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416094339-manicsManic Street Preachers – Know Your Enemy – Virgin, 2001

 

 

10년의 활동에 대한 회고와 정리, 그리고 새 출발

돌이켜보면, 1991년 영국 웨일즈(Wales)에서 결성된 ‘미친 거리의 전도사들’이 걸어온 발자취는 이들의 음악만큼이나 드라마틱하다. 이들은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James Dean Bradfield: 보컬, 기타), 리치 제임스(Richey James: 기타), 션 무어(Sean Moore: 드럼), 니키 와이어(Nicky Wire: 베이스) 4인조로 출발했는데, 악명 높은 ‘4 Real’ 자해 사건, 선동적인 발언 등 이들 주변에는 여러 크고 작은 해프닝이 끊이지 않았다. 3집 발매 후 리드 기타리스트 리치 제임스가 실종된 비극적인 사건은 이들이 음악적으로 공격적이고 거침없는 성향에서 ‘달콤씁쓸한(Bittersweet)’으로 표현될 팝적인 성향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변화의 순간마다 마치 예고되었다는 듯 흔들림 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다.

평탄치 않은 가운데서도, 매닉 스트릿 프리처스(Manic Street Preachers: 이하 매닉스)는 여러 장르들을 탐닉하고 수용하여 점차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스타일을 만들어 나갔고, 결국 시간이 갈수록 창조성과 자신감을 숙성해 갔다. 이런 점은 수없이 난무한 해체설을 비웃기라도 하듯, 마침내 내놓은 여섯 번째 앨범 [Know Your Enemy]에 함축으로 혹은 산발적으로 담겨 있다. 이 음반에는 초기부터 최근까지의 모습을 포괄적으로 담아낸 곡이 있는가 하면, 매우 동떨어진 곡도 있다.

매닉스가 초기부터 지금까지 일관되어 온 것이 있다면, 이는 가사에 담긴 메시지/이데올로기라고 할 수 있다. [Know Your Enemy]에서도 이들은 변함없이 역사, 정치,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 있는데, 그 정도는 3집 [Holy Bible](1994)에 못지 않다. 1950년대에 공산주의를 찬양하다 미국에서 추방된 폴 로베슨(Paul Robeson)이라는 인물을 소재로 한 “Let Robenson Sing”, 미국에 감금되었던 6살 난 꾸바 소년 엘리아스 곤잘레스(Elias Gonzales)의 이야기를 다룬 “Baby Elian”, 동유럽의 경제적 빈곤을 그린 “Freedom Of Speech Won’t Feed My Children”이 그러한 예로 전체적으로 ‘반미사상’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가사는 그렇다 치고, 음악적으로 이 음반은 정리와 회고의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음반이다. “[Holy Bible] 시절로 돌아가려 했다”는 니키 와이어의 말처럼, 이 음반은 전반적으로 앞으로 질주하기보다 과거를 되돌아보고, 그동안 형상화하지 못한 성향을 반영하는 것에 무게가 실려있다. 예를 들어 첫 곡 “Found That Soul”의 건반연주는 1960년대 로커빌리 사운드를 듣는 듯하고(후반부 심하게 뒤틀린 기타 리프는 분명 데뷔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Ocean Spray”의 중반부 트럼펫 솔로, “Let Robenson Sing”의 코러스와 후반부 내레이션은 과거에 대한 그리움 같은 정서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디스코, 소울(매닉스의 데뷔 싱글은 “Motown Junk”였다)에 대한 향수도 있다. “Miss Europa Disco Dancer”는 비지스(Bee Gees)의 “Stayin’ Alive”의 주선율을, “Epicentre”는 밥 딜런(Bob Dylan)의 “All Along The Watchtower”를 연상시킨다. 다만 아쉬운 점은 다양한 장르가 녹아 있지만, 그 이상의 응용이나 재해석이 아닌 달콤하게 우러나오는 무난함에 안주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신 앨범에서 가장 빛나는 트랙인 “The Convalescent”를 비롯해, “Found That Soul”, “Intravenous Agnostic”, “Freedom Of Speech Won’t Feed My Children” 등은 이들의 진정한 매력이 마이너 키를 활용한 거칠고 직선적인 연주와 서서히 분위기를 상승시키는 드라마틱한 구성미에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Know Your Enemy]는 1990년대 영국을 대표한 밴드인 매닉스가 결성 10주년을 맞이해 어떤 모습으로 한 세기를 마감하고 다음 세기를 맞이하는지에 대해 한 단면을 보여준다. 매닉스의 그간 활동을 리치 제임스의 존재 유무를 축으로 양분해 본다면, 그의 실종 이후(4집 [Everything Must Go]부터) 이들이 고급스러우면서 세련된 감각을 보여준 데 반해 이 음반은 그가 실종되기 이전으로 회귀한 듯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리치가 재적했던 밴드 초기 시절을 재현했다고 말하기에는 우회와 단절을 지나칠 수 없다. 시간의 간극은 적지 않고, 지금 매닉스에 리치 제임스는 없다. 리치 제임스의 그림자는 여전히 매닉스를 따라다니(겠)지만, 매닉스는 이제야 남은 자들의 제대로 된 새 발걸음을 떼는 듯하다.

“예전에는 리치에 대한 곡들을 썼었죠. 하지만 이번 앨범은 지극히 우리 세 명으로 이루어진 거예요. 리치의 영혼은 언제나 거기에 있지만, 이건 사실 우리의 어린 시절에 대한 이야기입니다(니키 와이어).”
“리치가 있었을 때 발표한 앨범 숫자만큼, 그 없이도 이렇게 앨범들을 내놓았다는 게 좀 이상할지도 모르겠어요. 지금 우리는 3번째 장, 아니 2번째 장에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평소보다 좀더 두려운 기분이 듭니다. (제임스 딘 브래드필드)” 20010413 | 정건진 chelsea2@nownuri.net

7/10

수록곡
1. Found That Soul
2. Ocean Spray
3. Intravenous Agnostic
4. So Why So Sad
5. Let Robeson Sing
6. The Year Of Purification
7. Wattsville Blues
8. Miss Europa Disco Dancer
9. Dead Martyrs
10. His Last Painting
11. My Guernica
12. The Convalescent
13. Royal Correspondent
14. Epicentre
15. Baby Elian
16. Freedom of Speech Won’t Feed My Children

관련 사이트
Manic Street Preachers 공식 사이트
http://www.manics.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