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50넬 – Reflection of Nell – imstation.com, 2000

 

 

‘한국형 브릿팝’의 우울한 위안

넬(Nell)이라는 이름의 ‘한국’ 밴드의 음악을 얼핏 들으면, ‘머, 라디오헤드네’라고 말할 사람이 꽤나 있을 것이다. 사실 그들도 굳이 말하자면 자신들의 음악이 ‘브릿팝 계열’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한국에서 ‘영국 팝’을 한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는 논란이 있겠지만). 하지만 음악을 들을 때 중요한 것이 장르를 분류하여 그저 ‘아류’라고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음악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것에 주목하는 것이라면 저런 평가는 분명 유보할 필요가 있다. ‘지독히 우울한, 지극히 개인적인’이라는 문구로 본인들 스스로 설명하듯 이들의 음악에는 ‘감성’이 전부라면 전부다. 이들은 일상에서 품게 되는 아픔이나 외로움에 대해 때로는 속삭이고 때로는 외친다. 하지만 느낌은 한결같고, 한결같은 느낌은 이미지(혹은 색채)로 나타나고, 그 이미지는 구체적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이다. 폐허가 된 ‘옛 비밀의 화원’에 있는 느낌이랄까. 예전의 아름다움이 눈에 아른거리면서도 정작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공허함과 외로움 속에 갇혀있는 자신뿐이라는 느낌 말이다.

넬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음악을 같이 좋아했던 김종완(보컬, 기타), 이재경(기타), 이정훈(베이스), 정재원(드럼)으로 이루어진 밴드다. 모두 1980년 생으로 어린 축에 속한다(현 가요계의 연령층을 배제하고 말이다). 그렇게 모여 ‘ilot’이라는 밴드로 펑크 록과 모던 록 계열의 음악을 연주하다가 1999년 8월 넬이라는 이름으로 바꾼 뒤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밴드의 이름은 영화 <넬>을 보고 영화의 전체적 색채가 그들의 음악과 비슷하다고 느껴져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모호한 이미지를 풍기는 이들의 음악과 어울리는 대목이다. 또한 그 이미지는 이들이 코드를 먼저 만들고 잼(jam)을 하면서 사운드를 만들고 멜로디는 나중에 붙이는 작업방식을 주로 택하는 데서 연유한다.

[Reflection of Nell]이라는 제목의 이 앨범은 이들의 데뷔 앨범이다. 게릴라 라디오와 독립제작자 협회에서 일하는 조경서가 총제작(executive producer)을, 델리 스파이스의 윤준호가 프로듀서를 맡았다. 여태까지 홍대 앞에서 라이브 연주로만 이들을 접했던 사람들은 너무나 말끔한 레코딩에 괜시리 당혹했을지도 모른다. 우울하면서도 다듬어지지 않은 거칠음이라는 매력이 사라진 점은 다소 아쉬운 점이다. 전체적인 연주도 감정에 충실히 몰입해서 연주했다기보다는 무언가에 잔뜩 긴장해서 박자에 또박또박 맞춘 느낌이 들며, 평소에는 보컬을 하나의 ‘악기’의 일부로 간주했던 것에 비해 음반에서는 보컬이 전면에 등장하고 나머지 악기 사운드는 배경으로 밀려나 있다. 첫 앨범이니만큼 자신들의 역량을 맘껏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비단 한국만의 현실은 아니겠지만.

그렇지만 앨범은 나름의 매력을 갖고 있다. 이 앨범은 튀는 곡이 없는 수평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첫 트랙 “Take Me With”와 마지막 트랙 “4”는 황폐해진 비밀의 화원 입구에서 아직 상상으로 몰입하기 전과 상상이 끝나버리고 난 후의 허무함을 각각 나타내듯 조용한 분위기로 일관하고 있다. 그 사이의 여덟 트랙들은 각각 분리하여 평하면 어쩐지 감정을 끊는 기분이 든다. 똑같은 하늘이라도 바라볼 때마다의 느낌이 사뭇 다르듯 이들의 ‘비슷한’ 노래들은 들을 때마다 ‘다르게’ 와 닿는다. 그저 ‘너에겐 말못할 많은 사연과 너만이 느끼는 아픔. 난 아프다고 안아달라고 말하는 너에게 다 그런거라고, 너무 쉽게 말하고 있는 걸. 날 용서해 줘(“어차피 그런거”)’라고 말할 뿐이다. 꽉 찬 사운드 안에서도 더욱 외로운 목소리로…

가슴에서 나오는 진실에 대해 노래하는 것에 목말라 있던 사람들이라면 이들의 사운드에 충분히 젖어들 수 있을 것이다. 비단 ‘한국의 인디 음악에 대한 사랑’이 없더라도 말이다. ‘나의 아픔들과 기다림과 애절함이 모두 사라지길(“4”)’ 바라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런 사람들이 이런 언어를 담은 가사를 영어나 외국어가 아닌 한국어로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20001228 | 김윤정 suedever@hanmail.net

5/10

수록곡
1. Take Me With
2. 믿어선 안될말
3. 어차피 그런거
4. 쓰레기
5. 넌
6. 두번째
7. 길들임
8. 그런기억
9. Eden
10. 4

관련 사이트
넬 공식 사이트
http://www.nellj.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