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131045253-erykahErykah Badu – Mama’s Gun – Motown/Universal, 2000

 

 

전면적인 복고에서 엿보이는 알앤비의 미래

현재의 흑인음악에 있어서 로린 힐(Lauryn Hill)이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이라면, 에리카 바두는 빌리 할리데이(Billie Holiday)다. 둘은 아직 이십대의 나이인데다가 정규 앨범 두어장밖에 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소울/힙합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이 두 명의 야심찬 여자 싱어 송라이터들은 흑인음악의 풍부한 전통과 역사를 되찾아와 틀에 박힌 힙합과 알앤비의 작법에 대한 대안적인 방향을 제시했다.

오늘날의 주류 알앤비 음악은, 거칠게 말하면, 꽤 크지만 자극적이지 않은 비트에, 정형화된 신시사이저 음색으로 도배를 하고, 가창력이 뛰어나지만 큰 특색은 없는 보컬로 이루어지는 음악이다. 게다가 몇 명의 작곡가와 프로듀서의 손 안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다들 비슷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이런 주류 알앤비 안에서도 에릭 베네(Eric Benet)나 브라이언 맥나잇(Brian McKnight)처럼 나름대로 개성을 갖춘 음악들이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말이다.

에리카 바두는 1997년 데뷔 앨범 [Baduism]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무거운 베이스를 바탕으로, 알앤비/힙합의 그루브와 소울/훵크/재즈/블루스의 감성으로 짙게 채색한 생생하고도 고풍스러운 음악이었으며, 아프로센트리즘과 페미니즘을 내비치는 듯한 신비로운 노랫말도 인상적이었다.

라이브 앨범 발매, 영화 출연 그리고 출산(지금은 헤어졌지만 아웃캐스트(Outkast)의 안드레(Andre)와 사이에서 아들을 얻었다)이라는 경험을 거친 후 3년 만에 발매된 두 번째 앨범 [Mama’s Gun]을 처음 들은 느낌은 첫 앨범처럼 귀를 확 잡아끄는 매력은 덜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재즈를 더욱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에리카 바두의 목소리를 여러 측면에서 부각시키려는 음악적 지향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무엇보다도 그녀의 목소리, 특히 보컬의 프레이징, 음을 끌고 가는 멜리스마는 빌리 할리데이를 연상케 한다. 지난 앨범에서도 그랬지만 재즈의 색채가 확연히 드러난다. 3부로 이루어진 10분짜리 대곡 “Green Eyes” 같은 곡은 아예 빌리 할리데이를 의식해서 만든 곡 같다. 1930년대 보컬 재즈 분위기의 고풍스러운 피아노와 색서폰, 레코드 잡음이 모노의 분위기를 만들어내면 이제 빌리 할리데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어느새 어쿠스틱 베이스와 재즈 드럼과 플륫이 보다 본격적인 재즈의 무드를 만들어냈다가, 알앤비의 그루브와 색서폰이 에리카 바두의 매혹적인 스캣 보컬을 떠받치는 현대적 네오 소울로 빠져나온다.

[Mama’s Gun]을 다 듣고 나면 하나의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에리카 바두는 (샤데이(Sade) 정도를 제외한다면) 거의 유일하게 ‘소리를 지르지 않는’ 흑인 여성 보컬리스트라는 점이다. 나지막하게 속삭이는 듯하지만 모든 악기와 음색을 제어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흑인음악은 역시 목소리의 음악이며, 노골적인 것보다 고혹적인 것이 더욱 자극임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그건 “Penitentiary Philosophy”나 “Didn’t Cha Know”처럼 앞쪽에 배치된 보다 훵키한 곡들에서나, “Orange Moon”이나 “Time’s Wastin'”처럼 뒤쪽에 배치된 차분한 곡들에서나 마찬가지다.

기타 반주만을 함께 한 스티븐 말리(Stephen Marley)와의 듀엣곡 “In Love With You”는 근래 가장 아름다운 러브 발라드로 기록될 것이며, 싱글에서는 의외로 닥터 드레(Dr. Dre) 식의 몸짓 큰 힙합 스타일이었지만, 앨범에서는 재즈와 블루스적인 접근 방식을 선택한 “Bag Lady” 같은 곡은 앨범에서 몇 가지 인상적인 모멘트를 이루고 있다.

재즈와 소울, 훵크 같은 옛날 흑인음악을 가져오는 시도는 애시드 재즈에서 G 훵크, 그리고 최근에는 디제이 믹스까지 다양하지만, 에리카 바두의 시도는 색다르다. 에리카 바두는 과거의 흑인음악 전통을 하나의 단편적 음악적 아이디어로서 채택하는 것이 아니라 전면적으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 완전히 빠져든다. 복고는 복고이되 전면적인 복고이면서도 새롭고 독창적인 복고이다. 이런 복고 속에 알앤비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가? 20010130 | 이정엽 evol21@weppy.com

8/10

수록곡
1. Penitentiary Philosophy
2. Didn’t Cha Know
3. My Life
4. … & On
5. Cleva
6. Hey Sugah
7. Booty
8. Kiss Me On My Neck
9. A.D. 2000
10. Orange Moon
11. In Love With You
12. Bag Lady
13. Time’s A Wastin
14. Green E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