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401062253-0307ericclaptonreptileEric Clapton – Reptile – Reprise/WEA, 2001

 

 

점점 더 세련되어 가는 기타의 신(神)

지미 페이지(Jimmy Page), 제프 벡(Jeff Beck), 에릭 클랩튼. ‘록계의 3대 기타리스트’라는 호칭은 이미 진부해져 버린 지 오래지만, 근 4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모습에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렇게 같은 호칭으로 묶여있지만 세 명은 참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여전히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라는 무게에 눌려 있는 듯한 지미 페이지는 예전의 영광을 추억하는 음악들을 들려주고 있고, 신작 앨범에서 보여주었듯 시류를 거역할 수 없었던 일렉트로니카와의 접목 속에서도 순간순간 오히려 최근의 그것을 앞서나가는 실험성을 보여주고 있는 제프 벡은 그의 기타 음색만큼이나 여전히 날선 음악을 들려주고 있다. 그럼 에릭 클랩튼은 어떤가? 크림(Cream)과 야드버즈(Yardbirds) 시절의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세 명 중에서 가장 많은 음악적 굴곡을 거친 뮤지션으로 생각되겠지만, 그걸 기억하는 몇 안되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는 분명 현재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기타리스트일 것이다.

2000년 비비 킹(BB King)과의 합동 음반에서의 블루스 협연 이후 에릭 클랩튼이 새롭게 발표한 [Reptile]은 전통(블루스)에 대한 고수와 대중성에 대한 고려를 잘 조화시킨 음반이다. 서로 지나치게 배려한 나머지 진부한 교과서 같은 음악이 되어 버렸던 비비 킹과의 합동 음반에 비하면 이번 음반은 자신의 목소리를 찾은 듯 우선 활력이 넘친다. 이는 첫 곡 “Reptile”의 세련되고 산뜻한 보사노바에서 이미 드러난다. 단순한 보사노바 리듬의 차용을 넘어서는 감각을 보여주는 이 곡은 에릭 클랩튼이 라틴 열풍에 무임승차하려는 것이라기보다는 더욱 유연하게 자신의 음악 욕구를 표현하려는 과정에서 낳은 결과물로 보인다. 그가 포플레이(Fourplay)의 베이시스트 네이든 이스트(Nathan East), 재즈 드러머 스티브 갯(Steve Gadd), 키보디스트 조 샘플(Joe Sample) 등과 같이 팝보다 더 파퓰러함을 추구하는 스무쓰 재즈(Smooth Jazz) 계열의 세션맨들과 함께 했다는 점을 보면 이번 앨범의 의도가 무엇인지는 좀 더 분명해진다.

에릭 클랩튼은 지금보다 더 유연해지고 싶어하는 듯하다. 그게 맞다면, 그는 이 음반을 통해 그 의도를 자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방식으로 풀어낸 것 같다.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7곡의 커버곡은 힌트를 준다. 그는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I Ain’t Gonna Stand For It”, 레이 찰스(Ray Charles)의 “Come Back Baby”, 아이슬리 브라더스(Isley Brothers)의 “Don’t Let Me Be Lonely Tonight”, J.J. 케일(J.J. Cale)의 “Travelin’ Light”, 빅 조 터너(Big Joe Turner)의 블루스 고전 “Got You On My Mind”, 머레이 멘처(The Muray Mencher)와 빌리 몰(Billy Moll)의 “I Want A Little Girl”, 그리고 칼리 사이먼(Carly Simon)과 데니스 모건(Dennis Morgan)의 “Broken Down”를 리메이크했는데, 이는 전통에 기댄 채 대중을 유혹하는 안전함,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리메이크가 향수를 자극하는 용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유연함과 세련됨을 표현하는 용도로 쓰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 음반이 전통에만 기대 있는 음악은 아니다(커버곡과 같은 수인 7곡의 오리지널 곡이 담겨 있다). “Believe In Life”, “Modern Girl”은 “Reptile”에 이어 라틴 음악(라틴 재즈)의 감각을 느끼게 하는 곡인데, 특히 “Believe In Life”에서 들려주는 그루브는 단순한 라틴 리듬의 차용을 넘어 포크와 블루스, 라틴 리듬이 절묘하게 섞인 그만의 음악을 표현해낸다. 이처럼 자신의 색깔을 잃지 않으면서 대중의 만족을 이끌어내는 그의 감각은 이제 어느 경지에 오른 듯하다. 반면 “Find Myself”, “Superman Inside” 같은 곡들은 지난 앨범에 이어 자신의 궁극적인 음악적 종착역이 블루스라는 것을 설명해주기 위한 곡들이며(흑인음악의 근원을 둔 블루스라기보다는 J.J. 케일 같은 컨트리에 뿌리를 둔 블루스 쪽에 강한 느낌이긴 하지만), 보사노바 리듬이 상쾌한 음반의 시작과(“Reptile”) 빌리 프레스턴(Billy Prestern)의 애잔함 넘치는 하모니카가 맛을 더하는 음반의 끝은(“Son & Sylvia”) 음반 전체의 느낌을 좌우하는 백미이다.

1992년 “Tears In Heaven”부터 시작한 그의 팝적 경향이 이번 음반에서 가장 고급스러워 졌으며, 이제는 안정감마저 느껴진다. 하지만 문제는 세련된 만큼 진부하고 유연해진 만큼 겉도는 듯한 느낌이며, 크림과 야드버즈를 이끌면서 1960-70년대 록 음악의 전형을 만들어가던 그 ‘기타의 神’은 오간 데 없이 너무 쉽게 동화되어 가는 건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실험하며 여전히 날선 음악을 보여주는 제프 벡이나, 고집스럽게 레드제플린의 아우라를 유지해 가는 지미 페이지에 비한다면 말이다. 그건 음악스타일 만큼이나 “Tears In Heaven” 이후로 일관되게 고집하고 있는 ‘따뜻함’ ‘가족애’ 같은 내용에 관련된 것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가족주의가 미국식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가장 큰 동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늘 시대적 경향을 앞서가던 ‘기타의 神’ 에릭클랩튼을 먼저 접했던 사람에게는 여전히 아쉬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사이먼 클라이미(Simon Climie)와 함께 한 낯선(블루스에 앰비언트를 접목했던) 프로젝트 T.D.F 가 문득 그리워지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기타리스트도 나쁘지는 않지만, ‘기타의 神’ 에릭클랩튼을 기억하고 싶은 팬들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쉬움은 그뿐이다. 20010327 | 박정용 jypark@email.lycos.co.kr

8/10

수록곡
1. Reptile
2. Got You On My Mind
3. Travelin’ Light
4. Believe In Life
5. Come Back Baby
6. Broken Down
7. Find Myself
8. I Ain’t Gonna Stand For It
9. I Want A Little Girl
10. Second Nature
11. Don’t Let Me Be Lonely Tonight
12. Modern Girl
13. Superman Inside
14. Son & Sylv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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