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416093957-rundmcRun DMC – Crown Royal – Arista, 2001

 

 

8년만에 나온 ‘B-Boy’의 ‘Rock Show’, 혹은 ‘King Of Rock’의 ‘Rap Together’

1999년 10월에 나올 예정이던 [Crown Royal]이 온갖 이유로 지연에 지연을 거듭한 끝에 결국 이제야(2001년 4월 3일) 공식 발매되었다. 전작 [Down With The King](1993) 이후 거의 8년이 걸린 셈인데, 왜 런 디엠씨(Run DMC)가 이렇게까지 장고 끝에 이 앨범을 발매해야 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변명이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가장 큰 이유는, 이 앨범에 참여한 초호화 게스트 뮤지션들이나 그들의 새로운 둥지인 아리스타 레이블과의 복잡한 계약문제보다는, 여전히 자신들이 ‘King Of Rock’임을 만방에 확인시키고 자신들의 ‘직계, 방계 후손들’에게 음악적으로 본때를 보여주기 위한 욕심과 부담이 과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런 디엠씨는 힙합과 대중음악의 역사에 두 차례 큰 획을 그은 뮤지션이다. 약관 20세에 내놓은 셀프 타이틀 데뷔 앨범(1984)은 최초의 ‘앨범 지향적인’ 힙합 음반이자 처음으로 비보이(B-Boy)적 태도와 사운드를 일반 대중에게 공표한 음반이었다. 또한 [King Of Rock](1985)과 [Raising Hell](1986)은 랩과 록의 크로스오버라는, 당시로는 놀라울 뿐인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록-랩 하이브리드의 기념비적 음반들이었다. 힙합 뮤지션으로서는 최초의 골드 앨범([Run DMC]), 최초의 플래티넘 앨범([King Of Rock]), 최초의 멀티플래티넘 앨범([Rasing Hell]), 최초의 MTV 뮤직비디오 방영(“Walk This Way”), 최초의 [Rolling Stone]지 커버 모델 등등의 무수한 수식어들이 그들의 이름 뒤에 자연스레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다.

하지만 이러한 난리법석도 잠시 뿐이었다. 불행하게도 불과 2-3년이 지나면서 런 디엠씨는 더 이상 록-랩 하이브리드의 수장이 아니었고, 동시에 흑인 힙합의 간판도 아니었다. 새파란 백인청년들(Beastie Boys)이 록-랩 하이브리드의 새로운 영웅이 되면서 이 음악이 앞으로 백인들의 전유물이 될 것임을 예고하였고, 한편으로 보다 정치적이고 과격한 흑인 청년들(Public Enemy)이 득세하면서 흑인 힙합의 새로운 전기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들의 절대적 영향력과 인기는 1990년대로의 진입과 함께 너무나 쉽게 사그라졌다. 개인적인 불행들까지 겹치며 급격한 쇠락을 거듭하던 이들은 [Down With The King](1993)을 통해 재기의 몸부림을 쳤지만 이제 더 이상 세상은 그들을 ‘왕’으로 여기지 않는 것 같았다.

런 디엠씨는 결국 8년만에 [Crown Royal]을 통해 [Down With The King]에서 실패했던 ‘왕정복고’를 다시금 도모한다. 기본 전략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호화 게스트를 떼거지로 고용하는 것이다. 물론 전술적으로는 다소 차이가 있다. 전작이 RATM을 제외하면 당대 최고의 실력파 후배 힙합 뮤지션들과의 공동 작업에 중점을 두었다면, 이번 앨범은 록-랩 하이브리드의 직계 백인 로커들과의 트랙별 듀엣 형태의 작업이 핵심이다. 말하자면, ‘비보이’의 재현보다는 ‘King Of Rock’으로의 복귀가 그들의 보다 큰 목적인 셈이다(혹자는 이러한 작업 형태에 대해 산타나의 [Supernatural]에 이은 아리스타 레이블의 두 번째 야심찬 프로젝트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지만, 이는 런 디엠씨의 자존심이 걸린 일이니 일단 논외로 하자).

그러한 하이브리드의 진수는, 유일하게 자신들만의 힘으로 만든 트랙 “Crown Royal”의 장중한 선언이 끝난 후, 4번 트랙부터 8번 트랙까지 메들리로 펼쳐진다. 프레드 더스트(Fred Durst)의 재기발랄함은 림프 비즈킷(Limp Bizkit) 앨범의 그것들에 못지 않으며(“Them Girls”), 키드 록(Kid Rock) 역시 여전히 화끈하다(“The School Of Old”). 하지만 보다 근사한 트랙들은 다음의 두 곡이다. 스티브 밀러 밴드(Steve Miller Band)의 25년 전 히트곡을 리바이벌한 “Take The Money And Run”는 에버래스트(Everlast)가 최근에 재미를 봤던 ‘컨트리 리듬앤블루스’ 풍의 근사한 훵크를 담고 있으며, “Semi-Charmed Life”로 런 디엠씨를 뻑 가게 만들었다는 스티브 젠킨스(Steve Jenkins)가 참여한 “Rock Show”는 “King Of Rock”의 수정판에 가까운데, 앨범의 첫 번째 싱글로 나무랄 데 없다.

한편으로 8년만에 내놓은 신중한 앨범답게 이들은 철저하게 ‘King Of Rock’에만 집착하는 모험은 하지 않는다. 언급했던 백인 뮤지션이 피처링한 트랙들 앞뒤는 간판급 흑인 힙합 뮤지션들이 커버한다. 나스(Nas)는 “Queen’s Day”에서 근래 보기 드문 최상의 라임을 선사하며, 메쏘드 맨(Method Man)은 특유의 빼어난 마이크로폰 스킬과 함께 첨단의 힙합 트랙(“Simmons Incorporated”)을 제공한다. 팻 조(Fat Joe)의 “Ay Papi”가 감칠 맛 나는 라틴 스타일의 곡이라면, 앨 그린(Al Green)의 소울 클래식, “Let’s Stay Together”를 재해석한 재기드 에지(Jagged Edge)의 곡은 미끈한 R&B 넘버이다.

이쯤에서 볼 때 각 트랙들은 “Here We Go 2001” 같은 곡을 제외한다면 3년여 간의 작업의 결과로서 전혀 나무랄 데가 없다. 즉, 제각기 게스트들의 색깔이 분명하게 드러나는 우수한 사운드의 곡들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라. 이는 [Crown Royal]이 분명 런 디엠씨의 앨범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모습은 전체적으로 제대로 드러나지 않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된다. 극단적으로 말해서 록 스타일의 트랙들은 그냥 이들 백인 로커들의 앨범에서 지금껏 보여왔던 사운드들을 그대로 옮긴 것에 다름 아니다. 다른 한편으로 흑인 힙합 뮤지션들이 참여한 트랙들에서는 이들 젊은 엠씨들이 노쇠한 런(Run)과 디엠씨(DMC)의 목소리를 압도한다. 결국 대부분의 트랙들은 단지 게스트들만의 것이며, 여기서 런 디엠씨는 주변을 배회할 뿐이다.

또 다른 문제는 록 스타일의 곡과 힙합 스타일의 곡이 전체적으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따로 놀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의도적으로 두 스타일의 곡들을 반으로 나누어서 대립적으로 배치함으로써(이 과정에서 Q-Tip과 ODB가 참여한 트랙들은 균형을 위해 탈락되었다), 마치 현재의 흑인 뮤지션들의 ‘뉴 스쿨 힙합’과 백인 뮤지션들의 ‘록-랩 하이브리드’는 결코 화해할 수 없는 ‘물과 기름’의 관계임을 재차 강조하는 듯하다. 결국 ‘비보이’의 전위이자 ‘록-랩’ 혼성교배의 창조자로서의 자신들의 정체성이 애초부터 모순적인 이중성을 내포하고 있었다고 뒤늦게 스스로 고백하는 꼴이 되어버린다.

이러한 몇 가지 문제점들의 근본적인 원인은, 이들이 각 트랙 자체에만(혹은 각 트랙의 게스트에게만) 과중하게 신경을 부여하고 있을 뿐, 앨범의 전체적인 사운드를 자신들만의, 런 디엠씨만의 색깔로 조율하고 통제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리스타 레이블의 후광 속에 [Crown Royal]이 제 2의 [Supernatural]이 될 소지는 충분하다. 하지만 다시금 런 디엠씨가 ‘King Of Rock’과 ‘아디다스 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해 보인다. 20010411 | 양재영 cocto@hotmail.com

6/10

수록곡
1. It’s Over (featuring Jermaine Dupri)
2. Queen’s Day (featuring NAS & Prodigy of Mopp Deep)
3. Crown Royal
4. Them Girls (featuring Fred Dust)
5. The School Of Old (featuring Kid Rock)
6. Take The Money And Run (featuring Everlast)
7. Rock Show (featuring Stephan Jenkins of Third Eye Blind)
8. Here We Go 2001 (featuring Sugar Ray)
9. AHHH (featuring Chris Davis)
10. Let’s Stay Together (Together Forever) (featuring Jagged Edge)
11. Ay Papi (featuring Fat Joe)
12. Simmons Incorporated(featuring Method Man)

관련 사이트
Arista 레이블의 Run DMC 공식 사이트
http://www.arista.com/aristaweb/RunDMC/main2.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