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3요즘 음반점마다 가장 크게 보이는 물건들이 있다. 이것은 포장도 큼지막하고, 아주 유명하지만 ‘가수’와는 상관없어 보이는 예쁘고, 잘생긴 연예인의 얼굴이 큼지막하게 인쇄되어 있고, 가게 안에서도 잘 보이는 위치에 진열되어 있다. 그리고 지켜보면 그걸 사가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라는 걸 알 수도 있다.

내용물은 가요 히트곡들을 모은 것이다. 그것도 시디 한두 장이 아닌 4-6장에 수십 곡을 넣어서 말이다. 지난 1월에 나온 [연가]가 엄청나게 성공하면서 비슷한 종류의 [애수], [러브]가 나왔다. 세 앨범 모두 컨셉트라고 할만한 게 없다. 조금만 거칠게 말하자면 리어카 테이프와 다른 점을 찾을 수 없다. 소리바다에 접속하면 늦어도 두 시간 이내엔 수록곡들을 모두 찾아 똑같이 시디로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는 가뜩이나 좁아진 음반 시장에서, 상업적 성공확률이 아주 낮아진 음악 기획사들이 궁색하게 짜낸 전술(잔머리?)의 산물이다. [연가]가 엄청난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 상황에서, 제작비가 워낙 낮아 위험 부담이 덜하다는 이유, 이런 종류의 음반의 유행에 편승하겠다 의도로 [애수], [러브]가 뒤따라 나온 것이다. 이런 컴필레이션 음반들의 상업적 성공은 그동안의 끼워팔기(들을만한 곡 한두 곡을 넣고 나머지는 별 볼일 없는 곡으로 채워 앨범을 내놓는 가요계의 음반 제작 관행)의 연장선상에 있다. 기존 정규 앨범들과 비교해 본다면,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고 성공의 열매를 따겠다는 얄팍한 술수로 보인다.

한편, 컴필레이션의 성공이 수록곡이 담긴 오리지날 앨범의 동반 판매로 이어지는 상황은 요원하다. 그래서 컴필레이션 앨범들의 높은 판매고가 오히려 (시기가 지난) 정규 앨범의 절판을 촉진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신나라, 웅진, 동원 등 주요 음반 유통업체들은 5월 1일부터 “1장을 초과하는 모든 편집 앨범”의 유통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음반도매상협회 차원에서 모임을 갖고 나온 결과인데, 인기 가수들의 히트곡들을 대거 수록한 컴필레이션의 성공이 정규 앨범 판매에 악영향을 미치고, 유통 질서에도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해, 음반도매업체 한양음반프라자의 김충현 사장은 “지난 몇 년 동안 팝 음악 편집음반이 유행하면서 팝 음반 시장이 송두리째 무너진 결과 요즘 들어 10만장 이상 팔리는 팝 음반을 찾기가 어려워졌다”면서 “도매상들은 가요 편집음반 제작 붐이 장기적으로 음반시장을 뿌리째 흔들 수 있다고 보고 다음달부터 편집음반 유통을 중지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한다. 20010415 | 송창훈 anarevol@now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