쏭고(Songo)

1988년 아일랜드 레코드(Island)의 미국 지사인 망고(Mango)는 [Songo]라는 앨범을 미국 시장에 발매했다. 앨범의 주인공은 꾸바 출신의 14인조(혹은 그 이상) 밴드 로스 반 반(Los Van Van)이었다. 1980년대 내내 지속된 신(新)냉전의 틈새를 뚫고 미국 시장을 조심스럽게 노크하는 ‘메이드 인 꾸바’ 음반이었다. 그때까지 미국에 들어온 이들의 음반은 유럽이나 라틴 아메리카에서 발매된 음반의 라이센스반이거나 ‘밀수’된 것들이었다. 밀수에 실패하면 세관에서 압수되었고.

20010502023536-losvanvan_songo사진 설명: [Songo](1988)의 커버
당신이 오래 전에 꾸바 음악을 들었고 1980년대 후반에 이 음반을 집어든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설명해 보자. 그렇다면 당신은 “Titimania”와 “Sandunguera”를 들으면서 오랫동안 잊었던 어떤 음악적 정취를 느꼈을 것이다. 플루트와 바이올린 소리를 들으면서 차랑가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피아노가 만드는 리듬에서 단손에 대한 노스탤지어를 느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이들의 음악은 쏜(son)에 가장 가깝게 들렸을 것이다. 가공되지 않은 톤의 브라스 섹션도 그렇거니와 솔로 보컬의 선창(call)에 이은 밴드 멤버들의 제창(response)이 반복되는 악곡 구조야말로 몬뚜노(montuno)이기 때문이다.

Los Van Van – Sandunguera

처음에는 비교적 차분한 리듬으로 시작되다가 중반부로 갈수록 그루브가 강해지고 리듬이 역동적으로 전개되면서 템포마저 빨라진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리듬 패턴은 반복적이지만 ‘irresisitible’하게 전개되고, 리듬을 따라가다 보면 음악에 깊숙히 빠져들게 된다. ‘일어나서 춤춰라’고 누가 권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발로 장단을 맞추게 되지만 정확하게 리듬을 만들기는 쉽지 않다. 그러고 보면 어느새 브라스 섹션과 ‘떼창’의 볼륨이 올라가 있고 솔로 가수의 노래는 즉흥연주가 되어 있다. 한 곡의 연주가 끝나려면 페이드 아웃을 시키는 방법 밖에는 없다.

이 음악들이 단지 노스탤지어를 자극할 뿐이라고 항의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다. 콘트라베이스(우드 베이스)는 일렉트릭 베이스로 바뀌어 있고, 키보드 소리가 자주(특히 브릿지 부분에서) 나오고, 가끔은 와와 이펙트를 입힌 기타 사운드도 들을 수 있다. “Que Palo Eso Ese” 같은 곡은 영락없는 1970년대의 훵크 혹은 디스코(물론 완전히 맛이 가기 전의 디스코)다. 고립된 나라에 살면서 외국에서 대중음악의 발전을 유심히 관찰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실천하기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퍼커션과 리듬에 주목하면 영락없는 아프로꾸바 음악이지만, 멜로디와 화성에 주목하면 ‘앵글로-아메리칸 팝’같은 면도 발견된다. “Muevete (Anda Ven y Muevete)”는 스페인어 가사와 퍼커션을 제외한다면 1960년대 말의 싸이키델릭 팝(혹은 록)처럼 들리고 멜로디도 뜻밖에 수려한 부분이 존재한다. 아니나 다를까 밴드의 리더이자 대부분의 곡을 작곡한 후앙 포르멜(Juan Formell)이 “비틀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밝혔다고 한다. 이 곡처럼 명시적이지 않더라도 다른 곡들도 재즈, 리듬 앤 블루스, 팝 등 미국의 대중음악을 폭넓게 수용하고 이를 라틴 리듬과 퓨전한 것이다.

Los Van Van – “Muevete (Anda Ven y Muevete)”

쏭고라는 명칭은 앨범 타이틀이자 이들이 구사하는 음악의 장르의 이름이다. 로스 반 반은 쏭고를 대표하는 밴드다. ‘대표된다’기보다는 쏭고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존재가 로스 반 반 자신이다. 영어로 ‘the go go’s’ 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이 밴드는 베이스주자인 후앙 포르멜의 지휘 하에 독보적 지위를 차지해 왔다. 혁명 이후 30년 동안 한번의 은퇴와 컴백 없이 꾸바의 댄스 음악을 보존함과 동시에 혁신해 왔다. 그 기간은 뉴욕에서 살사가 형성되어 대중화된 시간과 거의 일치한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 쏭고는 쏜(son)과 차랑가(charanga) 등 꾸바의 음악적 전통의 계승이자 혁신이다. 아프로꾸반 리듬을 기본으로 하고 여기에 다른 캐러비언 리듬을 혼합하여 만들어진 것이 쏭고다. 여기에는 창귀또(Changuito)라는 별명으로 더욱 유명한 호세 루이스 뀐따나(Jose Luis Quintana)의 역할이 지대하다. 드럼 세트, 꽁가, 귀로의 앙상블로 만들어내는 쏭고의 리듬은 한 곡 한 곡마다 다채로울 뿐만 아니라 한 곡 내에서도 복잡무변하게 변화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여러 명이 퍼커션을 합주하여 만들어내는 것과 비슷한 효과를 한 명의 연주로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그것도 오버더빙같은 스튜디오에서의 조작(gimmick)이 아니라 실연주로 말이다. 창귀또는 1993년 밴드를 떠났지만 후앙 포르멜의 아들인 사무엘 포르멜(Samuel Formell)을 비롯한 후예들이 공백을 메우고 있다.

반 반: 절반의 성공, 절반의 실패

불행히도 1988년 발매된 음반의 판매고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도 반 반의 음반 발매는 허락되었어도 ‘프로모션 투어’를 포함한 일체의 공연활동은 불허되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지난 번에 언급한 대로 이들의 음악은 ‘문화적이고 교육적인 경우’가 아니라 ‘상업적’이라고 간주되어 미국 입국 비자를 발급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이 무렵 꾸바에 대한 미국 정부의 정책은 1990년대 말 이후 ‘일본 문화’에 대한 한국 정부의 정책을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 공연과 더불어 음반홍보의 양대 매체인 – 라디오 방송의 문제였다. (한국인같이) 라티노가 아닌 사람이 듣기에 반 반의 음악은 영락없는 ‘라틴 음악’ 특히 ‘살사’에 가깝고 따라서 이들의 음악은 라틴 음악 전문 채널을 통해 방송되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렇지만 라틴 음악 전문 방송국은 반 반의 음악을 방송하는데 매우 소극적이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음악적인 문제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 문제였다.

첫 번째 문제의 경우 반 반의 음악은 라디오 방송에 적합한 매끄러운 라틴 음악은 아니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1980년대 후반 경이면 라틴 음악계에서도 살사 로만티카(salsa romantica) 혹은 살사 라이트(salsa lite)라고 불리는 ‘여성 취향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스타일이 이미 대중화된 다음이다. 질베르토 산타 로사(Gilberto Santa Rosa), 제리 리베라(Jerry Rivera)의 음악처럼 리듬은 약하고, 멜로디는 번드르르하고, 사운드는 매끄러운 스타일이다(리키 마틴의 ‘댄스곡’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반드시 살사 로만티카가 아니라도 살사 음악 전체의 프로듀싱은 이미 주류 팝 음악의 매끄러운(slick) 방식에 동화되고 있었다. 이런 살사의 ‘주류’와 비교한다면 반 반의 음악은 나름대로 현대적이기는 해도 낯선 것이었다.

두 번째 ‘정치적’ 이유란 미국에 살고 있는 꾸바 망명자들의 영향력 때문이다. 마이애미를 거점으로 똘똘 뭉쳐있는 것으로 유명한 이들은 까스뜨로 정권과 꾸바의 사회체제 전반에 대해 매우 냉소적이다. 이들은 라틴 음악 비즈니스계에서 일정한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데, 꾸바에서 활동하는 음악인들에 대해서는 매우 비판적이다(로스 반 반의 멤버들 중에서도 1983년 이스라엘 ‘깐또르’ 사르디나스(Israel ‘Cantor’ Sardinas)가 망명했다). [Songo]를 발매한 아일랜드/망고 레이블은 자메이카의 레게나 나이지리아의 주주 등 영어사용권 나라들의 음악에 특화해 왔기 때문에 라틴 음악계에 대한 영향력은 크지 않았다.

Los Van Van, “Te Pone La Cabeza Mala (timba)”

이런저런 이유로 라틴 음악 라디오에서 외면된 [Songo]는 월드 뮤직 라디오에서만 간간이 전파를 탈 수 있었을 뿐이다. 월드 뮤직 라디오에서 주로 흘러나오는 음악은 아프리카와 아프로캐러비언의 음악들이고 음악의 분위기는 ‘에쓰닉(ethnic)’하고 ‘루치(rootsy)’해야 한다. 월드 뮤직이라기에는 ‘로컬 팝’에 가까웠고, 결국 틈새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제까지 소개했던 다른 꾸바 그룹들과 비교한다면, 이라께레는 ‘재즈’, 무네뀌또스 드 마탄사스는 ‘월드 뮤직’의 범주에 성공적으로 통합될 수 있었다. 부에나 비스따 소셜 클럽의 쏜과 단손도 ‘오래된’ 대중음악이기 때문에 월드 뮤직으로 분류하는데 큰 무리가 없었다.

꾸바의 1급 음악인들만 연주할 수 있는 관광 호텔에서 이들의 음악을 듣는다면 ‘꾸바의 향취를 듬뿍 담고도 이렇게 현대적 감각을 가진 밴드가 있다니…’라는 느낌을 가질 것이다. 그렇지만 라디오 채널에서는 이들의 설 자리를 발견할 수 없었다. 반면 이들의 음악이 라틴 음악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낯설고 이국적’으로 들리고, 월드 뮤직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면 ‘현대적이고 상업적(!)’으로 들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스 반 반은 간헐적으로 앨범을 발표하면서 틈새 시장을 넓혀갔고 1997년에는 비로소 뉴욕 공연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어틀랜틱(Atlantic)이 배급을 맡은 1997년 앨범의 타이틀 [Con Salsa Formell (살사 포르멜과 함께)]에서 드러나듯 음악산업계는 반 반을 ‘살사 씬’에 진입시키려는 의지도 보였다. 그리고 1999년에는 이제까지의 활동을 총결산하는 두 장짜리 CD인 [Los Van Van – 30 Years of Cuba’s Greatest Dance Band](1999)를 발매하여 이들의 다양하고도 풍부한 음악 여정의 전모를 보여주었다.

20010502021616-losvanvan2사진설명 : 1998년 플레이보이 재즈 페스티벌에서 브라스 주자들의 연주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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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음반에 수록된 레코딩들 중에서 1980년대 이전의 작품과 1990년대 이후의 작품 사이에는 적잖은 차이가 있다. 이는 한 밴드의 음악적 스타일의 변화이자 꾸바 대중음악의 트렌드의 변화이다. 이 새로운 스타일은 띰바(timba) 혹은 하이퍼 살사(hyper salsa)라는 새 이름을 달게 되었다. 띰바에 대해서는 분량의 제약 상 다음 회에 알아보기로 하자.

그러기 전에 개인적으로 하나 궁금한 것이 있다. 과연 반 반의 정치적 입장은 어떤 것이었을까. 대체로 정서적으로 관능적인 가사에서 이들의 정치 성향을 발견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인용문을 유심히 읽어보는 수밖에 없다.

“반 반은 “La Havana No Aguanta Mas(Havana Can’t Take Anymore)”를 포함하여 가끔 정치적 오버톤을 가진 노래들을 레코딩했다… 하지만 마이애미에 사는 몇몇 광신도들(fanatics)들이 보기에는 이 밴드는 충분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이 아니다. 반 반의 음악을 방송한 마이애미 라디오 방송국은 폭탄 위협을 받았으며, 마이애미 시장은 경찰이 올 때까지 반 반의 연주를 금지했다. 항의자들은 마이애미 공연장 외부에서 돌맹이를 던지면서 폭동을 일으켰지만, 공연장 안에 있던 사람들은 이런 사실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은 춤을 추느라고 너무 바빴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politically correct)’라는 표현이 무슨 뜻이고 어떻게 사용되는지는 다소 복잡하다. 그렇지만 좌파든, 우파든 ‘정치적으로 올바른’ 것은 위험해 보인다. 사회주의 꾸바에서도 정치적으로 올바른 사람들은 ‘일어나서 춤 춰’라는 로스 반 반의 음악이 빠블로 밀라네스의 ‘정치적으로 올바른 발라드’보다는 못마땅한 것이었을 텐데도 말이다. 후앙 포르멜은 플레이보이 재즈 페스티벌 장소에서 가진 CNN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꾸바라는 나라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꾸바의 민중과 꾸바의 음악적 전통을 대표합니다”라고 말했다. 참 현명한 발언이다. 20010429 | 신현준 homey@orgio.net

시리즈 예정
담배 피우면서 꾸바 음악 탐사하기(마지막) – 띰바(timba) 그리고 살사(salsa) 속의 꾸바 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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