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 – 어떤 날 I(1960·1965) – 서울음반, 1986 따뜻하고 섬세한 필치가 살아있는 시화 1980년대 중후반, 이문세를 시작으로 하는 새로운(당시로서는 정말 그랬다) 발라드가 소녀들의 침실을 파고들고, 헤비 메탈이 소년들의 치기를 북돋우던 그 때. 조용필이 한국 ‘가요계의 왕’으로 군림하며 TV 브라운관을 완전히 장악한 것도 조금은 고루해질 무렵. 유행 음악에 식상하여 보다 새롭고 대안적인 무언가를 찾던 이들에게 들국화는 매력적인 이름이었고, 시인과 촌장은 신선한 자극제였던 즈음. 당시 새로운 뮤지션을 발굴한다는 취지로 기획된 컴필레이션(당시 용어로 옴니버스) 시리즈 ‘우리 노래 전시회’ 중 그 첫 번째 음반인 [우리 노래 전시회 1](1985)에는, 앞서 언급한 뮤지션들의 음악(전인권 “그것만이 내 세상”, 최성원 “제발”, 시인과 촌장 “비둘기에게” 등)과 더불어, 어떤 날의 “너무 아쉬워하지마”가 수록되어 있었다. 이 곡의 주인공 조동익과 이병우는 1년 후, 연도로 보이는 숫자(그들 각각의 출생년도를 표시한 것이라 한다)를 타이틀로 건 데뷔 앨범 [1960·1965]를 냈는데, 아주 선풍적인 인기를 끈 것도, 이후 많은 음반을 낸 것도 아니었지만 이들의 음악은 심야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간간히 흘러나오며 조용한 파문을 일으켰다. 이 음반에는 소박하면서도 섬세한 기타, 절제된 신서사이저 음향, 고요하고 여린 보컬 사이로 스며 나오는 잔잔한 파장이 있다. 어떤 날은 일요일 오후의 나른함이 묘사된 “오후만 있던 일요일”(들국화 1집에도 실린 바 있다)이나, ‘비오는 날 우산을 펼쳐든 너의 모습’을 수채화처럼 그려낸 “비오는 날이면”에서 섬세하면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 자잘한 일상을 보여준다. 이들의 음악은 ‘길모퉁이 조그만 화랑에 걸려있던 그림처럼 여행길에 차창밖에 스치던 풍경처럼’ 그려낸 한 편의 소묘 같다. 또한 꿈과 이상에 대한 추상적 시어들로 가득한 “그날”, “너무 아쉬워 하지마”에서는 ‘언젠가 다가올 그날에 떠오를 새로운 태양과 푸르른 꿈 위해 혼자 걷는 너에게 날으는 법을 배우는 작은 새’라고 등을 토닥이며, ‘기억 속에 희미해진 많은 꿈’에 대해서는 너무 아쉬워 말라고 속살거리며 위로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적당히 패배적이면서 적당히 꿈꾸는 듯했던 사춘기 소년의 목소리랄까. 다른 곡과 조금 다르게, “그날”에서는 피아노 타건 소리와 함께 화려한 기타 솔로가 등장하여 헤비한 사운드가 펼쳐지기도 한다. 이러한 그들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데 무엇보다 큰 역할을 한 것은 기타 지판을 옮기는 소리까지 신경썼을 정도로 세심했던 편곡에 있을지 모른다. 어떤 날의 목소리를 조율해주는 것은 이병우의 일렉트릭/어쿠스틱 기타와 조동익의 베이스 기타(특히 “오래된 친구” 등에서 들리는 부드러운 프레트리스(fretless) 베이스 기타)이다. 그 틈새로 자리잡은 여백은 그들의 모든 사운드를 조용히 반추하게 하는, 그래서 평온하기 그지없는 분위기를 만든다. 또한 재즈적 사운드, 특히 팻 메쓰니에게 받은 영향은 그들의 음악을 언급할 때 항상 회자되곤 하지만, 특별히 말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이 앨범에서 ‘뮤직 디렉터’에 조동진(그의 친동생이 조동익이다)의 이름도 볼 수 있다. 어떤 날은 단 두 장의 앨범을 끝으로 조동익은 세션 연주자 겸 편곡자로, 이병우는 기타 연주자로 각자의 길을 걸어갔지만, 그들은 어떤 날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도 각각 새로운 영토를 구축했다. 독집 음반을 통해 직접적으로 드러내든(이병우), 다른 뮤지션의 편곡이나 연주, 영화 음악 속에서 간접적으로 표현하든(조동익). 한편, 1990년대 후반에 어떤 날의 영향을 받았다는 후배 뮤지션들 – 포크 록 뮤지션들(박학기의 “오래된 친구”), 언더그라운드 뮤지션(델리 스파이스의 “오후만 있던 일요일”) 등 – 에 의해 심심찮게 호명되었을 만큼, 이들이 오래도록 끈끈한 자기력을 지녔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이병우 음반 재발매 같은 ‘이상한’ 열풍도 일고 있으니. 20010411 | 최지선 fust@nownuri.net 9/10 수록곡 1. 하늘 2. 오래된 친구 3. 그날 4. 지금 그대는 5. 오늘은 6. 너무 아쉬워 하지마 7. 겨울 하루 8. 비오는 날이면 9. 오후만 있던 일요일 관련 사이트 이병우 [혼자 갖는 茶 시간을 위하여] 리뷰 – vol.3/no.8 [20010416] 이병우 [야간 비행] 리뷰 – vol.3/no.8 [20010416] 관련 사이트 어떤 날 팬 사이트 http://mpeg.snu.ac.kr/~jiyang/etn/index.html 하나음악 비공식 홈페이지 http://my.netian.com/~rabbits/hana/intro.ht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