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515073219-remupR.E.M. – Up – Warner, 1998

 

 

여전한 주제, 다른 방식, 새로운 출발

칙칙칙칙 칙칙칙칙… R.E.M.의 1998년작 [Up]의 첫 곡은 드럼 머신 소리로 시작한다. 1980년에 결성된 이후 근 20년 동안 처음 있는 일이다(그 전해에 나온 [Electrolite]의 싱글(EP)에 실린 “King Of Comedy”(808 State Remix) 같은 예외는 있었지만). 마이클 스타이프(Michael Stipe)는 R.E.M.의 음악을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R.E.M. 음악의 비밀은, 마이크는 베이시스트처럼 베이스를 치지 않고, 피터는 기타리스트처럼 기타를 치지 않고, 나는 가수처럼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단지 빌만이 그것을 한데 뭉쳤죠.” 그러나 이제 마이클은 이런 말을 농담처럼 슬렁슬렁 던지는 일을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다시 빌 베리(Bill Berry)가 순회 공연 도중 쓰러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1997년에 고단한 밴드 활동을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R.E.M.은 “네 명이 다 모일 때는 호흡이 잘 맞았지만, 한 명이라도 빠져 나가면 호흡이 잘 맞지 않았죠”라는가 “네 명 중 하나라도 빠지면 R.E.M.은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라는 말을 거두고, 새로운 드러머 없이 세 명만이, 드럼 머신과 키보드 소리를 노출하여 드러머 빌 베리의 빈 자리를 굳이 감추지 않고 다시 시작하고 있다.

[Up]은 드럼 머신도 드럼 머신이지만, “hey, hey”라고 신경질적인 외침으로 도발적으로 시작하는 업템포의 포크 록인 “Lotus”를 제외한다면 거의 고즈넉한 발라드로 채워져 있다는 점에서 큰 변화를 시도한 것이다. 열두 장의 정규 앨범 중에서 ‘쟁쟁거리는 기타 팝(jangly guitar pop)’이라는 R.E.M.의 정체성과는 가장 먼 앨범이다(“Daysleeper”만이 거의 유일하게 쟁쟁거리는 기타가 주도하는 곡이지만 이 곡 역시 R.E.M.의 전형적 사운드와는 거리가 있다). 그 발라드들의 틈에는 비틀스 풍의 코러스를 시도한(마이클 스타이프는 일찍이 ‘비틀스 음악에 조금의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다’고 표명한 바 있다) 아름다운 피아노 발라드 “At My Most Beautiful”처럼 약간 ‘오버’한 것 같은 곡도 있고, 레너드 코언(Leonard Cohen) 식의 웅얼거리는 멜로디를 드럼 머신으로 풀어낸 기이한 분위기의 “Hope” 같은 곡도 슬쩍 끼어있지만, 전반적으로 쓸쓸하고 때로는 음울한 발라드들이다.

[Up]은, 음악적 성격은 조금씩 달리했지만 내용상으로 본다면 1991년 [Automatic For The People] 이후 지속해온 ‘내면이라는 미궁 속으로의 기약없는 여행’의 연장선 상에 있다. 나지막하지만 설득력있는 마이클의 비음 섞인 목소리는 여전히 주문과도 같은, 비밀스런 가사를 중얼거리고 있다. “당신이 찾아낸 건 나야 / 나는 뒤죽박죽이야 / 당신은 공기 중에 있고 / 나도 공기 중에 있어 / 그리고 나는 당신을 숨쉬고 있지”(“You’re In The Air”) 이례적으로 앨범 부클릿에 가사를 빽빽이 써놓았지만 알쏭달쏭한 건 마찬가지다(사실 이 정도면 이전의 R.E.M.에 비해서 충분히 알아먹을 만한 가사다. R.E.M.의 팬이라면 여기서 ‘당신’이 무엇일지는 금방 알 수 있다). “You’re In The Air”, “Daysleeper”를 비롯한 거의 모든 곡에서 기표없이 떠도는 마이클의 모호한 가사는 한밤 중의 몽롱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키보드와 현악 사운드의 풍경과 잘 어우러진다. 하긴 “Nightswimming” 이후 R.E.M.은 ‘밤의 사람들’이었다. 밤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리고 음악 또한 그렇다(사운드는 지시 대상이 없으므로 더욱더 그렇다). R.E.M.의 [Up]을 지배하는 정서 중 하나가 바로 ‘밤의 정서’다.

p. s.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은 열두 번째 곡 “Diminished”에서 음악이 잦아들면서(4분 59초) 시작하는 숨어있는 곡 “I’m Not Over You”, 그리고 1분이 채 안 되는 이 소품의 여운을 간직한 채 다음 노래인 “Parakeet”가 시작되는 부분까지다. 이 앨범에서 마이클의 목소리가 피로감에 휩싸인 신경이 예민한 사람의 목소리처럼 느껴진다면, “I’m Not Over You”를 노래한 마이크 밀스(Mike Mills)의 목소리는 조금 불안하지만 듣는 이에게 채 도달하기 전에 부서져버리는 공기 방울처럼 가볍고 맑으며 덤덤하게 들린다. 이 곡으로서 밤은 끝나고 아침이 시작된다. 19981204/revised 20010504 | 이정엽 evol21@weppy.com

8/10

수록곡
1. Airportman
2. Lotus
3. Suspicion
4. Hope
5. At My Most Beautiful
6. The Apologist
7. Sad Professor
8. You’re In The Air
9. Walk Unafraid
10. Why Not Smile
11. Daysleeper
12. Diminished
13. Parakeet
14. Falls To Cli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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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lling Stone] 특집 R.E.M. A-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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