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228051521-LowLow – Things We Lost in the Fire – Kranky, 2001

 

 

그런지 납골당에서 울려 퍼지는 성가

로우는 밀교적(密敎的)이다. 가라앉아 서두를 것 없다는 듯 천천히 이동해 가는 그들의 사운드 침전물 위로 고립감과 신성(神性)이 천천히 떠오르는 것을 즐길 수 있는 사람만이 그들의 제의에 참여할 수 있다. 아마도 그것은 슬로코어(slowcore)라 이름하는 스타일의 특성 중 하나겠지만 로우는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음성적(陰性的)인 진행방식을 보여준다. 동화되지 못한 사람에겐 일면 ‘동어 반복적인 퇴행’으로 여겨질 정도로.

그런데 [Things We Lost in the Fire]는 다르게 이야기해야할 것 같다. 이번 음반의 프로듀서인 스티브 앨비니(Steve Albini) 때문이다. 알고 보니 그는 이미 1999년에 이들의 음반 [Secret Name]을 녹음한 전력이 있었다. 로우 특유의 밀교적인 대기(大旗)에 지하 리허설 실을 방불케 하는 인디적 현장감을 살짝 불어넣는 것으로 본업을 다 했던(?) 그는 이번에 보다 적극적으로 ‘본색’을 드러낸다. 이 말에 픽시즈(Pixies), 너바나(Nirvana), 피제이 하비(PJ Harvey), 수퍼청크(Superchunk) 등을 날 것 그대로의 거친 질감과 후끈후끈한 열기로 흥분시켰던 그의 유명한 에너지 가공법을 상기하며 로우의 음악을 ‘왜곡’시키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워진다면 안심해도 좋다.

로우의 변화는 ‘미묘한’ 것이기 때문이다. “인디록의 스탈린(알비니의 별명)”과 함께 로우는 기존의 음악 원칙인 ‘느리게 침잠하는 미니멀리즘(slowly sinking minimalism)’을 유지하면서 보다 풍부해진 멜로디와 그런지적인 연주 스타일을 조심스럽게 가세시킨다. 수록곡 “Closer”의 한 구절을 빌어 말하자면 그것은 “분노로 몰아치는 어두운 바다 표면 아래에서 잠자고 있는 배(on a dark, raging sea / ships lay sleeping beneath)”와 같은 사운드다. 잃어버린(lost) 그런지의 ‘불(fire)’속에서 되찾은 것들(things)에 색다르게 골몰하는.

너바나의 “Rape Me” 인트로를 기억하게 하는 기타 인트로로 시작, 단아한 반복악절(riff) 위로, 언제나처럼 스네어 드럼과 하이햇만으로 비트를 만들어내는 “Sun Flower”는 “그런지의 주류 장악에 대한 반동”으로 시작되었다는 그들의 음악 여정의 지표처럼 들린다. 그 반동(reaction)이 거부가 아닌 ‘확장’임을 이제 알겠다. 하이햇을 세밀하게 난타하는 것으로 ‘열기’를 피워 올리고 튜닝을 심하게 낮춘 후 반복 악절로 돌고 도는 기타가 음폭을 확장하는 “Whitetail”은 가라앉아 있을 때의 소닉 유스(Sonic Youth)처럼 은근한 불안감을 조성한다.

“Dinosaur Act”는 로우의 변화를 느낄 수 있는 가장 좋은 예다. 디스토션으로 까칠한 일렉트릭 기타와 건조하게 터져 나오는 드러밍은 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가스펠 신서사이저와 가만히 수평으로 울려 퍼지는 트럼펫과 함께 알비니의 손길을 거친 로우의 ‘에너지’를 분명히 느끼게 해 준다. “In Metal”에서는 게스트 보컬인 홀리스 매(Hollis Mae)의 새된 비명 소리를 집어넣어 언뜻 ‘엽기적’이란 생각까지 들 정도다. “July”에서도 디스토션 기타와 드러밍이, 몽환적 노스탤지어로 가득 찬 신스(synth) 사운드에 장중함을 더해 준다. 여리게 잔향(殘香)하는 “Laser Beam” “Whore” “Kind of Girl”은 알비니라는 부가물 이전에 로우가 확립한 아름다움을 들려준다. 하지만 “Like a Forest”야 말로 이 앨범 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이란 생각이 든다. 현악과 피아노, 다운피킹으로 일관하는 어쿠스틱 기타와 하이햇 드러밍, 성실하고 경건한 하모니를 이루는 스파호크&파커 중창단의 결합은 “서두르지 말라(take your time)”는 가사와 함께 슬로코어의 미학원리가 ‘속도’의 특성을 넘어 ‘치유’의 측면에서 얼마만큼 빛을 발할 수 있는지를 감동적으로 전달해 준다.

디스토션, 오밀조밀한 멜로디, 노이즈 이펙트 등을 언급했지만 이 모든 것들은 ‘위협적’이거나 ‘팔리기 위해’ 튀어나오는 것들이 아니다. 다시 말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로우만의, 로우적인 코드 내에서 ‘여전하면서 매우 다른’ 어떤 것들을 드러내는 방식이다. 그것이 [Things We Lost in the Fire]를 위한 로우의 의도였다면 알비니를 ‘재선택’한 것부터 새로운 질감과 정서를 위한 반향 모두가 ‘진일보’한 로우라는 생각이다. 그들은 다시 피워 올린 불 속에서 잃어버린 것들을 새롭게 찾아냈다. 20010226 | 최세희 nutshelter@hotmail.com

9/10

수록곡
1. Sunflower
2. Whitetail
3. Dinosaur Act
4. Medicine Magazines
5. Laser Beam
6. July
7. Embrace
8. Whore
9. Kind of Girl
10. Like A Forest
11. Closer
12. In Metal
13. Overhead (bonus on LP only)
14. Don’t Carry It All (bonus on LP only)

관련 사이트
로우 공식 사이트
http://www.chairkicker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