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315113359-tortoiseTortoise – Standards – Thrill Jockey, 2001

 

 

컬트화된 포스트록의 절충과 혁신

‘평점’, 혹은 ‘별점’이라는 제도는 영화와 록 음악에만 있는 것 같다. 괴테의 소설이 “10점 만점에 9점”이라던가 세잔의 회화가 “별 5개 만점에 별 4개 반”이란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하지만 록음악이나 영화에 있어서 평점 제도는 단순한 흥미를 넘어서 아티스트가 ‘잡지(에 글쓰는 사람)들’에 어떻게 비추어지는가를 가늠할 수 있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어쨌든 토오터스는 몇 안 되는 ‘무조건 9점 이상’ 그룹이다.

그도 그럴 것이 토오터스는 ‘평론가’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 일단 감정적이기보다는 지적(知的)이며, 한 5년 전쯤 포스트록(post-rock)이라는 새로운 흐름의 선구자로 언급되었고, 적당히 실험적이지만 그렇다고 듣기 싫을 정도는 아니니깐, 또 빌보드 앨범 차트 100위권에 오를 정도로 많이 팔리지 않을 것이 명백히 뻔한 컬트(cult)적인 데다가, 원래 예술적인 것, 훌륭한 예술이란 이렇게 이해할 수 있는 듯 이해가 가지 않는 데에서 시작하는 것이니깐 말이다.

비꼬는 게 아니라 이렇듯 ‘개인화’될 수밖에 없는 음악(특히 한국이라는 변방에서), 나 혼자만 알고 나 혼자 찾아서 나 혼자 듣는 음악이라는 아쉬움이 들어서 그렇다. 하여간 이야기를 계속하자면 음악은 그 역사에서부터 지극히 이성적인 형식이었고(물론 ‘가슴으로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요가 매우 거세다), 토오터스의 네 번째 앨범 [Standards] 또한 감동의 물결이 밀려온다는 생각보다는 머리로 소리의 공간감을 즐기는 지적 유희의 음악이라고 하는 편이 훨씬 낫겠다.

음색이나 곡의 구성이 전작인 [TNT](1998)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은 없지만, 이전보다 조금 더 드럼앤베이스(drum’n’bass) 풍의 전자 드럼이 자주 쓰였고 재즈 분위기가 조금 더 강해졌다. 그렇다고 토오터스의 품질을 볼 때 단순히 전작의 습작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를 내리기는 힘들다. 마림바를 연상시키는 타악기 소리나 앰비언트에서 들을 수 있는 전자음들은 비중은 크지 않지만 테크노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인상을 준다. 짧은 멜로디가 계속 반복되는 듯하다가 문득 변해버리는 기타 소리와 조금은 강박적인 전자 효과음들은 이들의 매력을 한층 더해준다. “울리면서 움직이는 형식”을 문자 그대로 느끼게 해주기도 하고, 각 악기가 따로 따로 노는 듯하면서도 하나로 어울리는 것이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이미지로 보여지기도 한다. 혹시 재즈 팬이라면 디지털 테크놀러지를 잘 활용하는 록 밴드가 연주한 [Bitches Brew](Miles Davis, 1969)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번 앨범에서도 도를 넘지 않는 훌륭한 절충이 이루어졌다.

세 번째 곡 “Benway”는 도입부의 긴장감 도는 전자음과 후반부의 서정적인 재즈 스타일의 멜로디가 좋은 대조를 이룬다. 베이스 기타는 (예전에도 그랬듯이) 곡 전체에 두껍게 깔리며 기본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네 번째 곡 “Firefly”는 록 밴드가 연주하는 앰비언트이고 곧이어 다음 트랙 “Six Pack”에서는 댄스 감각이 가미된 드럼 위에 이펙트가 걸린 베이스 기타와 마림바(?) 소리가 아트 록 같은 분위기를 만들지만 그럼에도 21세기적이다. 앨범의 후반부(“Blackjack”과 “Speakeasy”)에 가서는 관악기 비슷한 소리가 나오면서 약간은 ‘영화 음악적’이기까지 하다. 곡마다 비슷한 분위기인 듯하면서도 매우 개성적이라 일일이 쓰지는 못하겠다.

다시 한 번 고민하게 되는 것이, (전작과 마찬가지로) 토오터스에 대한 열렬한 환영(웨이브 독자들)과 철저한 무관심(웨이브 독자가 아닌 사람들)이 교차하는 이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가이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기에는 그 간극이 너무나도 크고, 그렇다고 이런 음반을 대중적으로 알릴 용기나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영화판을 보면 [캐스트 어웨이]와 함께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나 [어둠속의 댄서]도 잘 나가고 있는데(물론 관객수 차이는 있겠지만 어쨌든 신문에 광고는 같이 나오지 않는가), 토오터스는 라이센스는 커녕 아직까지 수입조차 제대로 안 되고 있으니 말이다. 20010311 | 이정엽 fsol1@hananet.net

9/10

수록곡
1. Seneca
2. Eros
3. Benway
4. Firefly
5. Six Pack
6. Eden 2
7. Monica
8. Blackjack
9. Eden 1
10. Speakeasy

관련 사이트
Thrill Jockey 레이블 사이트
http://www.thrilljocke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