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33잠 – 낮잠 – 2000

 

 

몽환 속에서 찾는 평온

2000년 연말에 나온 ‘낮잠’이라는 제목의 이 음반은 ‘잠’이라는 슈게이징 밴드의 데뷔작이다. 세 멤버들 – 박성우(기타/보컬), 최소희(베이스), 이민수(드럼) – 은 1998년 클럽 드럭을 드나들다가 만나서 클럽 스팽글과 빵에 정착하였다. 이들은 채송화, 데이슬리퍼와 친밀한 유대감을 가지고 함께 활동하고 있다. 이 앨범 역시 음반사와의 정식 계약 없이 채송화의 멤버인 박열과 함께 ‘수작업’으로 제작되어 홍대 앞의 두 음반점에서 판매되고 있다. 열악한 녹음 환경과 장비들로 작업한 성과라서 객관적으로 볼 때 레코딩 상태가 깔끔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물론 그런 사운드에 더욱 정감이 간다는 취향도 존재하지만.

음악의 분위기는 ‘몽환적’이다. 베이스는 그다지 그루브하진 않지만 멜로딕한 면을 보이고(“농담”, “망설임”), 기타 백킹은 뚜렷한 위치의 분배 없이 뒤섞여 진행된다(“흐리게”). 기타 사운드는 말할 듯 말 듯한 보컬과 더불어 몽환적 분위기를 더해 준다. 리드 기타 또한 노이즈를 앞세워 분위기를 주도하지는 않는다. 에코나 딜레이 등의 이펙트를 통해 몽롱함이 극에 달했을 때 나오는 노이즈조차 아련하게 흩뿌려진다(“향”). 드럼이 기본적인 비트와 하이 햇의 챙챙거리는 소리로 일관되고, 보컬은 가사를 읽고 나서도 무슨 뜻인지 알아들을 수 없다. 눈이 내릴 때 세상이 고요해지는 것처럼(혹자는 눈이 소리를 삼킨다고들 한다. 믿거나 말거나겠지만), 잠의 사운드는 듣는 이의 감정을 삼켜버리고, 결국엔 머리 속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게 만든다. “나는 나에게 농담을 던지네. 진실은 허영이라…(“농담”)”같은 아리송한 언어들은 메시지보다는 이미지를 남긴다.

코드 진행은 단순하고, 고난도의 연주기법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어떤 느낌을 표현해내고 있는데, 이는 자신들의 고유한 (그래서 때로는 고집스러워 보이는) 세계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단, 그 고집스러운 세계가 비트의 템포나 가사의 명암과 무관하게 각 트랙들 사이에 차별성 없게 들릴 수도 있을 듯하다. 그게 이들이 앞으로 넘어야할 과제인지, 아니면 ‘슈게이징(shoegazing) 밴드의 성향’으로 존중해야 할 것인지 판단하기엔 아직 섣부르다. 20010411 | 김윤정 suedever@hanmail.net

6/10

수록곡
1. 향 (비의 선상에서)
2. 향 (먼지의 선상에서)
3. 농담
4. 낮잠
5. 망설임
6. 흐리게
7. 해변으로가요
8. ?
9. Sunday
10. 독감

관련 사이트
잠 공식 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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