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리어스 아티스트 – 다시 꽃씨 되어 (김광석 추모앨범) – 서울음반, 2000 남아있는 추억, 기억되는 노래 김광석의 노래에 대한 추억을 하나쯤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라면, 둘 중 하나이지 않을까. 서태지 이후의 대중 음악에만 반응했던 20대 초반 이전의 나이든지, 조용필 이후의 음악에는 반응하지 못했던 40대 이상의 중년이든지. 1988년 동물원의 데뷔음반에 실린 “거리에서”로 알져지기 시작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이등병의 편지”, “사랑했지만”, “일어나”, “서른 즈음에”, “나의 노래” 등 수많은 노래들을 알리며 1980년대의 향수를 조금이라도 안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았던 그가 자신의 음악적 절정기인 서른 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아쉬움은 한 젊은 가수의 ‘요절’이라는 의미를 넘어서는 안타까움이었다. 김광석의 음악과 그 위치는 한 평론가의 말처럼 ‘한대수 이후 한국 모던포크의 적자'(그러나 대중적인 위치에서는 사뭇 다른)로 불리기에 전혀 모자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의 암흑기와 1980년대의 정치적 변혁기를 관통하며 음악(노래)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그 기운이 ‘민중가요’로 불리는 하나의 흐름을 만들었다면, 이는 또한 김광석, 안치환으로 대표되는 자기성찰적이고 시대를 응시하는 포크계열의 흐름도 만들어냈다. 그런 그가 음악적으로나 영향력에서나 절정의 순간에 죽음을 택했고, 꼭 그 이유 때문만은 아니더라도 한국 대중 음악에서 소중한 하나의 흐름은 ‘신세대’라는 담론과 ‘댄스’라는 장르에 묻혀버리고 만다. 안치환도 조동익 사단도 정태춘도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내지는 못한 채 이젠 대학에서마저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이니 말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가치는 뒤늦게 발견되는 법. 그가 죽자마자 여러 앨범이 쏟아져 나왔지만 금새 묻혀버렸고,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느닷없는 김광석 바람(뜬금없다는 점에서)이 불고 있다. 무엇보다 영화 [공동경비구역]의 영향이 컸지만, 어쨌든 영화에 수록된 “이등병의 편지”는 그를 전혀 모르는 젊은 친구들에게도 세월을 넘어선 울림을 주고 있으며, 이번 추모앨범은 음반판매에서도 5위권 안에 있다. 김광석의 추모앨범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김현식 추모앨범과 많은 차이점을 갖고 있다. 김현식 추모앨범이 참여 뮤지션들 각자의 장르와 성향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기존 곡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던졌다면, 이 앨범은 철저히 김광석의 목소리를 ‘추모(추억)’하는 데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밥 말리(Bob Marley) 추모 앨범 [Chant Down Babylon]처럼 밥 말리의 목소리와 참여 뮤지션의 목소리가 놀라운 기술의 도움으로 전혀 차이를 느낄 수 없게 융합된 수준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곡에서 그 중심은 김광석의 목소리다. 김광석의 목소리로 시작하면 이소라가 받고, 다시 김광석이 받아치면 윤도현이 받는 그런 식이다. 이런 방식은 음악적인 만족도나 창조성에서는 낮은 점수를 받을지 몰라도, 애초 이 음반의 의도가 ‘추모(추억)’에 있음을 생각한다면 적절한 방식이고, 실제 김광석을 추억하며 음반을 구매할 청자들에게도 이는 만족스러울 것이다. 이소라, 박학기, 권진원, 한동준, 여행스케치, 강산에, 동물원, 윤도현, 안치환, 김건모, 장필순, 윤종신 등 실제로 생전의 그와 함께 활동했던 음악인들로 채워있는 추모앨범에 대해 한곡마다의 설명을 붙이는 것은 생략하자. 아래에 적혀있는 곡의 제목과 참여한 음악인들을 보고 떠올린 느낌이 있다면, 그 느낌 그대로일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음반사의 상업적인 의도를 제외한다면 그들의 고인에 대한 살가운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앨범 부클릿에 삽입된 고인에 보내는 편지에 자신의 편지를 하나쯤 써보는 것도 좋은 감상법 중 하나일 것이다. 이미 멈춰져버린 그의 음악은 지나간 자신의 시간과 만날 때 더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입대 3일전 학전소극장에서 들었던 “이등병의 편지”보다, 졸업을 앞둔 20대 후반에 혼자 남은 학회룸에서 불렀던 “서른 즈음에”보다 더 감동적인 노래가 어디 있을까. 20001211 | 박정용 jypark@email.lycos.co.kr 7/10 수록곡 1.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이소라) 2. 서른 즈음에 (박학기 권진원) 3. 거리에서 (나원주) 4. 나의 노래 (한동준 여행스케치) 5. 그대가 기억하는 나의 옛 모습 (조트리오) 6.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강산에) 7. 변해가네 (동물원) 8. 일어나 (엄태환 이정열 서우영) 9. 이등병의 편지 (윤도현) 10. 그날들 (안치환) 11. 그녀가 처음 울던 날 (김건모) 12. 기대어 앉은 오후에는 (장필순 윤종신) 13. 혼자 남은 밤 (더 클래식) 14. 거리에서 (연주곡) 15. 혼자 남은 밤 (연주곡) 16. 이등병의 편지 (연주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