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뉴욕을 찾아오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필수적인 관광코스들을 꼽으라면(물론 찾아오는 이, 맞이하는 이 모두가 공통적으로 생각하는), 글쎄 브로드웨이의 장기상영 대형 뮤지컬들([시카고]나 [렌트] 등은 몰라도, 아침 일찍 나간다면 [리틀 사이공]이나 [레미제라블] 같은 오래된 공연들은 당일 저녁의 할인 표를 구해서 시골에서 역시 단체로 관람 온 미국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함께 공연을 즐길 수 있다), 차이나타운이나 리틀 이태리 등지의 음식점들(한국 관광객들이 단체로 가는 곳은 늘 뻔하게 정해져 있어서 심지어 ‘합기’같은 중국음식점에는 한국어 메뉴판도 있다), 온갖 브랜드의 가게들로 가득 찬 우드베리(Woodbury)의 초대형 아울렛(맨해튼을 벗어나 뉴욕주 북부로 올라가야 하는 난코스이고 한국인 못지 않게 고급 브랜드 쇼핑을 선호하는 중국인, 일본인 관광객들과 숨가쁜 경쟁을 해야 하긴 하지만, 면세점 가격의 절반 가까이 되는 무수한 고급 브랜드 물건들을 구입하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수고는 별 것 아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것으로 박물관과 미술관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소호의 유명 군소 미술관들은 워낙 복잡하게 널려 있는지라 찾아다니며 구경하는 것은 여러 이유(?)로 시간에 쫓기는 일반 관광객들에게는 벅찬 일인 것 같고, 그렇다면 몇 군데 ‘세계적으로 유명한’ 대형 박물관, 미술관 중 두어 군데를 하루 정도 잡고 훑어보고 나서 그 앞에서 사진만 몇 장 박으면(혹은 한국 관광객 특유의 대담함으로 실내에서 몇 장 박기도 해서) 한국에 가서 얼마든지 자랑스럽게 증명해 보일 수 있다. 세계 최대 규모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독특한 건축구조의 구겐하임 미술관, 그리고 휘트니 미술관, 미국 자연사 박물관, 현대미술관(MOMA) 등이 손꼽히는 리스트인데, 대부분이 센트럴 파크를 끼고 좌우에 배치되어 있어서 자신의 적당한 취향,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기준으로 쉽게 취사선택할 수 있다. 이야기가 딴 데로 흘러가 버렸는데, 아마도 이맘때면 떼거지로 몰려와 맨해튼을 군웅할거 하는 젊은 한국 관광객 친구들한테, 가난한 유학생 입장에서 괜히 심술이 나서일 게다. 게다가 크리스마스 이브 저녁에 집에 처박혀서 콩코드(Concord), 환타지(Fantasy), 마일스톤(Milestone) 같은 재즈레이블의 청승맞은 크리스마스 캐롤 고전들을 다운 받아서 틀어놓고 [weiv] 원고를 쓰고 있으니 더 신세가 처량해 보여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하여튼 말하고자 하는 것은 눈보라가 몰아쳤던 이틀 전에 혼자서 브루클린 미술관(Brooklyn Museum of Art)에 갔다 왔다는 것이다. 한국인들 중에는 뉴욕에서 맨해튼 바깥에도 제대로 된 박물관 같은 게 있냐고 묻는 이들도 있겠지만, 브루클린 미술관은 적당한 규모(물론 상대적인 것인지라 한국에서는 이 정도 크기의 박물관도 찾기 어렵다), 유럽 미술 중심의 맨해튼의 여타 박물관들의 전시와는 구별되는 비유럽적인 주제의 전시들, 깔끔한 시설로 이 곳에서는 상당한 지명도를 가지고 있다. 브루클린 미술관에서는 지난 9월 하순부터 이번 달 말일까지 ‘Hip Hop Nation: Roots, Rhymes, & Rage’라는 제목으로 ‘힙합’을 주제로 한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진즉에 가보려고 했었지만 학기 중이라 차일피일 미루다가 이제서야 (물론 기말 숙제들이 여전히 밀려있긴 하지만) 짬을 내서 가게 되었다. 미술관은 날씨 탓인지 그리고 크리스마스를 앞두어서 그런지 상당히 한산해 보였고, 몇몇 젊은 흑인 관람객들만이 눈에 띌 뿐이었다. 사실, 힙합을 주제로 한 전시회라면 과연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궁금해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힙합의 역사와 그 네 가지 요소(DJing, MCing, graffiti writing, breakdancing: 힙합은 고정된 사물이나 텍스트가 아니라 역동, 실천, 변화, 그 자체이므로 모든 그 요소들이 ‘ing’형임을 명심할 것)를 주제로 굉장히 멀티미디어적인(힙합 자체가 멀티미디어이니 당연하겠지만) 전시를 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을 것이다. Chuck D, Spike Lee, Russel Simmons, Dr. W. E. Perkins 같이 흑인문화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전시회의 조직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였고, 게다가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의 주최로 열리는 전시회이니 만큼 일단 그 내용은 신뢰할 수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실제로 이 ‘Hip Hop Nation’은 그러한 예측에 어느 정도 부합하는, 미국의 힙합 문화와 역사에 대한 나름의 충실한 소개(때론 약간의 해석을 가미한)를 목적으로 하는 전시회처럼 보였다. 전시회장을 들어가자마자, 입구의 조그만 쪽방에는 1980년대, 뉴욕의 유명 그래피티 작가 중 하나인 Toxic(Torrick Ablack)의 [Ransome Note]이라는 작품이 벽에 걸려 있고, 대각선으로 Tracy 168의 지하철 문 그래피티 작품이, 문 통째로 잘려서 옮겨진 채 세워져 있었다. 둘 모두 1985년 작품들이다. 이때는 뉴욕의 거리를 활보하며 지하철 문과 건물 벽을 중심으로 낙서를 즐기던(?) 그래피티 청년들이 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이름을 알리고, 더 이상 거리의 문제아가 아니라 소호의 미술관에 작품을 전시하는 작가로의 급격한 변신을 도모하던 과도기적 시기이다. [Basquiat] 같은 영화도 그럴 듯 하지만, 초창기 그래피티 혹은 힙합 거리문화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는 영화로는 [Wildstyle](1982) 만큼 적절한 작품도 없을 것이다. 1980년대 초 뉴욕 거리의 그래피티 작가들이 직접 주연으로 출연했던(Tracy 168도 그 중의 하나이다), 이 영화는 ‘여가/노동’의 이중적 활동으로서의 초창기 힙합 문화의 전형을 보여준다(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래피티 작업, 브레이크댄싱, 길거리 농구는 빈곤화되어 가며 공적 공간을 잃어가고 있는 대도시 흑인청년들을 위한 여가 혹은 동시에 노동의 방법들이다. 여가/노동으로서의 힙합 문화의 문제는 다음 usline에서 다룰 예정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영화는 이들 출연진을 비롯한 몇몇 특출난 재주를 지닌 그래피티 청년들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기폭제가 되었고, 이들은 1980년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더 이상 스프레이를 들고 한 밤중에 거리로 뛰쳐나와 공공 장소들을 급습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이제 자신만의 작업 공간에서 소호의 전시회를 위한 작품들을 만들면 되게 된 것이다. 그러기에 이 두 1985년의 작품은 그래피티가 예술시장으로 옮아가는 과정에서 그 미술적 주체들의 교차하는 아쉬움과 동경을 표현하는 것 같아 왠지 기분이 묘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1980년대 초의 힙합 의상과 지금의 힙합 의상이 비교 전시되어 있었다.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의 브롱스와 할렘의 초기 힙합 패션은 기존의 저렴한 캐주얼 작업복들의 창조적인 재창조에 바탕한다. 영국의 하위문화연구자인 딕 헵디지(Dick Hebdige)가 영국 청년문화에 대해 묘사했던 것처럼, 이들 흑인 청년들은 낡은 청바지 위에 직접 그린 그래피티를 덧입히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새로운 패션과 거리문화를 창조하고자 노력하였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지금의 그것은, 이 곳에 전시된 DNB Nation이라는 브랜드의 옷처럼 상업화되고 고급화된 ‘올드 스쿨 리바이벌(old school revival)’일 뿐이다. 이쯤 되니, 본 전시장을 들어가기 전부터 이 전시회의 주제 혹은 의도에 대한 호기심이 생기기 시작한다. 현재의 변화된 힙합 문화와 과거의 힙합 문화의 비교가 이 전시회의 중요한 주제처럼 보이는데,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이 전시회의 큐레이터들은 과연 어떻게 해결했을까? 그 변화의 의미를 그들은 어떻게 해석했을까? 어차피 전시되는 내용도 기존의 서구미술작품들이 아닌데다가 주제 또한 이렇게 심각하다면, 보통의 전시방식(맨해튼의 대형 미술관들처럼, 오랜 세월 지속되어온 서유럽적 사고에 기반한 질서와 정연한 논리를 따르는 전통적인 전시방식)이 아닌 나름의 독특한 전시방식을 취했을 것인데, 그 속에서 그들은 힙합 문화를 어떤 식으로 해석하고자 했을까? 하지만 본 전시장으로 들어가는 순간 그러한 궁금증들은 쉽게 풀어졌다. 아니 허탈하게도 그러한 호기심 자체가 우스운 생각이 되어버렸다. 들어가자마자 눈앞을 채운 것은 온갖 종류의 힙합 의상들과 액세서리들이었다. 물론 좌우전후 벽면에 언뜻 보아 힙합에 관련된 다양한 그래피티 작품들, 문서, 포스터, 음반들이 있긴 했지만, 홀 중앙을 꽉 채운 채 관람객들을 압도하는 것은 이 의상과 액세서리들이었고, 이 홀이 마치 대형 옷가게 같은 느낌을 들게 만들었다.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면서 알게 되었지만 이것들은 모두 과거, 현재의 힙합 수퍼스타들이 착용, 사용했던 물건들을 아무런 분류, 기준 없이 진열해 놓은 것이었다.) 일단 전시장 안은 크게 네 섹션으로 나뉜 듯했는데, 벽면을 둘러싼 전시물들은 그 섹션의 주제에 부합되는 내용으로 채워져 있었다. 첫 번째 섹션은 ‘The Roots’라는 제목으로 197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의 힙합의 태동기에 대한 내용이었다. 눈에 띄는 것은 그 당시 브롱스와 할렘을 중심으로 한 클럽이나 블록파티 공연 전단의 원본이었다(한국에서 전봇대 같은데 붙여 놓은 A4 용지 크기의 허름하게 인쇄된 룸살롱 선전물 같은 것을 생각하면 된다). 그 당시 브롱스 동부지역을 장악했던 Grandmaster Flash, 서부 지역을 장악했던 Africa Bambaataa 외에도 힙합의 창시자 급으로 알려진 Kool Herc, Grand Wizard Theodore, Sugar Hill Gang 등이 역시 다양한 파티와 공연에서 주도적인 출연진이었는데, 이들처럼 후세에 이름을 알리지 못 한 채 지금은 사라진 DJ Starski, DJ Hollywood, Busy Bee, Kool D.J.A.J 등도 못지 않은 왕성한 활동을 했음을 이들 전단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다음 섹션은 ‘Golden the Era’였는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의, 소위 말하는 힙합의 중흥기를 주제로 하고 있었다. 앞서 말했듯이 이 시기는, 그래피티와 브레이크댄스 청년들 중에 선택받은 이들은 더 이상 거리를 떠돌 필요가 없게 되고, 힙합 음악 또한 미국 주류 대중음악 시장에서 자신만의 위치를 확립하던 때이다. 개인적으로는 당시의 공연이나 앨범홍보 포스터 원본들(Run DMC, Beastie Boys, Public Enemy, LL Cool J, EPMD, Tone Loc, Digital Underground 등)보다는 브롱스 고등학교 학생들의 수제작 힙합 아트워크가 훨씬 재미가 있었고, T. Hopkins, Carl Posey 등의 작가들이 힙합 스타 사진들을 덕지덕지 콜라주해서 만든 아트워크 역시 훌륭해 보였다. ‘The Roots’와 ‘Golden the Ear’의 두 섹션을 관통하는 홀 입구부분에는 최초의 힙합 곡으로 인정되는 Sugar Hill Gang의 ‘Rapper’s Delight’ 12인치 원본, Grandmaster Flash의 Gemini 믹서(88년형 ‘MX-800’), Afrika Bambaataa의 망토, Public Enemy의 턴테이블들, 초기 B-Boy의 사진들 등과 함께, De La Soul의 ‘3 Feet High’ 스티커와 엽서, 목걸이, Tommy Boy 레이블의 스키모자, (Salt-N-Pepa의) Pepa의 재킷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Queen Latifah의 경우 고교시절 졸업앨범부터 젊은 시절의 무대의상, 일기장 등 상당수의 품목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는 현재 그녀가 지상파 방송 토크쇼의 진행자로 활약하는 가장 영향력있는 흑인 연예인 중의 하나라는 이유만으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을 것이다. 세 번째 섹션은 ‘Controversy: Outrage and the Rise of Gangsta Rap’이라는 제목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의, 즉 갱스타 랩의 하위문화가 주류음악시장을 지배하고 온갖 논란으로 미디어의 주목을 받던 시기에 대한 전시물들이 벽면을 채우고 있었다. NWA의 등장부터 Ice T와 Snoop Dogg에 대한 내용을 다룬 포스터와 신문, 잡지 기사들과 함께, 특히 Snoop이 살인죄로 기소된 일주일 후 정규 1집으로 빌보드 차트 1위에 단숨에 입성하던 시기에 [Newsweek] 표지에 실렸던 사진을 초대형으로 확대, 변형시킨 아트워크가 눈에 띄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1992년, 2 Live Crew의 마이애미 주에서의 음란죄 기소 사건의 법정서류 원본들, Ice T의 ‘Cop the Killer’ 등의 가사가 적힌 친필 노트들, 그리고 1994년 힙합의 유해성에 관한 미국 상원의 청문회 서류 원본들은, 그 시기 갱스타 랩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들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끼게 해 주는 소중한 자료들이었다. 그리고 이 시기의 마지막을 상징하는 2Pac과 Notorious BIG의 친필 노트들 역시 주목할 만 했는데, 특히 전자가 고민하며 연필로 적은 듯한 “Brenda Got a Baby”의 슬픈 가사는 마치 당시 미디어의 묘사와 상반되는 갱스타 랩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주 전시장의 마지막 섹션의 제목은 ‘Pop Goes the Culture’였는데, 이 곳은 힙합이 미 전역으로 확산되는 과정(가령 남부의 Master P, Jermaine Dupri, Outkast, Geto Boys, 중서부의 Bone Thugs-N-Harmony, Twista, Common, Eminem, Nelly, 그리고 웨스트코스트의 E40, Xzibit 등)에 대한 자료 뿐 아니라, 문화 전반에 걸쳐 미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과정에 관한 자료들이 눈에 띈다. Tyson Beckford(자메이카 출신으로 뉴욕시에서 성장한, 미국의 첫 번째 흑인 수퍼 모델)같은 힙합 세대 우상의 사진들과 함께, 특히 젊은이들의 패션에서 힙합의 영향력을 강조하는 자료들이 두드러졌다. 아디다스의 운동복 스타일, FUBU의 블랙진 스타일, Karl Kani의 블루 데님 스타일, Wu Wear의 군인 스타일 옷들과 함께, Kangol, Triple Fire Soul, Phat Farm 등의 요즘 잘 나가는 브랜드의 옷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또한 힙합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영화들의 오리지널 포스터들과 관련 자료들도 전시되어 있었는데, [He Got Game], [Boyz N the Hood], [New Jack City] 같은 문제적(?) 영화부터 [Krush Groove], [House Party] 류의 오락형 블랙무비, 그리고 [Wild Wild West], [Men In Black] 같은 주류 블록버스터 영화까지 다양한 영화자료들을 볼 수 있었다. 왜 이런 자료들의 집중적인 전시가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이해가 안 가긴 했지만, 하여튼 Vanilla Ice가 한창 잘 나가던 시절, 주연한 영화 [Cool As Ice]의 포스터와 그가 그 영화에서 입고 나왔던 반짝이 의상(이런 쪽 옷에는 일가견이 있는 Jean-Paul Gautier의 디자인이었다)은 웃음을 나오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이 섹션에서 가장 의미있는 내용은, 역시 현재 미국의 청년문화에서 힙합이 어떤 비중을 차지하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일상적인 뉴욕시 거리문화의 사진들, 10대 후반, 20대 초반 젊은이들의 힙합에 대한 생각을 담은 인터뷰 비디오였다. 하지만 정작 관람객들의 눈을 휘어잡은 것은 이러한 섹션별 영역들이 담고 있는 내용들보다, 전시장의 홀 중앙을 중심으로 대부분의 공간을 차지하며 다소 난삽하게 배열되어 있는 각종 의상과 액세서리들이었다. 이 것들은 나름대로 신경 써서 분류해 놓은 섹션별 주제들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비체계적으로 진열이 되어 있었다. 가령 ‘The Roots’섹션에서 ‘Golden the Era’섹션으로 지나가면서 뒤를 돌아보면, 거기엔 Eminem의 1999년형 리복 스니커, Notorious BIG가 1995년에 사용했던 나이키 스니커와 선글라스가 Kool Herc의 1984년도 카우보이 모자가 함께 진열되어 있는, 그런 식이었다. 물론 한꺼번에 20여 년 동안의 힙합 스타들의 소장품을 무순으로 진열함으로써 관람객들에게 이에 대한 비교, 감상을 가능케 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차피 박물관식 시대적 분류라는 것 자체가 대표적인, 역사의 자의적 재구성 방식이니 이를 해체하는 것 또한 현재의 박물관 전시의 새로운 조류의 하나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뉴욕의 아프로-아메리칸 젊은이들조차 상당수는, 필자의 경험으로 볼 때, 자신들의 부모세대의 젊은 시절 문화가 어떠했는지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상당히 부족한 상황에서, 이러한 진열방식은 힙합의 역사에 대한 그들의 이해에 그다지 도움을 주기는 어려워 보였다. 즉 그들 입장에서는, 그저 이 곳에 진열되어 있는 Beastie Boys가 ‘Intergalactic’ 뮤직비디오에서 입었던 그 우스꽝스러운 의상이 Tamoe Sakura가 디자인한 옷이고 2Pac이 ‘All ‘Bout U’에서 입었던 가죽바지가 Gianni Versace가 만들어 준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Eminem, Notorious BIG, Ice T의 금팔찌들을 비교, 감상하는 재미 이상의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힙합의 역사에서 의상과 액세서리가 차지하는 그 창조적 의미의 중요성은 십분 이해하지만, 유명 스타의 패션 아이템과 고급 브랜드 힙합 의상(마지막 섹션에서처럼)만을 (비체계적이고) 비대하게 진열하는 것은, 찾아온 젊은 관람객들을 이러한 아이템들에 대한 소비의 유혹으로 이끌려는 저의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인다. 더욱이 전시장을 나오는 유일한 출구가 바로 기프트 샵과 연결되어 있고, 그 가게에서는 전시장에 옷을 협찬했던 FUBU나 Phat Farm, Wu Wear의 옷들과 모자들을 팔고 있었으니, 너무도 그 의도가 빤해 보였다. (게다가 Kid Rock이 표지에 있는 2001년 Spin 달력과 ‘Parental Advisory’ 로고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머그컵, 브루클린 관광 기념 티셔츠까지, 그 다양한 상품들의 조합은 기묘하기조차(?) 했다.) 30여 년에 이르는 힙합의 역사를, 그것도 여전히 체계적으로 정리가 되지 않고 있는 그 역사를, 박물관 안의 홀에서 한꺼번에 정리하여 다룬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그 역사를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초까지의 힙합의 탄생 시기, 198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초에 이르는 창조적 전성기,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의 갱스타 논쟁기, 그리고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는 힙합의 청년문화 전반에 걸친 확산의 시기와 같이 분류, 진열하는 방식은 현재로서는 가장 그럴 듯한 선택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오리지널의 희귀성을 담은 몇몇 귀중한 자료들은 그 희귀한 가치만큼이나 필자와 같은 관람객들에게 어렴풋이 나마, 그리고 상상적으로나마 힙합의 과거를 자의적으로 재구성, 재해석하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이러한 섹션별 주제보다는, 전시장 공간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유명 스타와 고급 브랜드 의상과 액세서리들 중심의 전시물들이 관람객들의 시각을 제압한다는 점에서 이 ‘Hip Hop Nation’이 그다지 효과적인 박물관 전시의 방식을 취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역으로, 힙합의 역사, 특히 과거의 힙합이 어떻게 지금까지 변천되어 왔으며, 현재의 힙합은 그러한 역사 속에서 젊은이들에게 어떤 의미들을 지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것보다는, 고급화된 힙합 패션 아이템들에 대한 소비의 유혹을 제공하는 것이 이 전시회의 주된 의도였다면, 이는 굉장히 효과적인 전시방식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집에 오는 전철에서 생각을 하게 된 것인데, 한가지 재밌는 것은 ‘The Roots’ 섹션에 있었던 1970년대 후반, 1980년대 초반의 브롱스나 할렘의 파티, 공연의 전단들에 있던 행사의 이름, 혹은 뮤지션들을 소개하는 구문에는 힙합이라는 말은 거의 없고 ‘디스코’라는 단어가 압도적으로 많았다는 점이다. 심지어, 아마도 ‘힙합’이라는 단어를 최초로 만들었을 것이라고 추정되는 고(故) Cowboy가 활동했던 Grandmaster Flash & the Furious Five도 ‘디스코 수퍼스타’라는 별칭으로 소개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당시 클럽 공연 사진들에 보이는 관객들 중에는, 물론 흑인들이 많긴 했지만, 백인들, 라틴 계열의 이민자들도 상당수가 눈에 띄었다. 또한 흑인 관객들 중에도 아프로-아메리칸이 아닌 캐러비안 출신 이민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을 것이다(최초의 힙합 디제이인 Kool Herc나 Grand Wizard Theodore 등이 사실은 그 지역에서 뉴욕으로 건너온 흑인이라는 사실은 이에 대한 중요한 근거가 된다). 그렇다면 이런 궁금증이 생긴다. 그럼 애초부터 힙합은 아프로-아메리칸 흑인들만의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음악적 내용의 그 퓨전적 파생은 물론이고, 또한 그래피티 작가로 초창기에 이름을 날린 수많은 이들이 아프로-아메리칸 흑인이 아니었고(가령 [Wildstyle]의 주인공이자 지금은 그래피티를 넘어서는 예술작가가 된 Lee Quinones는 Puerto Rico 출신 이민이고, 역시 주요배역 중 하나인 Lady Pink는 심지어 에쿠아도르 출신 이민이다), 이미 1970년대 후반, 1980년대 초부터 이소룡이 할렘 젊은이들의 영웅이었다면, 아프로-아메리칸의 순수문화로서의 힙합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 아닌가? 그럼 뒤늦게 힙합이 최근에 ‘멀티컬쳐럴(multicultural)’하게 변하고 있다고 떠들어대는 것 또한 힙합의 뿌리에 대한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 아닌가? (필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이 전시회의 생생한 자료들은 그러한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왜 그러한 힙합의 다문화적 기원이 세월이 흐르면서 지금껏 망각되어 왔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다(이 문제에 대해서도 역시 다음 usline에서 이야기해 볼 생각이다). 20001224 | 양재영 cocto@hotmail.com 관련 사이트 ‘힙합 네이션’ 전시회 홈페이지 http://www.brooklynart.org/hiphop/hip_mor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