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겐슈타인 – Theatre Wittgenstein: Part 1, A Man’s Life – EMI, 2000 익숙한 느낌으로 포장된 진부함 농담이겠지만 다시 그룹 활동을 하면 성(姓)을 갈겠다던 그 사람이, 그래서 ‘Crom’이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며 발매한 ‘비트겐슈타인’은 “내 책은 두 부분으로 이루어졌다. 이 책에 씌어진 부분과 씌어지지 않은 부분이 그것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부분은 바로 이 두 번째 부분이다.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했는데, 이에 대하여 기형도는 “우리가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거의 필연적이며, 이러한 불행한 쾌락들이 끊임없이 괴롭힌다”라고 한 바 있다. 비록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시종일관 새로운 환경을 찾아다니며 말하고자 하는 의견을 꾸준히 개진하는 이런 능동적 성향은 인정하겠지만, 이번 앨범은 전작 [Monocrom]에 비할 때 국내 시장을 감안한 내수용 작품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물론 팬서비스 차원의 선물이 될 수도 있고 그럭저럭 현상유지를 해야만 인정되는 국내 음악계에 적응하기 위한 몸부림일 수도 있지만, 꽃미남 둘을 좌청룡 우백호로 거느리고 나타나 혹시 아이돌 스타의 자리를 되찾기 위한 시도는 아닌가 하는 의혹 또한 드는데, 그보다는 기억의 편린처럼 혹은 과거의 반추처럼 익숙한 느낌으로 꾸며진 ‘음악’에 그 탓을 돌리련다. 그래도 과거의 ‘세계’나 ‘존재’ 등 거창한 타이틀을 생각하면 [A Man’s life]는 참으로 소박한 제목이다. 그러나 이처럼 엄숙주의로부터 거리두기는 음악에 한정되었을 뿐 예의 시니컬한 내러티브로 전지자의 위치를 얻어 우월감으로 가득한 주제의식은 여전하다. 또한 앨범 타이틀과 상관없이 자리잡은 “Friends”, “Dear My Girlfriends” 등 오케스트라가 가미된 그만의 전형적인 발라드는 팬들에 대한 구애가 분명해 보이며, 이따금 보이는 비속어와 세 번 반복되는 “Theatre Wittgenstein”에서의 의도적인 유치함은 전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한다. 특기할 만한 요소라면 목소리가 탁해지면서 보컬의 역량이 늘어났고 ‘가요’적이면서도 ‘팝’적인 감각과 흡수력은 여전하여 듣는 이로 하여금 생소한 리듬에도 친숙하게 반응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는 것이다. “오버액션 맨”과 “수컷의 몰락 Part 2″는 그런 점에서 탁월하다. 그렇지만 지난날을 되짚어 본다면 익숙한 리듬이 되어 “R. U. Ready?” 정도의 음악과 동류를 이루고 있으니, 한두 곡 있을 법한 ‘대곡’에 대한 강박관념을 버리고 그간 대중적인 지지를 얻었던 요소로만 채워진 베스트 음반 같은 분위기를 떨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구색 맞추기 위한 형식으로 기억의 편린이자 과거의 반추를 이용한 수법이 아니겠는가 라고 묻고 싶다. 도대체 온고지신을 찾을 수 없는 이 상황을 두고, 그러나 “The Pressure”의 노랫말처럼 “나름대로 뺑이 치는데”도 이런 평가를 받는다면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하다. 마치 미리 알고 있었다는 듯 좀더 리얼한 가사로 히든트랙에서 다시 한번 풀어놓는 그 심정만큼은 이해해야 할까. 20010114 | 신주희 tydtyd@hotmail.com 3/10 수록곡 1. Theatre Wittgenstein Part 1 2. 백수의 아침 3. Friends 4. Theatre Wittgenstein Part 2 5. 오버액션 맨 6. Cynical Love Song 7. 수컷의 몰락 Part 1 8. Theatre Wittgenstein Part 3 9. 소년아 기타를 잡아라 10. The Pressure (압박) 11. 수컷의 몰락 Part 2 12. Dear My Girlfriends 관련 사이트 크롬 홈페이지 http://www.crom.ntv.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