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41리채(Leetzsche) – Endless Lay – Toshiba/EMI, 2001

 

 

코스모폴리탄의 존재에 대한 구심적 응시

그에게는 많은 전제들이 따라다닌다. 그리고 무겁다. 경마장을 방불케 하는 스타시스템에서 ‘자발적으로 탈출했던’ 전설은 미국과 일본, 영국을 넘나드는 전 지구적(?) 활동 반경으로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이 되어버린다. 여기에 척박한 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작가’라 불릴 수 있는 몇 안되는 여성가수라는 희소성이 보태지면서 그에 대한 평가는 종종 비의(秘儀)의 경계를 넘어선다. 숱한 전제들은 음악에 편하게 접근하는데 분명 장애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를 이상은이 아닌 리채로 인정하는 사람이라면, 음반을 선택하는 순간부터 자의식의 궤적을 따라가야 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완전하게 떨쳐버리기 힘들다. 정작 음악은 무중력의 세계를 지나 ‘해탈’의 경지로 질주하고 있는데 말이다.

신작 [Endless Lay]로 그도 이제 열 장의 앨범을 가진 어엿한(?) 중견이 되었다. 이번 앨범 역시 전 작업을 그의 음악적 파트너인 다케다 하지무와 프로젝트 밴드 펭귄스와 함께 했다. 영어로 부른 노래가 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도 익숙하면서 예견된 방향이었다. 한마디로 이번 앨범은 1996년 [공무도하가] 이후 걸어온 음악적 노정 – 글로벌 스탠더드를 갖춘 동양적 서정성(?) – 의 연장선상에 있다. 오버 더빙된 보컬은 신비로운 여운을 남기고, 현악기와 관악기의 적절한 개입(혹은 신서사이저로 조율된 사운드 이펙트)은 이국적이다. 선(禪)적인 영롱함과 그루브함을 동시에 뽑아내는 기타톤의 다채로운 운용 역시 하지무가 구현하는 사운드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일까? 다국적 정체성을 체화한 그의 음악에서는 여전히 낯설음과 익숙함의 경계에서 서성거리는 코스모폴리탄의 자화상이 숨어있다.

그러나 눈치 빠른 이들은 알 것이다. 이번 앨범에서 그의 속내를 아낌없이 내보였다는 사실을. 현해탄과 대서양을 건너면서 그도 어느새 성숙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삼십줄에 들어서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앨범을 가리켜 ‘편해졌다’고 평하는 이들을 심심찮게 만나볼 수 있다. 실제 앨범의 두 번째 곡 “Green Tea Party”에서는 업템포의 편안한 팝을 들려주기도 한다. 결벽에 가까울 정도로 고수하던 로파이(lo-fi) 지향의 미니멀한 사운드도 조금은 윤기 있고 풍성해졌다. 이를 두고 누구보다 혹독한 열병을 앓으며 찾아낸 음악적 정체성이 이제 어느 궤도에 올랐다는 이야기를 덧붙여 볼 수 있다. 그의 음악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풍부한 공간감과 이미지는 이제 거의 범신론적(?) 실존으로 자리잡았다(어느 누가 시간과 삶을 이야기하는 노래의 무게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세상을 응시하던 원심적(遠心的) 조망은 존재에 대한 구심적(求心的) 응시로 대치되었다. 그래서일까? 그의 목소리는 한결 담담해지고 때로는 천진하게 들리지만, 그와 그의 자의식이 음악 그 자체가 되고 어느새 벽(癖)이 되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그래서 나는 한결 편안해졌다는 그의 음악을 듣기가 여전히 버겁다. 20010225 | 박애경 ara21@nownuri.net

6/10

수록곡
1. Endless Lay
2. Green Tea Party
3. 오늘 하루
4. Tomorrow
5. Summer
6. The Morning Song
7. 삶
8. A Prayer
9. 어린 날
10. Get Over It
11. Time Fil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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