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0131040921-virginiaVirginia Rodrigues – Sol Negro – Hannibal/Rykodisc, 1997

 

 

고통에 빠진 검은 태양… 그 빛의 노래

브라질 바이아(Bahia) 출신의 디바 비르지니아 로드리게스의 데뷔 앨범이다. [뉴욕타임스]로부터 “브라질의 새로운 목소리”라는 찬사를 받았고 상업적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둔 ‘월드뮤직 음반’이다. 30살이 넘은 흑인 여자(정확히 말하면 아프리카계 브라질인(Afro-Brazilian))가 음반까지 제작하게 될 수 있었던 자세한 과정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을 참고하는 것이 나을 듯하다. 그녀를 발탁한 인물인 까에따누 벨로주에 대해서나, 아프리카 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남아있는 바이아 지방의 음악 문화에 대해서도 상세한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자.

첫 트랙 “Negrume da Noite(밤의 어두움)”을 재생하자마자 들리는 이국적 느낌의 악기는 베림바우(berimbau)다. “조롱박 공명기를 가진 현악기로서 연주하기가 매우 어렵다. 막대기로 현을 켠다. 브라질 민속춤인 까보레이라(Caboreira) 춤에서 빼놓을 수 없는 악기”([라틴 아메리카 문화의 이해], 학문사, 258쪽)라는 설명이 없었으면 무슨 악기인지도 몰랐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음이 귀를 번쩍 잡아끈다. 베림바우 소리가 퍼커션과 손뼉소리(clapping)와 더불어 리듬을 만들어내는 사이로 콘트랄토(contralto)라고 부를 만한 풍성한 저음의 여성(女聲)이 나온다. 오페라 가수를 연상시키지만 그렇다고 제도권 음악계에 속한 것 같지도 않은 신묘한 목소리다. 보통의(주로 미국의) 흑인 디바들처럼 신체의 에너지를 담은 소리라기보다는 허파와 성대에서 한두번 여과시켜 나오는 목소리 같다. 이 목소리에 한번 취하면 그녀의 목소리가 인도하는 대로 음반이 끝날 때까지 끌려다녀야 한다. 중반부에 무반주로 노래하는 “Veronica”에서 잠시 쉴 수는 있지만 거기서조차 가슴이 더욱 벅차다고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첫 곡이 앨범에서 가장 동적이고 사운드도 비교적 꽉 찬 편이다. 나머지 트랙들은 어쿠스틱 기타(혹은 거트 기타(gut guitar))와 콘트라베이스(어쿠스틱 베이스)가 악기음들의 기초를 이루면서 대체로 차분한 무드와 소박한 사운드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리듬이 빈약한 어쿠스틱 음악’에 그치지는 않는다. 여러 가지 퍼커션이 곳곳에 들어가 있을 뿐더러 트랙마다 적절한 악기가 삽입되어 있다. 나열적으로 묘사한다면 대략 이렇다. “Adeus Batucada”에서는 클라리넷과 색소폰들의 협주가 흥겨운 분위기를, 루이스 본파(Luis Bonfa)의 삼바 고전인 “Manha de Carnaval”에는 재즈풍의 피아노가 부드러운 흐름을, “Noite de Temporal”에서는 다시 한번 베림바우가 등장하여 긴장된 분위기를 연출한다. 이어 완연한 재즈 스타일인 “Terra Seca”를 지나서 “Nobreza”에 이르면 콘트라베이스만의 반주로 시작하여 현악기들이 중반부 이후를 장식한다. “Sol Negro”에서 국제적으로 유명한 밀톤 나시멘투(Milton Nascimento)와 대위법을 이루는 듀엣을 듣고, 재즈풍의 “Querubim”에서 트럼펫 소리와 함께 “두밥바…”거리는 목소리의 애드립을 음미한 뒤 하프 반주만으로 함께 하는 슬픈 곡 “Israfel”을 듣고 ‘다음 곡은 뭘까’하고 기대하고 있으면 음반이 끝난다. 브라질의 원시림을 여행하다가 낯선 집의 넉넉한 여주인이 차려주는 식단을 맛보는 꿈을 꾸고 나면 이런 기분일까.

“이 음반의 문화적 배경은 깐돔블레(Candomble)라고 부르는 나이지리아에서 연원한 아프리카계 브라질인의 종교의식이다”고 말하면 설명이 장황해지면서 ‘깨는’ 이야기가 될 것만 같다. 가사의 메시지가 ‘(브라질) 흑인 나아가 아프리카인의 프라이드’를 담은 것이라는 설명도 사족이다. 브라질 사회가 1990년대 이후 빈부격차가 심화되면서 인종간 격차도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도 마찬가지. 타이틀곡의 가사를 음미하면서 마치는 게 나을 듯하다. “나의 목소리 속에서 / 밤과 바다를 듣는다 / 나의 노래는 빛 / 고통에 빠진 검은 태양의 빛… 죽어버린 것은 사랑 / 바다의 밤에서… 우리의 여인이 우리를 도와준다 / 그게 언제 사라졌는가 / 저 멀리 바다 건너 / 예만자(Iemanja)의 팔 너머 / 안녕 안녕” (“Sol Negro”) 20010129 | 신현준 homey@orgio.net

9/10

수록곡
1. Negrume da Noite (Blackness of the Night)
2. Lua, Lua, Lua, Lua (Moon, Moon, Moon, Moon)
3. Adeus Batucada (Goodbye, Dance Hall)
4. Manha de Carnaval (Carnival Dawn)
5. Veronica (Veronica)
6. Noite de Temporal (Stormy Night)
7. Terra Seca (Dry Land)
8. Nobreza (Nobility)
9. Sol Negro (Black Sun)
10. Querubim (Cherubim)
11. Israfel (Israf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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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어로 노래하는 ‘월드 디바’들(3) – vol.3/no.2 [20010116]
Virginia Rodrigues [Nos] 리뷰 – vol.3/no.2 [20010116]

관련 사이트
비르지니아 로드리게스의 경력, 음반 리뷰, 인터뷰, 영역 가사를 볼 수 있는 웹페이지
http://www.brazzil.com/mussep98.htm

라이코디스크사 홈페이지의 음반 리뷰
http://www.rykodisc.com/Catalog/dump/rykoalbums_834.as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