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401060338-0307throughthesloeThrough The Sloe – Through The Sloe – Balloon And Needle, 2000

 

 

선입견 없이 떠나면 좋을 몽환적인 음(音)의 여행

음악은 또 다른 세계로 이끌어주는 길잡이가 된다. 단순히 현실에서 벗어나는 기능으로 감정의 발산만을 도와주는 데 그치지 않고 육체의 이탈을 자아내는, 4차원의 공간으로 이동하게끔 도와주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이동의 순간이 고통스럽지 않게 조용히 출발하여 부드럽게 안착할 수 있도록 해준다면, 더불어 변화의 교차로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준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몇 가지 지침사항이 따르는데, 첫째로 심신을 편하게 만든다. 말하자면 음악 한번 듣고 기분전환하자는 식의 충동청취가 아니라 의식이나 세례를 위한 진지한 마음가짐을 뜻한다. 주변을 어둡게 만들고 모든 소음을 없앤 후 바른 자세를 취하자. 그리고 음악과 자신을 동등한 관계로 여기지 말고 경외의 대상으로서, 경배의 순간을 맞이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로 어떤 선입견을 불허한다. 조금 듣다가 “이건 누구 음악과 비슷하네”라든지 “이 분위기는 지금 상태와는 안 어울려”라며 성급하게 skip이나 random에 손대지 말 것. 만약 이러한 지침을 어기게 된다면 마음은 흐트러지고 불안정한 자세가 되어 영영 그 음악 속에 숨겨 있는 ‘비밀 통로’를 찾지 못할 것이다.

어디서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일개 음악 하나 가지고 이런 식으로 까다롭게 조건을 내세우는 것은 무엇 때문이냐고 불평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 음악은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 앞으로의 일정마저 불투명한 상태로 최준용이라는 원년 멤버 한 사람만 남아 있다는 쓰루 더 슬로(Through The Sloe)는 어쩌면 두 번째 앨범이 채 나오기도 전에 사장되거나 다른 장르의 음악으로 전향할지도 모르는 상태이기에, 어렵게나마 이 앨범을 듣게된다면 그 정도쯤은 수월하지 않은가. 이들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들은 아래의 사이트를 참조하면 될 터이니 조금만 더 그(들)의 음악에 대하여 이야기해보자. 성질 급한 사람이라면 이쯤에서 되돌아가도 상관없다.

투박하게 말하자면 쓰루 더 슬로의 음악은 이모코어(emo-core) 정도로 분류할 수 있겠다. 그리고 전부터 이런 음악에 관심이 있었다면 로우(Low)를 떠올릴 수도 있고 옐로 키친(Yellow Kitchen)의 중기 정도를 연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급적 이러한 연결고리를 만들지 말기를. 순수한 여행에 가장 적대적인 것 중의 하나는 선입견일터, 이 곡이 만들어진 시기를 고려한다면 쉽게 모방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약 57분 가량 되는 러닝타임동안 이 음악은 드문드문 앞선 이들의 흔적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어느 곡하나 두드러지는 자극 없이, 듣는 이를 흐르는 물줄기에 동승시켜 유연한 굴곡을 함께 헤쳐 나가는 듯한 느낌을 주는 던진다. 가령 첫 곡 “Home”은 기타 리듬이 반복되면서 안개 속을 헤쳐 나오듯 희미하고 뿌옇게 다가오고 여기에 또 다른 연주가 점층적으로 붙는 구성을 보이는데, 이는 음반 전체에 공식처럼 적용된다. 때로는 독립 레이블이기에 가능한 경우일 듯 (의도적인 장치였을지도 모르지만) 기존의 음악처럼 깨끗하지 않은, 필터에 의해 한 꺼풀 막힌 듯한 윙윙거림이 상황을 몽롱하면서 편안하게 만든다.

그럼에도 간혹 레코드 바늘 튀듯 유연한 연결이 부족한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첫 곡에서 두 번째 곡 “Eventhough”로 넘어가는 동안 이미지는 우주로 확장되어 청자를 흥분하게 만들지만 급작스럽게 다음 곡에서 그 분위기가 소강 되는 바람에 당황스럽다. 6분이 짧은 것은 아니지만 내심 이 곡을 10여분정도까지 끌고 가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Big Hug”의 경우 수록곡 중 가장 율동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런 만큼 전체적인 분위기에서 어긋나 있고 게다가 불현듯 곡이 멈추는 것도 아쉬운 부분중 하나이다. 싱글로서는 적극 추천할 만하지만 앨범의 조율을 생각하여 마지막 곡으로 배치했다면 어땠을까. 마지막 곡 “Broken Heartbeat”도 어느 정도의 탄력을 갖추고 있기는 하다. 그밖에 영어로 된 가사는 단점이자 장점이기도 한데, 현실을 외면한 추상적인 이미지로 점철되었다는 점에서 단점인 반면, 마치 스캣(scat)을 듣는 듯한 기분을 주었다는 점에서 장점이다. 그래서일까, 때로는 두 곡의 연주곡보다는 보컬이 들어간 한 곡이 더 낫게 들리기도 한다.

마루야마 겐지는 <소설가의 각오>에서 “영화로는 절대로 표현하기 어려운 시각적 이미지를, 문자이기에 가능한 선열한 이미지를 창출해내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영화를 뛰어넘는 소설, 시각적 이미지가 강렬한 ‘시소설’을 완성했다”라고 토로했다. 이 문장에서 “문자”를 “음악”으로 대치해 본다면, 부족한 글이 어느 정도 보완될까. 20010327 | 신주희 zoohere@hanmail.net

7/10

수록곡
1. Home
2. Eventhough
3. You Know It’s True
4. Around Your Neck
5. Big Hug
6. Love Is A Dream
7. Snowblind
8. Whitetail
9. Last Song On The Earth
10. Broken Heartbeat

관련 사이트
레이블 Balloon And Needle
http://www.balloonnneedl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