매력적인 재현을 반복하지 못하고 껍데기만 다른 스타일들로 안이하게 뒤덮어 버리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은 한국 이지 리스닝 음악 문화의 고질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은퇴하지 않겠다면 ‘반(反)’까지는 아니더라도 ‘비(非) 이영훈적’인 모색을 해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무엇보다 이문세 자신의 소극적인 기획력 탓을 하게되는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이다. 20010528 | 최세희 nutshelter@hotmail.com 4/10 수록곡 1. 내가 멀리 있는 건 2. 기억이란 사랑보다… 3. 女人의 향기 (with 김건모) 4. 원치 않는 기억 5. 아름다운 사랑 6. My Wife 7. Memory 8. 오늘 하루 9. 기억의 초상 10. 기억이란 사랑보다 2 11. 窓 관련 사이트 이문세 공식 사이트 http://user.chollian.net/~bumisi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