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RCnet 방문기 지난번 언급했지만 이번 일본 방문의 목적은 일본음반 물류센터인 NRCnet이란 곳을 방문하는 것이었다. NRCnet은 일본 빅터(Victor)사가 투자하여 만든 회사다. 일본 빅터는 JVC라는 이름으로 하드웨어를 제조함과 동시에 음반 소프트웨어 사업도 겸하는 메이저 음반사 중 하나다. 소니가 투자한 JARED(Japan Record Distribution)과 더불어 음반물류의 양대 지주로 군림하고 있다. 일본의 음반배급 시스템을 그림으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그림 설명: 출처: 김휴종, “한국 음반산업 연구”, http://seriecon.seri.org/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 일본의 음반산업에서는 제작되는 음반 대부분이 두 물류센터를 거쳐 도매상과 소매상으로 배급된다. 여러 제작사(=레이블)가 물류센터에 위탁하여 ‘공동물류’를 수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개별 제작사(=레이블)가 개별적으로 물류를 수행하는 것보다 공동물류를 수행하는 것이 비용상 효율적이라는 인식이 발생하여 탄생한 것이 일본형 음반물류센터다. 일본의 음반시장규모는 7,000억 $ 수준으로 350억 $ 수준인 한국의 20배 정도이니 이런 식으로 물류를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도 들었다. 간단히 말해서 일본의 음반사에는 ‘영업부’가 없다. 일본에서는 NRCnet이나 JARED의 트럭이 한 대 움직이면서 음반제작사 사무실에 들러 물건을 가져와서 도매상이나 소매상에 물품을 가져다주는 반면, 한국에서 음반사마다 한 대의 봉고차가 여러 도매상들에 물품을 전달해 주어야 한다(그러니까 교통체증의 하나의 요인이다 -_-). NRCnet은 도쿄에서 자동차나 전철로 1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우리 일행은 요코하마에 잠시 내려 관광을 한 뒤 그곳에 오후에 도착했다. 요코하마에서 초고층 빌딩을 들렀는데 솔직히 이런 코스는 나는 정말 싫다. 이건 마치 서울 사는 사람은 63 빌딩이나 남산타워에 놀러가지 않는 것과 같다. 지방에서 관광버스 대절하여 서울관광 온 할머니, 할아버지나 좋아할 곳이지. 그러니까 그런 시골영감 취급받기 싫었다는 이야기다. 오죽하면 그 유명하다는 빌딩 이름마저 까먹었을까. 오후 1시 30분 경 NRCnet을 찾아갔다. 도쿄와 요코하마의 빌딩 숲에 질려 있다가 2-3층 정도의 낮은 건물들이 있는 소도시의 모습은 매우 정겨웠고, NRCnet이 위치한 공단지역도 공해도 별로 없이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곳은 40,000㎡, 그러니까 18,000평의 부지를 가진 거대한 곳이었고 종업원도 250명이 넘는 곳이었다. 이곳은 NRCnet의 전체 조직의 센터이자 일본의 관동지역(나고야를 기점으로 혼슈의 동쪽 지역)을 커버하는 곳이었다. 여기 외에도 삿뽀로, 오사카 등지에 물류센터가 지점망으로 있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를 비롯하여 우리 방문단을 맞이한 사람은 한국기업으로 치면 부장쯤 되는 흰머리의 일본인이었다. 그의 브리핑은 일본 음식처럼 군더더기 없이 정갈해서, 내용 없이 장광설이 많은 한국의 사장님들과는 퍽 대조적이었다. 현재 NRCnet에 물류를 위탁한 업체는 350개 사인데, 설명에 의하면 “프레스 시설(공장)과 첨단 스튜디오를 보유한 거대 ‘메이자’부터 아티스트 혼자서 자기 아파트에서 운영하는 ‘인디즈’까지 망라한다”고 했다. 또한 소매점에서 주문이 들어오면 “주문 ‘아이떼무’ 수가 테이프 한 개라도” 다음날까지 배송해 준다는 설명도 곁들였다. 설명을 마친 뒤 일행은 실제 물류가 이루어지는 현장으로 들어가 ‘촌놈 서울 구경하는 기분’으로 자동화된 시스템을 견학했다. 인상적인 것은 방대한 규모보다는 치밀한 시스템이었다. 창고에는 20만종의 아이템이 꼼꼼하게 분류되어 있었다. 20만종 그러면 감이 없어서 산수를 해봤다. 한국에서는 보통 하루에 두 종(업계 용어로 ‘따블’)의 음반이 발매된다. 한때 1년에 1,000 종을 넘은 때도 있었지만 요즘은 600-700 종 정도다. 1,000종으로 친다고 해도 20만종이면 200년 걸릴 물량이다. 물론 일본 아티스트의 음반만이 아니라 외국 아티스트라도 일본에서 제작한 것이면(이른바 라이센스 음반) 여기에 포함시킨다는 점을 고려해야 하겠지만. 20만종이 꽂혀있는 라이브러리에서 특정 음반을 뽑아오는 일은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매우 간단했다. 어떻게 설명할지 잘 모르겠는데 대충 이런 식이다. 편의점에서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도구로 주문서에 적힌 바코드를 삑 누르기만 하면, 사람의 손을 하나도 거치지 않고 콘베이어 시스템을 거쳐 CD가 이동하여 포장하는 사람이 서있는 장소에 툭 떨어졌다. 신기하고 놀라와라. 또한 주문량이 그리 많지 않은 아이템들을(이른바 구보(舊譜)들의 경우를) 소팅하기 위해 개발했다는 자동 분류기(sorter)는 별도의 위치에 있었다. 담배 자판기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이 소터의 발명가는 70줄에 접어든 작은 체구의 노인이었는데, 맙소사 그는 NRCnet의 ‘회장님’이었다. 게다가 비디오는 무게가 많이 나가니까 위로 올린 다음에 콘베이어 시스템 위에 떨어뜨리고 CD는 가벼우니까 그냥 아래로 떨어뜨리는 방식도 일본인다운 꼼꼼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2층에 올라가서는 온라인 배급 사업을 위한 시스템도 보고 왔다. 공장 내부는 ‘영업비밀’이기 때문에 사진 촬영을 못하게 해서 사진은 찍어올 수 없었다. 게다가 견학 이후 업무제휴를 위한 회의는 NRCnet 측에서 ‘경영진만 들어오라’고 요구해서 나를 포함한 6명은 밖에서 어슬렁거려야 할 판이었다. 물론 무료하게 기다리는 것을 참을 성질이 아닌 나는 ‘도쿄로 가는 기차편이 없느냐’고 가이드에게 물어보았다. 때마침 퇴근을 하는 중년의 직원을 만나 나는 그를 따라 셔틀 버스를 타고 또 한번 자유를 누리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물론 약간 불안한 마음에 K일보 O기자와 H일보 P기자를 꼬셔서 동행했다. 중년의 일본인 직원은 매우 선량해 보였다. 다행히도 영어를 조금 하는 사람이었는데 알고 보니 BMG 일본 지사에 근무하다가 이곳으로 옮겼다고 했다. 전형적인 일본 직장인처럼 그도 여기 근처의 집에서 도쿄의 직장까지 매일매일 1시간 30분 이상 걸려 출퇴근하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비틀즈를 좋아해서 음악 비즈니스에 들어오게 되었다는 말도 들었고, 비틀즈의 일본 공연도 보았다고 하면서 잠시 그때를 그리워하는 표정도 지어 보였다. 전철로 하라주꾸로 전철에는 사람이 매우 많았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해질녘의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역시 외국에 나가서 ‘이방인의 고독’을 느끼면서 개폼 잡는데는 뒷골목 걷기와 전철 타기가 제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루 리드(Lou Reed)의 “Coney Island Baby”와 ‘휘슈만주(Fishmans -_-)’의 “Long Season”을 꺼내 들으니 이보다 더한 멜랑꼴리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은 하라주꾸로 향했다. 이상했던 것은 같이 동행했던 기자 두 사람도 ‘나이 탓’을 하면서 ‘시부야나 하라주꾸에 같이 가자’는 나의 제안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는 점이다. 별 수 있나. 혼자 가는 수밖에. 불행히도 그날 저녁은 비가 많이 와서 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하라주꾸의 구석구석을 둘러보는 일은 할 수 없었다(다행히도 다음 날 오전의 자유시간에 다시 한번 하라주꾸에 올 수 있었지만 아무래도 밤에 들르는 것보다는 못했다. 시간도 없어서 차근히 들여다보지도 못했다. 어쨌든 이하는 두 날의 경험을 종합한 것이다). 처음에 하라주꾸라는 곳을 봤을 때는 ‘다른 곳이나 똑같네’였다. 대로변은 그랬다. 아주 ‘트렌디’한 옷가게, 커피 숍, 음식점이 있어서 ‘뭐야~’라는 말이 입안을 감돌았다. 역시 준비없는 자의 한심함이었다. 그림 설명: 하라주꾸(原宿) 지도 그때 문득 ‘하라주꾸에서 가볼 만한 곳은 전철 역 근처다’라고 누군가 한 말이 떠올라서 전철역으로 향하는 길을 물어본 뒤 골목을 들어서자 드디어 내가 찾던 곳이 나타났다. 촌놈티 내는 것 같아서 낯이 뜨겁지만 하라주꾸는 홍대 앞과는 조금 다른 면이 있었다. 그러니까 내 말은 홍대 앞은 오렌지족 연놈들이 드나드는 삐까번쩍하고 ‘팬시’한 장소와 인디 어쩌구하는 놈년들이 드나드는 ‘후줄근한’ 장소가 구분되어 있는 반면, 하라주꾸는 두 가지가 통합되어 있었다. 좁은 거리 양면으로 단층 혹은 2층의 건물이 늘어서 있었는데, 1층은 다양한 종류의 물건을 판매하는 숍들이 늘어서 있었고 2층은 라이브 클럽이나 커피숍들이 있었다. 내가 들른 상점은 세 군데였다. 하나는 딸내미에게 줄 선물을 고르러 들어간 문구점이었다. 오전 시간이었는데도 땡땡이를 친 여자애들이 득시글거리고 있었는데 이상했던 점은 ‘학생용’ 뿐만 아니라 ‘유아용’ 물건도 꽤 많았다는 점이다. ‘저런 걸 누가 사나? 엄마가 애들 사다 주나?’라고 생각할 무렵 여중생쯤 되는 여자애가 한국에서 유치원생들이나 가지고 놀 퍼즐 같은 걸 집어드는 걸 보았다. 일반화시키는 말은 위험하겠지만 일본 음악은 왜 인디라도 하나같이 예쁜이, 깜찍이 같은지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또 하나. 이곳의 이름은 ‘아톰 숍’ 비스무레한 것이었는데, 아톰이라고 하면 이 아저씨의 유년 시절의 꿈을 주었던 존재가 아닌가. 그 시절 영화 포스터의 색감(약간 바랜 듯한 색감)으로 아톰이 표지에 나온 공책을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톰을 캐릭터로 한 각종 상품이 나열되어 있는 그곳을 보니 수집에 관한 한 어느 민족도 따를 수 없다는 일본의 면모를 다시 한번 볼 수 있었다. 또 한 군데는 여성용 속옷 가게였다. 오해하지 말라. 추상같은 사모님한테 빈손으로 갈 때의 낭패감을 면하기 위한 용기(?)였으니. 그곳에는 각종 유형의 브래지어, 팬티, 양말 등이 놓여 있었는데 특히 내 눈에 인상적이었던 것은 메이드 인 재팬 특유의 색감이었다. 일본은 뭘 만들더라도 색깔이 참 ‘원색적이다’는 느낌을 준다. 나쁜 뜻은 아니고 보통 한국인의 감성으로는 ‘첫 눈에는 쏙 들어와도 쉽게 질린다’는 말이 나올만한 색감 말이다. 물론 상점 안으로 들어갔더니 색감보다 더욱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 그건 팬티의 디자인이었는데 고무줄 없이 옆에 끈이 매듭지어진 팬티는 그렇다고 치더라도 좌우가 ‘비대칭’인 팬티도 있었다(각자 상상하기 바람). 이 나이에 차마 그런 걸 살 수는 없고 그래서 평범한 디자인을 한 ‘3장에 만원 짜리’ 몇 개를 산 뒤 나왔다. 얼굴이 시뻘개져서… 생각해보니 서울에도 그런 곳이 많은데 내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일본인 아가씨가 계속 날 보고 실실 쪼개서 ‘왜 그러나’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가이드한테 들은 말에 의하면 일본 남자들 중에 ‘팬티 도둑’이 그렇게 많다고 한다. 일종의 변태일텐데 가끔 잡히는 사람들 대부분은 평소에는 멀쩡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그들 중에는 작업이 시원치 않으면 가끔 ‘구입’도 한다고 하는데 ‘아마 그런 사람으로 본 것 같다’고 말해서 혹시나 했던 마음이 완전 묵사발되어 버렸다.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중고 음반 숍이었다. 지난번에 언급한 북오프(bookoff)는 대로변에 있었지만, 이 거리에도 중고 음반숍이 많이 있었고 오히려 ‘매니아 지향적’이었다. 아마도 [weiv] 독자들의 취향에는 더 맞을 것 같다. 규모는 크지 않더라도 필요한 것만 있는 곳 말이다. 마치 ‘향’, ‘상아’, ‘씨티비트’ 같은 그런 곳이다(물론 다른 곳에 더 좋은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단, 타워 레코드나 HMV도 그랬지만 일본의 음반 숍의 디스플레이는 한국인에게 좀 불편이 있다. 왜냐하면 가다까나 일본어로 타이틀이 쓰여 있거나(라이센스 음반의 경우) 수입음반이라고 하더라도 종이에 가다까나로 적어서 그게 보이도록 꽂아 놓기 때문이다. 가다까나를 읽을 줄 알더라도 ‘마꾸노나루도 하무바가’가 ‘McDonald Hamburger’임을 알 수 있는 별도의 독해력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라이센스 음반을 내가 샀던 이유는 거기엔은 정말 충실한 정보를 담아 정성 들여 적은 해설이 있고(물론 ‘입장’은 별로 없다 -_-), 오리지널 음반에는 없는 스페셜 트랙 같은 것들도 심심찮게 있다는 점이다(이건 언젠가 정식으로 글을 하나 쓸 예정이다). 아무튼 딱히 무언가를 구매할 생각은 없었는데 까에따누 벨로주(Caetano Veloso)와 아쿠아리움(Akvarium: 러시안 록의 지존)의 LP를 발견하니 이미 오버한 예산에도 신경쓰지 않고 지갑을 열어야 했다. (근데 아직껏 듣지도 않고 고이 모셔두고 있다 -_-). 하라주꾸는 친구 한두 명과 더불어 저녁 시간에 차근차근 들러보면 오밀조밀하게 구경할 수 있는 곳이다. 아저씨야 그럴 나이도 지났지만 혹시라도 ‘후지 록 페스티벌’ 같은 데 들렀다가 돌아오는 길에 무리해서라도 꼭 한 번 들르길 권한다. 그런데 하라주꾸 역시 이상한 면이 있었다. 무언고하니 바로 옆에 신사(神寺)가 있는 것이었다. 최첨단과 초보수의 공존이라는 저번에 써먹은 말을 다시 한번 쓸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다. 20010514 | 신현준 homey@orgio.net * 다음 호에는 한국에 돌아와서 참가한 한국음반산업의 개혁을 위한 공청회에 대한 이야기를 전해 드립니다. 관련 글 서울 촌놈 아저씨, 일본 음악산업 엉터리 시찰기 (1) – vol.3/no.9 [2001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