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신혜밴드 – 만병통치(萬病通治) – 도시락/동아기획, 1997 아마추어리즘과 키치로 빚은 재미 한국 대중음악에서 재미를 주는 음악은 흔치 않았다. 있어도 코미디언들의 일회성 노래나 개그를 목적으로 한 이른바 토크송, 탤런트나 코미디언의 캐롤송 정도였으며, 음악인의 정규 음반/음악이 재미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기타가 주도하는 록 음악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런 점에서 황신혜밴드는 매우 예외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이들의 음악은 매우 재미있다.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차이라면, 웃은 다음이다. 앞서의 예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음악은 웃기기 위해 만든 것처럼 보이지만, ‘그게 다는 아닐 것’이라는 뒤끝을 남긴다. 황신혜밴드는 ‘펑크 아방가르드’ 프로젝트이다. 이들을 펑크 프로젝트라 부른다면, 그것은 이제 장르로 안착한 펑크 록 스타일의 음악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록을 탈신비화하고 기성의 체제와 문화를 거부한 1970년대 말 고전적 펑크의 한 경향과의 연관성을 얘기하는 것이다. 황신혜밴드의 음악이 내포하는 의미와 그 효과, 그리고 이들이 밴드 활동을 하면서 시각적으로 보여준 것이나 인터뷰, 글을 통해 드러낸 견해 등에 미루어본다면, 황신혜밴드와 그 음악은 하나의 예술적 기획의 산물임을 알 수 있다. 김형태(보컬, 기타)와 조윤석(베이스, 1집 이후 탈퇴)이 홍대 미대와 건축학과 출신이고 미술, 인테리어, 퍼포먼스 등을 해왔다는 전력은 참고 사항이다. 스스로 “유치하고 거칠고 정돈되지 않았으며 거기서 벗어날 능력도 의사도 아예 없다”고 잘라 말한 것처럼, 1997년 봄 발매된 황신혜밴드의 데뷔 음반 [만병통치]에 담긴 음악들은 유치하고 거칠고 정돈되지 않은 듯한 첫 인상을 준다. “황신혜밴드 출동!”이라든가, “짬뽕이 좋아”라든가, “나는 장판 디자이너”와 같은 가사는 실소를 유도하고, 술 마시고 노래방에서 좌중을 띄우기 위해 음정 무시하며 부르는 듯하는 곡이 있는가 하면, 연주 실력은 그리 신통치 않게 들린다. 또 부클릿은 싸구려 잡지의 종이질이고, 거기에 가사가 이중 삼중으로 인쇄되어 있으며, 공주 인형, 장난감 로봇, 색동 사탕, 인조 보석, 700 유료 전화 광고들이 별 일관성 없이 일러스트로 삽입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곧 드러났지만) 매우 의도적인 것이다. 유치함과 촌스러움이야말로 황신혜밴드가 노리는 것이다. 이 음반의 히트곡이자 이들을 TV 음악 프로그램 출연으로까지 이끈 “짬뽕”의 유치하고 반전의 묘미가 있는 가사는 그 자체로 재미를 준다. 또 “닭잡아 먹고 오리발을 내밀면 꿩 대신 닭을 잡아먹었지”, “닭대가리가 될까 뱀꼬리가 될까” 같은 가사로 그저 웃게 만들다가도 “닭모가지 비틀어서 새벽이 오면 닭쫓던 개는 어디로 가나요” 같은 부분은 잠시 의미를 곰씹게 한다(“닭대가리”). 그래서 이들의 말도 안되는 가사는 기지 넘치는 반전과 해학으로 전환된다. 예컨대, 진통제란 뜻의 첫 곡 “Pain Killer”의 말장난은 자신들의 노래가 ‘폐인 킬러’이며 ‘만병통치제’라는 연상을 불러일으켜 ‘천하무적 만병통치 황신혜밴드 출동’하는 만화영화 주제가 같은 마무리마저 의미심장하게 들리게 한다. 또 여기 삽입된 한자성어와 의도된 오역은 엄숙주의를 조롱하는 효과를 발휘한다. 이쯤 이르면 이들이 유치함으로 상식과 엄숙한 기성 문화를 조롱하고 뛰어넘으려 한다는 의도를 간파하게 된다. 전술하였듯이, 황신혜밴드(와 이들의 음악)는 문화예술 기획의 결과물이다. 이들의 음악과 김용만, 서수남 하청일, 장고웅과 천지개벽, 정광태, 강병철과 삼태기 등의 만요와의 차이점이 그것이다. 가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펑크 록(“무너진다”), 하드록(“문전박대”), 이박사 스타일의 뽕짝(“짬뽕 (Disco Version)”), 1970년대 신중현과 엽전들 풍(“님과 함께”) 등 여러 스타일을 차용한 이들의 사운드도 첫 인상과 달리 그리 만만치 않다. “Pain Killer” 후반부의 사물(타악 그룹 ‘푸리’ 연주) 배치라든지, “짬뽕”의 맛깔스런 가창과 기타 리프, “뒹굴뒹굴”의 프리한 연주, “무너진다”의 거칠고 간결한 직진성, “문전박대”의 성적 연상을 유발하는 노래의 아이러니한 효과 등은 관습성 속에서 참신함을 길어낸 것이다. 한 번 들으면 귀에 쏙 들어오도록 노래를 만드는 능력이나 가사를 음악적으로 배치하는 능력은 탁월하다. [만병통치]는 재미와 진지함을 동시에 얻으려는 황신혜밴드의 첫 성과물이다. 이들은 1970년대 장돌뱅이나 약장수의 이미지로 태연하게 키치적인 음악과 활동을 벌였다. 찬반이 엇갈리지만, 음악에서 중요한 것은 자유로운 상상력이라면서 기성의 형식주의와 신화에 맞선 황신혜밴드의 이 음반(과 이후의 활동)은 한국 록 음악 문화의 대세였던 프로페셔널리즘과 록 이데올로기에 일정한 해독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이 음반은 한국 대중음악에(특히 록에) 유머와 재미를 돌려주었다. 20001230 | 이용우 djpink@hanmail.net 8/10 수록곡 1. Pain Killer 2. 짬뽕 3. 닭대가리 4. 맛 좀 볼래 5. 문전박대 6. 님과 함께 (Remake) 7. 무너진다 8. 뒹굴뒹굴 (초대가수: 백현일) 9. 짬뽕 (Disco Version) 관련 사이트 황신혜밴드 홈페이지 http://www.hshband.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