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49이소라 – 꽃 – 신나라뮤직, 2000

 

 

야심이 보이지 않는 안전한 선택

재즈를 좋아하는 팬으로서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는, 1990년대 초반 차인표의 테너 색소폰에서부터 그나마 재즈 ‘씬’이라 불릴 만한 것이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의 두 번째 손가락을 움직이는 느끼한(매력적인?) 손짓만큼이나 그의 색소폰 흉내는 재즈가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끄는 데 일조했던 것이다. 재즈를 간판에 내걸지 않은 카페는 장사가 되지 않았고, 가요계에서 세션으로 활동하던 (재즈)연주자들도 그제서야 자신이 재즈 뮤지션임을 밝히기 시작했다. 이는 분명 ‘현학’과 ‘퇴폐’ 사이에 존재하던 재즈라는 장르를 대중에게 소개시켰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있지만, 재즈가 동시대 대중 음악의 다양한 자양분 중 하나로 작용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드는 데는 오히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이소라에 대한 글을 쓰면서 재즈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그녀의 기대나 사람들의 판단과는 상관없이, 그녀의 음악은 재즈(가요)의 영역에 있기 때문이다. 속칭, 임희숙이니 박성연이니 하는 가수들이 재즈가수가 아니냐 하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재즈라는 장르가 박물관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면, 이소라가 재즈가수로 불리는 것이 맞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다.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국내 최초의 재즈 보컬 그룹 낯선사람들에서 활동하던 그녀가 1995년 발표한 첫 번째 앨범은 아직 초창기의 신선한 감각을 잊지 않던 김현철의 프로듀싱으로 “난 행복해”, “고백” 같은 높은 수준의 가요를 담고 있었다. 이어 2집에서는 이소라식 발라드로 불릴 만한 스타일의 “기억해 줘”와 “청혼” 같이 대중적이면서도 고급스런 노래방 가요로 평단과 대중들로부터 만족스런 반응을 얻었다. 여기에 장수 TV 프로그램으로 자리잡은 [이소라의 프로포즈]로 넓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그녀는, 이제 자신감을 가졌던지 3집에서는 ‘절절한 사랑의 아름다움’이라는 자신의 이미지와는 다른 히스테릭하고 혼란스런 록의 느낌을 표현해낸다.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의 기다림 끝에 그녀는 시간을 5년 전으로 되돌린 듯한 음악을 들고 다시 왔다. 매너리즘에서 아직도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는, 하지만 여전히 감각은 있는 김현철이 프로듀서를 맡았고, 대부분의 작사는 이소라가 맡았다. 그래서 앨범에는 이소라의 이미지에 가장 충실한 곡들로 가득하다.

“제발”이나 “My Romeo” 같은 전형적인 이소라식 발라드를 제외하고는 재즈와 보사노바 풍에 미드 템포의 흥겨운 곡들로 앨범 전체가 꾸며져 있다. 박효신과 함께 한 훵키한 재즈 넘버 “It’s Gonna Be Rolling”도 만족스럽고, 프랑스어의 나레이션이 가미된 프렌치 재즈곡 “Rendez-Vous”, 샘 리(Sam Lee)의 기타가 돋보이는 보사노바 “Bye-bye”, 미드 템포 사이로 은은히 깔리는 트럼펫이 매력적인 “그대와 춤을” 등 앨범 대부분의 곡이 재즈라는 형식 안에서 자리하면서 그녀의 보컬에 많은 배려를 하고 있다. 그건 “노래만으로 세상과 대화하고 싶다”던 그녀의 바램에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그녀의 이번 앨범은 이소라 팬이나, 재즈 팬, 20대 중반 이후 세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음악임에는 틀림없고, 대한민국에 그만한 여자 가수가 드물다는 사실도 안타깝지만 현실이다. 이번 앨범이 그녀에게 어떤 전환점이 될 만한 근거는 약해보이지만, 작은 바램은 그녀의 말처럼 그녀가 좀 더 노래만으로 세상과 대화했으면 하는 것이다. 그건 점점 더 진부해지는 [이소라의 프로포즈]에 대한 불만 때문이기도 하지만, 좋은 가수가 좋은 뮤지션이 되는 것은 분명히 다른 사실이며 그녀에게 열려있는 그런 가능성을 놓치지 말았으면 하는 이유 때문이다. 20001224 | 박정용 jypark@email.lycos.co.kr

6/10

수록곡
1. 제발
2. 그대와 춤을
3. Bye-bye
4. Rendez-Vous
5. Comedy
6. 너에게 나를 바친다
7. It’s Gonna Be Rolling
8. My Romeo
9. 가을시선
10. Tatto
11. Am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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