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스 아티스트 – A Tribute to 들국화 – Yacom/Universal, 2001 들국화에 헌정하는 후배 뮤지션들의 행진 ‘한국 대중음악사에 길이 남을’ 들국화 1집이 1985년에 발표되었다. 그리고 1986년 12월에는 이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콘서트에 4만여 명이라는 놀라운 숫자의 관객이 모여들었다. 필자는 당시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들국화의 음악이 당시 대중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어느 정도의 파장을 일으켰는지 이렇게 전해 오는 이야기로만 알 수 있을 뿐이다. 그 시절 들국화는 험난한 음악적 환경 속에서도 수백 차례의 공연을 하면서 스스로 록 밴드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했다는 것도 그런 이야기 중 하나다.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어떻게 해서든 그 때로 되돌아가 ‘젊은’ 들국화의 모습과 그들의 음악에 열광하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보고 싶어진다. 그러나 어쨌든 들국화는 대중들의 환호를 뒤로한 채 곧 해체되고 말았다. 1998년 들국화는 오리지날 멤버로 재결성되었고, 작년부터는 단독공연을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시금 들국화에 주목하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들국화 헌정 음반이 나오게 되었다. 음반을 듣기 전부터 눈길을 끈 부분은 “그것만이 내 세상”이 수록곡 리스트에 두 번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하나는 권인하와 박효신이 함께 불렀고, 다른 하나는 강산에가 노래했다. 권인하와 박효신이 함께 한 “그것만이 내 세상”은 신구(新舊)의 조화를 노렸다고 할 수 있겠는데, 두 사람의 스타일은 무척 대조적이다. 권인하가 원곡에 가까운 보컬을 구사한다면 박효신은 R&B 스타일로 부른다. 두 사람 모두 고음역대를 잘 소화해 내고 있긴 하지만 원체 목소리가 달라서 그런지 함께 부를 때는 그리 조화롭게 들리지 않는다. 한편 강산에는 원곡과 상당한 거리감을 두는, 조금은 의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원곡은 조용하게 시작했다가 에너지를 분출하면서 ‘내지르는’ 느린 곡인데 반해, 강산에의 노래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볍게 이어지며 어느 정도 속도감이 있는 리듬으로 이루어진 포크 록에 가깝다. 들국화의 팬들이라면 부드러운 강산에의 노래보다는 권인하와 박효신의 힘찬 보컬을 선호할 듯 하지만, 힘을 주어 정면 돌파하기보다 오히려 여유 있게 우회로로 돌아가는 강산에의 모습도 좋아 보인다. 멋진 정면 돌파를 시도하다가 실패한 곡은 신해철이 부른 “사랑한 후에”다. 신해철은 신서사이저와 기타 솔로에 의한 화려한 편곡에다 허스키한 목소리를 덧붙여서 웅장한 느낌의 대곡을 만들고자 했으나 욕심이 앞섰던 것 같다. 오히려 비슷하게 대곡을 지향했지만 아슬아슬하게 도를 넘어서지 않은 이승환의 노래가 좀 더 설득력이 있다. 이승환은 “사랑일 뿐이야”에서 현악 연주와 합창을 배경으로 정말 ‘자신만만하게’ 노래를 부르는데, 듣는 사람에 따라 조금 부담되는 면이 없지 않지만 어쨌든 에너지가 넘치는 록 사운드를 선보인다. 한편 대곡과는 거리가 먼 들국화의 소품과 같은 서정적인 노래 중에는 박학기와 조규찬이 부른 “매일 그대와”가 단연 돋보인다. 박학기와 조규찬의 감미로운 목소리가 곡 자체와 어울릴 뿐만 아니라 피아노를 중심으로 기타, 하모니카의 어쿠스틱 사운드를 최대한으로 활용한 조규찬의 편곡 능력도 인상적이다. 크라잉 넛의 “세계로 가는 기차” 또한 주목할만하다. ‘흥겨운 로큰롤’이란 말은 바로 이런 곡을 들을 때 나오는 소리. 이들은 “세계로 가는 기차”를 전형적인 로큰롤 스타일로 연주하면서도 시작과 끝 부분에서 그들만의 유머 감각을 발휘하여 음반에서 유일하게 ‘재미있는’ 순간을 마련해 주고 있다. 이에 반해 윤도현 밴드, 긱스, 델리 스파이스는 틀에 박힌 단조로운 음악을 들려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결국 이 음반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음악인들은 들국화의 원곡이 제시하는 스타일에 얽매이지 않고 원곡으로부터 되도록 멀리 떨어져서 거기에 자신만의 장기를 첨가한 음악인들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아마도 진정 자유로운 음악을 하던 ‘젊은’ 들국화의 모습을 그대로 따라잡기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음반의 프로듀서인 음악 평론가 강헌의 이야기다. “들국화야말로 매너리즘에 빠졌던 1980년대 가요계에서 자유롭고 원색적인 자신만의 음악을 토해낸 언더의 선봉자였다.” 그렇다면 여전히 매너리즘에 빠져 있는 지금의 가요계에서 들국화와 같은 존재는 누구일까. 시대가 바뀐 지금, 더 이상 그런 존재는 나올 수 없는 것일까. 20010225 | 정훈직 seattle1@chollian.net 6/10 수록곡 1. 행진 – 윤도현 밴드 2. 그것만이 내 세상 – 권인하, 박효신 3. 세계로 가는 기차 – 크라잉 넛 4. 더 이상 내게 – 긱스 5. 사랑일 뿐이야 – 이승환 6. 매일 그대와 – 박학기, 조규찬 7.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 이은미 8. 너는 – 렐리쉬 9. 제발 – 김장훈 10. 내가 찾는 아이 – 델리 스파이스 11. 제주도의 푸른 밤 – 동물원 12. 솔직할 수 있도록 – 언니네 이발관 13. 사랑한 후에 – 신해철 14. 그것만이 내 세상 – 강산에 관련 글 들국화 공연 리뷰 – vol.2/no.18 [20000916] 관련 사이트 들국화 팬 사이트 http://aproman.pe.kr 들국화 팬클럽 http://cafe.daum.net/mar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