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m Mcrae – Tom McRae – db Records, 2000 / BMG Korea, 2001 제프 버클리가 부르는 닉 드레이크 Song 언제부터인가 영국음악의 동향 하나 하나가 음악 매니아들을 중심으로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는 듯하다. 인터넷의 영향 때문이겠지만 어쨌든 본인처럼 게으른 청자에게 낯설지만 매혹적인 음악들을 쉽게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은 고맙기 그지없을 뿐이다. 톰 매크레(Tom McRae) 같은 음악이 우리에게 발견되기까지 몇십 년이 걸리던 예전에 비하면(소수 ‘팝 컬럼니스트’들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던) 요즘은 얼마나 좋은 환경인지 모르겠다. 닉 드레이크(Nick Drake), 밥 딜런(Bob Dylan), 콜드플레이(Coldplay)라는 키워드, 포크 뮤지션이라는 사실, 이 앨범이 데뷔작이라는 정도의 정보만을 갖고 듣게 된 그의 음악은 정보의 양과는 상관없이 듣는 이를 단숨에 매혹시켜버릴 중독성을 갖고 있다. 보이/걸 그룹 음악이나 핌프 록 정도는 아니더라도, 이젠 어느덧 작은 흐름으로 자리잡은 포크팝(엘리엇 스미스, 벨 앤 세바스찬 등으로 대표되는). 바로 그 언저리에 있다는 이유로 주목받은 듯하지만, 톰 매크레의 음악은 우울함이나 낭만으로 승부를 거는 최근 몇몇 뮤지션들의 음악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차별성을 갖고 있었다. 본인이 직접 연주한 어쿠스틱 기타와 현악 4중주 반주가 앨범 전체를 감싸며 곡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나타내지만, 그 내면의 느낌은 말랑말랑한 우울함이나 서정적인 낭만보다는 삶에 대한 날선 증오와 직설적인 분노에 가깝다. 적당히 아련하고 모호한 가사가 아닌 공격적인 분노로 가득 찬 직설적인 가사(“The Boy With The Bubblegun”)와 보컬은 ‘포크팝’보다는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의 소울풀한 비장미에 가깝다. “Untitled” 같은 곡에서 보여지는 곡 구성은 1970년대 영국 록 음악의 드라마틱한 형식미를 나타내기도 하고, 첫 곡 “You Cut Her Hair” 같은 곡에서는 트래비스(Travis)나 콜드플레이의 매력적이고 낭만적인 훅을 들려주기도 한다(하지만 독일 유태인 감옥 캠프의 머리를 밀어버린 소녀의 사진에서 분노 어린 영감을 얻었다는 사연처럼 그 낭만조차도 말랑하지 않은 현실에 뿌리를 둔 것이다). 서서히 끓어올라 끝으로 침잠해 가는 “End Of The World News(Dose Me Up)”나 철저히 리듬을 배제한 멜로디와 카리스마란 말로밖에 표현하기 힘든 보컬이 돋보이는 “2nd Law”와 “Bloodness”, 그만큼이나 뛰어난 어쿠스틱 기타와 퍼커션, 하모니카를 직접 연주해내는 “A&B Song”, R.E.M.의 흔적이 엿보이는 “Language Of Fool”(그러고 보면 그의 음악은 근래 포크팝의 영악한 감성보다는 R.E.M.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굵은 선의 느낌이다), 앨범의 마무리를 짧은 긍정으로 끝내는 “I Ain’t Scared Of Lightning”까지 각각의 곡들이 모두 높은 완성도를 갖고 있어 지루하지 않으면서도 앨범전체의 느낌을 훼손하지 않는 원숙한 배려도 느껴지는 앨범이다. 개인적으론 벌써 올해의 음악으로 꼽게 될 것 같은, 기대치 이상의 너무나 깊은 여운을 주는 그런 음악이었다. 사실 이런 음악은 들린다기보다는 느껴지는 음악에 속하며, 음악보다는 감수성이 먼저 다가온다. 그건 그만큼 보편적이지 못한 음악이 될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다. 어떤 이들에겐 컬트가 되겠지만, 어떤 이들에겐 불편한. 하지만, 조금만 더 귀를 기울이면 삶과 음악에 대한 이성적인 성찰을 느낄 수 있다. 닉 드레이크와 비교되는 그의 진짜 매력도 사실은 그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앨범 재킷은 영화 [Total Eclipse]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표현한 천재 시인 랭보의 모습을 닮아 있기도 하다. 천재적이었으며 당시로는 충격적일지도 모를 동성애와 자폐적인 성향을 가진 그의 삶과 톰 맥크레의 음악은 썩 어울리는 한 쌍인 듯하다. 많지 않은 그의 정보에 답답하다면, 공식 사이트를 방문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오래된 하드커버 형식의 책을 디자인 테마로 삼은 공식 사이트는 인터페이스 같은 것은 부차적이라는 듯 도무지 불편하고 무뚝뚝하다. 하지만 오히려 그 때문에 그의 음악이 트렌드로서의 복고가 아닐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 데 도움이 된다. 여하튼 반가운 소식은 이 앨범이 벌써 라이센스로 나와있다는 사실이며, 늘상 부러운 것은 서포크(톰 매크레의 출신지인 영국 남동부 변두리) 같은 척박한 변두리에서 들려주는 영국 대중음악의 깊이와 시장의 너비다. 20010313 | 박정용 jypark@email.lycos.co.kr 8/10 수록곡 1. You Cut Her Hair 2. End Of The World News(Dose Me Up) 3. 2nd Law 4. Bloodless 5. Draw Down The Stars 6. One More Mile 7. The Boy With The Bubblegun 8. Hidden Camera Show 9. A&B Song 10. Language Of Fools 11. Untitled 12. Sao Paulo Rain 13. I Ain’t Scared Of Lightning 관련 사이트 Tom McRae 공식 사이트 http://www.tommcra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