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215040134-IbrahimIbrahim Ferrer – Buena Vista Social Club Presents Ibrahim Ferrer – World Circuit/Nonesuch/Warner Music Korea, 1999/2001

 

 

세월과 국경을 넘나드는 감동

1968년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이 영화 [2001: A Space Odyssey]에서 멋지게 그려낸 2001년이 실제로 다가왔건만,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그저 일상의 삶을 이어가는 우리에게 딱히 달라진 것은 없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과학이 선도하는 발전의 속도와 무관하게 우리의 감성은 좀처럼 변할 줄 모른다는 점이다(심지어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퇴행하기까지 한다). 이는 앞만 보고 달려가는 인간 존재의 본성에 적절한 균형을 잡아주기 위한 보완적 메커니즘일지도 모른다. 아니 진보와 퇴보라는 잣대로 감성을 재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일인지도 모른다. 세기말에 시작된 쿠바 ‘전통’ 음악의 심상치 않은 바람이 한국에도 상륙하면서 문득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잘 알려졌다시피 1997년 빔 벤더스 감독의 다큐멘타리 영화 [Buena Vista Social Club]의 사운드트랙으로 만들어진 앨범이 예상 밖의 큰 성공을 거두면서 그 앨범에 참여했던 노(老)거장들을 중심으로 솔로 앨범이 속속 만들어졌다. 이브라임 페레르(Ibrahim Ferrer)의 이 앨범 역시 그렇게 해서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물론 이 앨범에 수록된 상당수의 곡은 영화에 사용된 곡이다). 아마 사운드트랙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앨범의 두 번째 트랙에 자리한 경쾌한 “De Camino a la Vereda”가 기억날 것이다. 그 곡을 작곡하고 노래한 인물이 바로 이브라임 페레르이다. 그는 이미 10대 때부터 노래를 시작했고 1950년대에 자국에서는 ‘쿠바의 냇 킹 콜’이란 별칭으로 불릴 만큼 큰 명성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쿠바의 역사적 격동으로부터 그의 인생 역시 자유로울 수 없었고, 새로운 인생의 전기를 맞이하기까지 무려 40년이 넘는 세월을 기다려야 했다. 그는 우연한 기회로 [Buena Vista Social Club] 세션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다시 한번 세인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의 생애 첫 번째 솔로 앨범은 2000년 제1회 라틴 그래미 시상식에서 최우수 신인상을 그에게 선사했다. 이때 그의 나이는 이미 일흔을 넘긴 후였다.

여전히 라이 쿠더(Ry Cooder)가 프로듀싱을 맡은 이 앨범은 우아한 바이올린 선율로 시작된다. 이어 콘트라베이스와 퍼커션이 아프로/손(afro/son)의 리듬을 만들어놓으면 트럼펫이 여기에 합세하고, 이제 이브라임 페레르의 미성(美聲)이 동일한 선율을 노래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이 곡 “Bruca Manigua”는 쿠바의 전설적인 손 뮤지션이었던 아르세니오 로드리게즈(Arsenio Rodriguez)가 작곡했는데 앨범을 시작하는 곡으로 손색이 없다. 그가 작곡한 또 다른 곡 “Mami Me Gusto” 역시 퍼커션이 만들어내는 경쾌한 리듬에 신나는 코러스와 관악기, 피아노 연주가 어우러지는 인상적인 곡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주목하고 싶은 곡은 “Cienfuegos Tiene Su Guaguanco”이다. 무엇보다 페레르의 보컬이 갖는 소박하면서도 절절한 표현력이 십분 발휘되고 있기 때문이다. 로맨틱한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어지는 오마라 뽀르뚜온도(Omara Portuondo)와의 듀엣곡 “Silencio”가 더욱 마음에 끌릴 것이다. 역동적이고 열정적인 “Que Bueno Baila Usted” 역시 놓치기 아까운 곡이다.

그런데 사실 고백하건대, 쿠바 음악에 대한 경험이 그리 많지 않은 나로서는 개인적인 감상을 주절주절 적어보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어쩌면 나처럼 낯선 나라의 이방인이 복고적이면서 이국적인 음악 세계에 매혹되어 넋을 잃고 있는 동안, 정작 쿠바의 젊은이들은 이 음반을 마치 우리가 ‘가요무대’ 보듯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실제로 몇몇 곡은 고전 헐리우드 영화에 나올 법한 감상적인 노래들이다). 만약 그렇다면 새 천년에 불어닥친 쿠바 음악의 이상 열기는 마치 이박사 신드롬처럼 전통이 첨단 유행의 옷으로 갈아입은 또 다른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그러나 세월과 국경을 넘어 무언가를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분명 경이로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그것이 삶에 대한 낙관적이고 여유있는 모습과 당당함을 함께 담고 있다면 더더욱… 20010209 | 장호연 bubbler@naver.com

8/10

수록곡
1. Bruca Manigua
2. Herido De Sombras
3. Marieta
4. Guateque Campesino
5. Mami Me Gusto
6. Nuestra Ultima Cita
7. Cienfuegos Tiene Su Guaguanco
8. Silencio
9. Aquellos Ojos Verdes
10. Que Bueno Baila Usted
11. Como F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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