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1년 1월 11일 장소: 베이징 인터뷰/사진: 조성관 통역: 취앤요우(權友) 베이징의 ‘명동’ 격인 왕푸징(王府井)이나 시단(西單) 등지의 대형 슈퍼마켓에는 ‘사회주의’ 국가라는 점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로 다양하고 많은 상품이 구비되어 있다. 질레트, 에비앙 등 서양에서 직수입한 브랜드의 상품까지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서 쇼핑을 하는 베이징 사람들의 모습은 풍요로워 보이고, 상품의 가격 또한 만만치 않은 수준이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조금만 벗어난 뒷골목에는 2-3위엔(元, 1위엔 = 약 140원) 정도로 한끼를 때울 수 있는 허름한 국수가게가 즐비하며, 허름한 차림새로 시끄럽게 떠드는 중국인들로 가득 차 있다. 심지어 짐을 실어 나르는 마차도 볼 수 있다. 베이징 출신 일렉트로니카 밴드 슈퍼마켓(超級市場: Supermarket)은 왕푸징 같은 화려한 거리와 어울린다. 차가운 전자음으로 재현되는 그들의 음악은 ‘현대적’이며, 일렉트로니카답게 가사가 거의 없거나 있어도 웅얼거리는 수준이기에 침묵하는 것 같다. 가사의 비중이 적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록을 옹호하는 중국인들은 슈퍼마켓과 같은 ‘電子音樂'(electronica의 중국식 표기)을 가리켜 “현실에서 일탈한다”고 비난하기도 한다. 그 이유는 원래 일렉트로니카는 영국인이나 미국인의 생활 속에서 발생한 음악인데, 당나귀 마차를 몰고 다니는 중국인들에게 어떻게 맞겠냐는 것이다. 이런 비난에 대하여 슈퍼마켓의 리더 위싼은 수긍하지도, 부정하지도 않았다. “나는 음악을 창작할 때 음색, 리듬을 통한 정서의 변화에 집중한다. 일상생활의 진실을 음악 속에서 표현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의 두 번째 앨범은 베이징의 변화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는 로큰롤 밴드들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 단지 음악적인 형식이 다를 뿐이다.” 과연 위싼은 베이징에서 ‘영국인’의 생활을 하는 것일까. 그의 차림새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허베이(河北) 평원으로 몰려든 혹독한 서북풍에 베이징은 몹시 추웠고, 그는 허름한 옷차림에 우스꽝스럽지만 무척 따뜻해 보이는 벙거지 모자를 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가 즐겨 들었던 음악은 영국산(産)이 많았다. “음악은 듣기 좋으면 다 좋다. 나는 굳이 일렉트로니카만 선호하는 게 아니고 재즈도 즐겨 듣는다. 어쨌든 포티스헤드(Portishead), 트리키(Tricky), 큐어(Cure), 디제이 섀도(DJ Shadow), 코넬리우스(Cornelius), 퓨쳐 사운드 오브 런던(Future Sound Of London) 등을 자주 들었다.” 베이징에서 발간되는 음악잡지(이자 레이블이기도 한) [모던 스카이(Modern Sky)]는 슈퍼마켓의 2집 [七種武器(7 Weapons)]에 대해 ‘Future Sound Of Beijing’이란 찬사를 보냈다. 이 말대로 위싼은 슈퍼마켓이 “중국적인 음악을 연주한다”고 단호하게 언급했다. 그렇다면 이들에게 어떤 것이 ‘중국적’인 것일까. 중국의 3대 로커 중 하나로 불리는 장추(張楚)와 같이 유려한 가사로 고달픈 현대 중국인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슈퍼마켓 2집의 곡명은 모조리 알파벳 ‘S’와 트랙 넘버로만 적혀있다. “‘S’로 곡명을 적은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녹음을 하는 중 그게 자꾸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두 번째 앨범에서 이성적으로 정서를 표현했다. 정서적인 부분으로만 채워졌던 1집과는 다르다.” 슈퍼마켓의 데뷔 앨범 [模洋(The Look)]은 1998년에 발매되었다. 현재 이 앨범은 절판되었기 때문에 구할 길이 없었다. 대신 1998년에 발매된 컴필레이션 [Modern Sky 2]에 수록된 “芒果也憂傷(망고도 근심으로 슬퍼해요)”와 잡지 [Modern Sky] 2000년 1월호의 부록 VCD에 수록된 “meigui公園(장미공원)”만 들을 수 있었다. 그의 말대로 데뷔 앨범의 수록곡은 보다 감상적이며 ‘중국적’이었다. 우선 2집과는 달리 가사가 보다 뚜렷하게 들렸으며, 끈적거리는 듯한 느낌(그건 경극을 보면서 느끼는 것과 비슷하다)을 받았다. 이런 색채는 두 번째 앨범에서 지워지고 전체적으로 차가운 느낌으로 대체된 것 같았다. 과연 어떻게 ‘이성적으로 정서를 표현’한다는 것일까. 우선 그에게 샘플러를 사용하는지 물어봤다. “아니다. 우리는 루프(loop)도 별로 쓰지 않는다. 음 하나 하나를 신서사이저를 통해 정교하게 만들기 위해 애썼다. 기타로 연주할 때도 있고,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이용하기도 한다. 첫 번째 앨범을 만들었을 때는 스튜디오 설비가 좋지 않았지만, 두 번째 앨범은 보다 나은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 슈퍼마켓의 앨범 판매량은 1, 2집 각각 3만장 정도라고 한다. 또 그들의 앨범은 주로 베이징이나 텐진(天津)에서 팔렸다고 한다. CD의 경우 해적판이 거의 대부분인 중국(2000년 불법복제 비율 세계 2위, 1위는 러시아)에서 인기의 척도는 얼마나 많이 복제되느냐로 잴 수도 있을 텐데, 슈퍼마켓의 복제품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음악으로 먹고사는 ‘전업 뮤지션’인지 궁금했다. “아니다. 나는 대학에서 디자인을 전공했고, 현재 디자인설계 관련 일을 하고 있다. 다른 멤버들도 마찬가지로 각자 직업이 따로 있다.” 중국의 직장인은 한국과 다르다. 아침에 7시 30분까지 출근하지만 점심시간은 12시부터 오후 2시 30분까지이며 6시경에 퇴근한다. 따라서 한국보다는 여유가 있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이후 만났던 젊은 중국 뮤지션들도 모두 자기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음악만 해서는 먹고살기 힘들다는 말도 된다. 어쨌든 직장 때문에 라이브 활동은 힘들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1년에 2-3번 베이징에서 라이브를 한다. 베이징에 있는 클럽들의 음향설비는 우리 음악을 연주하기에 알맞지 않은 편이다. 그리고 우리한테 개런티를 주고 청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베이징의 라이브 클럽의 숫자는 서울보다 많다. 서울은 홍대 앞에 주로 오순도순 모여있는 데 반하여, 베이징은 시내 중심, 특히 술집들이 집중되어 있는 싼리툰(三里屯) 뿐만 아니라 시 외곽에도 적지 않다. 대부분의 클럽은 서울처럼 지하가 아니라 오히려 미국처럼 독립 건물 형태이며 실내는 무척 넓다. 그리고 이와 같은 클럽에서 주로 공연하는 밴드는 판테라(Pantera)나 메가데스(Megadeth)와 유사한 쓰래쉬 메탈 쪽이 많았다. 물론 대규모 나이트클럽에서 실력 있는 DJ들을 발견할 수는 있지만, 슈퍼마켓과 같은 밴드의 연주는 보기 힘들었다. “사실 우리 같은 밴드는 많지 않다. 대신 우리와 비슷한 감성을 가진 밴드는 많다. 앞으로 이런 스타일의 음악을 계속하게 될지는 모른다. 음악은 단지 하는 게 목적일 뿐이다.” 위의 마지막 말은 다음과 질문들 – ‘이런 음악을 하는 목적은 뭔가’, ‘슈퍼마켓의 음악이 베이징의 현실에서 일탈한 게 사실인가’ – 을 쓸데없이 보이게 만들었다. 대신 그에게 베이징의 변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그는 현대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고, 초현대적인 음악을 만드는 만큼 “당연히 변화해야 된다.”라고 대답했다. 최근에 한국에 놀러오는 중국인들이 늘어나고 있기에 한국에 와봤냐고 물었더니 “없고 대신 바닷가에서 한국 쪽 하늘을 바라본 적은 있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의 집이 한국 유학생들이 몰려 사는 우다오커우(五道口)라서 한국 유학생들(특히 여학생들)과 왕래가 잦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한국음악을 들어봤으리라 판단했고 평가를 부탁했는데 그는 “이것저것 많이 들었는데 이름은 잘 모른다. 어쨌든 제작능력이 매우 뛰어나다.”라고 언급했다. 아마 그가 들었던 한국음악이란 클론이나 H.O.T류였을 것이다. 그와 이야기를 나눴던 곳은 수수한 조선족 음식점이었다. 이야기를 끝내고 헤어지면서 세번째 앨범을 준비하고 있냐라고 물었지만 “잘 모르겠다”고 별 감정없이 흘렸다. 20010501 | 조성관 sakta@hotmail.com * 원래 중국 본토에서 사용하는 간체자(簡體字)로 표기해야 하지만, 표기하는 데 문제가 있어서 ‘일부’ 단어를 번체자(繁體字)와 한어병음방안으로 바꾸어 표기했습니다. 관련 글 Supermarket(超級市場) [七種武器(7 Weapons)] 리뷰 – vol.3/no.10 [20010516] 관련 사이트 Modern Sky 공식 사이트에 있는 Supermarket 페이지 http://www.modernsky.com/bands/supermarket/super-1.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