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가요 읽기의 불완전한 시도: [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 서평

20010401103518-0307bookcover“얼굴은 예뻐?” “모창은 누구 잘해?” “개그 좀 해봐라”
놀랍지만 국내 음반 기획사에서 심심찮게 듣게 되는 멘트다. 한 쪽에서는 예쁘고 잘 생긴 젊은 친구들이 부지런히 춤 연습에, 노래 연습에 개그훈련까지 받고 있고, 또 다른 쪽에서는 엄청난 자금 투자로 유명한 감독의 지휘하에 보다 드라마틱한 뮤직비디오를 만들어 내기 위해 궁리 중이다. 그리고 또 다른 어디선 PD와 기자들을 위한 멋들어진 향연이 펼쳐지고 있겠지… 이 삼박자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었을 때 우리는 비로소 가요계의 새로운 스타를 만나게 된다. 잠깐 동안이었지만 국내 음반 기획사에서 일했던 경험은 암묵적으로 알아오던 우리 나라 가요계의 어두운 일면이 안타깝게도 현실이었음을 알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대중문화 중에서도 가장 일반적으로 많이 접하게 되는 가요. 수많은 대중문화 담론 속에서 드디어 ‘가요’에 대한 여러 가지 고찰들이 시작되었다. 가요의 현주소를 자가진단하며 새로운 방안을 모색하려는 목소리도 들려오고, 역사적인 근거를 통해 가요의 ‘정체성 찾기’가 시도되었으며, ‘계보 세우기’와 같은 의미 있는 작업들도 진행되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시각의 차이, 담론과 실상의 괴리 등으로 인하여 여러 가지 불협화음을 내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이 책 [가요, 어떻게 읽을 것인가]는 가요에 대한 또 다른 독해법으로써 현상과 쟁점을 중심으로 한 읽기를 시도한다.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1장은 ‘가요’와 ‘가수’라는 용어에 관해서, 2장은 다양한 음악 장르를 통해서, 마지막 3장은 ‘대중성’과 ‘통속성’ 그리고 ‘여성성’에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 가고 있다.

작자의 의도대로 ‘현상’과 ‘쟁점’을 중심으로 한 고찰은 서양 대중음악 양식의 유입사나 비중 있는 몇몇 인물의 교체사로 가요의 역사성을 규정하는 관행에 비해 어느 정도 신선함을 안겨준다. 예를 들어, 몇 년 전 한 평론가가 ‘가요’라는 용어를 폐지하고 ‘한국 대중음악’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 데 대해(‘가요’가 일본의 ‘기미가요’에서 유래된, 왜색 짙은 용어라는 이유에서였다), 고대 문헌인 [시경(詩經)], [서경(書經)] 등에서 근거를 찾아 ‘가요’는 동양에서 오래 전부터 보편적으로 쓰이던 말이라는 것을 밝히는 과정이나, 서태지와 아이들을 시작으로 한 랩과 힙합의 폭발적인 인기가 구술전통과 맞닿아 있음을 보여주는 작업, 또 이박사나 달파란의 예를 바탕으로 뽕짝과 테크노의 만남에서 컬트와 역설의 미학을 피력한 점 등이 그러하다.

하지만 동시에 하나 하나의 현상, 쟁점 등에 집착하다 보니, 책 제목에서 기대했던 것처럼 가요를 과연 어떻게 읽어야 하는 것인지에 관한 총체적인 개념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는다. 개별적인 현상 탐구에서 이끌어 내는 궁극적인 대안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 없이, 문제 제기와 간략한 돌파구에 관한 언급에 머물러, 책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까지 가요사에 대한 지식의 파편들이 어지럽게 부유하며 정리되지 않는 아쉬움을 남긴다. 단행본 책 한 권이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렇지만 적지 않은 음악 관련 종사자들이 아직도 ‘가요’를 ‘대중음악’이라 부르며 마치 한순간에 지위가 격상된 듯한 착각에 도취되어 있거나, ‘가수’와 ‘뮤지션’의 구분짓기에 집착하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책의 저자는 보다 근원적인 부분을 건드려 주고 있다. 이는 일상 생활 속에 깊숙하게 침투해 있는 가요가 만들어 내는 수많은 현상들 속에 자칫 간과하기 쉬운 부분들을 회의해 볼 기회를 준다는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결국 가요는 가요일 뿐이며 단지 어떻게 생산되고 수용되는가 라는 시스템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 “말의 거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가요와 그것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의 실상을 끊임없이 응시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부단한 노력이라 할 수 있다.”(본문 중에서) 따라서 지금까지의 연구가 가요의 역사를 통해 현재를 이끌어 내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는 그 경험을 바탕으로 현상의 문제들을 다각적으로 심도 깊게 고민해 보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연구가 보다 활발해질 필요가 있다. 방송용 ‘모델’형 가수나, ‘개그맨’형 가수가 우리 가요의 해답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아마도 책을 덮는 순간까지 심기가 편하지 않았던 것은 아직 우리 가요계가 해결해 나가야 할 문제들이 산재해 있음을 잊지 않고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20010328 | 김규연 rayna@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