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25일, [하드코어 록 페스티벌]의 ‘하나의’ 단면도

20001216032640-taiji111월 25일 이화여자대학교 강당에서 열린 하드코어 록 페스티벌에 간 것은 ‘서태지가 나온다’는 사실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그게 제일 중요한 동기였음은 부인하기 힘들다. 서태지 ‘실물’을 보는 일은 참 특이한 경험이라고 생각했고, ‘육성’이야 들을 수 없겠지만 ‘실시간’으로 ‘생음’을 들을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공연에 참여하는 밴드가 대여섯개 된다는 소문에 서있는 일을 부담스러워하는 나는(늙어서가 아니라 중학교 때 조회시간에도 나는 픽픽 쓰러졌다. 몸이 약해서가 아니라 그런 상황을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점심 시간에는 핑핑 잘 놀았으니까) 서태지가 마지막에 나올 것이니 느지막히 가기로 했다. 그렇지만 7시쯤 찾아간 공연장은 아직도 입장하는 청중들로 어수선했다. “공연 곧 시작합니다”라는 주최측 인사의 외침을 뒤로 한 채 나의 일행은 오랜만에 와보는 이대앞의 유서깊은 분식집 ‘오리지날’을 찾았다. 떡볶이에 라면과 쫄면을 넣어 배 터지게 먹은 뒤 배 두들기며 공연장을 다시 찾았지만 아직 첫 번째 밴드의 공연이 다 끝나지 않고 있었다.

정말 미안한 말이지만 ‘언더 밴드’들의 공연에 대한 리뷰는 오늘은 중략하기로 한다. 연주가 훌륭하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날 나의 관심과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연 리뷰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이유가 또 있는데, 1층에 진입하려는 시도가 무산되어(계속 사람들이 튕겨져 나오는 상황이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그곳의 사운드는 ‘뭉개진’ 것이라서 뭐라고 평할 수가 없어서였다. 한 시간 이상이 흘러 지친 청중들이 땀을 뻘뻘 흘리면서 공연장 밖의 계단에 지쳐 앉아있는 상황이 된 다음에야 1층과 2층을 왔다갔다하면서 사운드의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2층에서 본 사람의 입장에서는 클럽에서 오랫동안 연주했던 밴드들은 많은 수의 사람들 앞에서 쫄지는 않았더라도 압도할 만한 무언가를 보여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게다가 공격적이고, 과격하고, 무겁고, 거친 사운드가 계속 나오다 보니 처음의 긴장감이 자꾸 무뎌지는 것이 느껴졌다. 더군다나 록 공연의 메리트 중의 하나인 ‘따라 부를 수 있는 후렴구(이른바 ‘훅’ 혹은 ‘싸비’)를 제대로 모르다 보니 흥미가 반감되었다. 공연을 올 때 ‘준비’를 잘해 와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이때였다.

서태지의 순서인줄 알고 1층 뒤에 자리를 잡았는데 힙합 그룹(CB Mass)이 나와서 공연을 가진 다음에야 기다리고 기다리던 서태지가 등장했다. 서태지가 등장하기 이전의 공연장의 모습에 대해서는 여타 게시판에서 많은 얘기가 있었으므로 생략하겠다. 그 광경은 ‘음악을 감상하러 온’ 나의 계획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나 하는 반성의 기회를 주었다. 특히나 공연장 문밖에서 강강수월래 대형으로 늘어서서 단체로 헤드뱅잉하던 열 명 안팎의 젊은이들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윽고, 드디어, 마침내 서태지가 등장하여 연주를 시작했다. 사운드는 좋았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이제까지 내가 본 다른 밴드의 경우는 공연하는 모습이 일차적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TV나 라디오에 나오면 무언가 실제 모습과 달라 보였고, 혹시나 틀리지 않을까 불안했다. 하지만 그날의 상황은 정반대였다. 연주자의 배치는 드러머가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 있는 걸 제외하고는 비슷했다(청중이 보기에 좌우에 두 대의 기타, 가운데 보컬(서태지), 그 뒤로 베이스가 포진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마치 TV를 대형 스크린으로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 버렸다. 즉, 서태지의 경우는 TV가 일차적이었고 공연은 ‘TV를 재현하는 것(이중의 재현?)’ 같았다(그 순간 Even Better Than the Real Thing이라는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연주가 안정적이었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더욱 강하게 들었을지도 모른다. 악기음들은 개별적으로 잘 들렸고 전체적으로도 잘 어우러진 편이었다. 애교로 봐줄 수 있는 실수는 별로 없었고 잘 의도된 연주가 이어졌다. 그러다가 “너에게”를 연주하던 어떤 순간 서태지의 ‘두 개의’ 목소리가 들렸다. 고음의 배킹 보컬 말이다. ‘저건 어떻게 했을까’하고 궁금해했지만 정규 음반에 레코딩된 것과는 느낌이 달랐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다’고 넘어가려고 했다. 그렇지만 그 뒤 몇 번 비슷한 예가 더 나왔다. 아마도 배킹 보컬은 사전 녹음이 대부분 되어 있었던 듯하고 메인 보컬도 라이브 보컬과 더불어 더빙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한두 번 운이 안맞아서 ‘딜레이’처럼 들릴 때가 있었다. 악기연주는 어떻게 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음향을 담당한 엔지니어에게 물어볼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괜히 뭘 캐는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서 그만 두기로 했다.

분명한 것은 그날의 연주가 ‘100% 라이브’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립씽크 쇼였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노래 대부분은 실시간으로 부른 것 같으니까 말이다(한국에서는 언제부턴가 ‘노래’만 직접 부르면 라이브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런 나라에 살기 싫지만 어쩔 수 있나….). 따라서 그날 서태지의 공연은 라이브 ‘연주’와 사전녹음된 ‘재생’이 결합된 것이 분명하다는 점이었다. 이걸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난감해 하면서 나는 공연장 문을 나섰다.

20001216032640-taiji2따지고 보면 현대의 대형 라이브 공연이 ‘100% 라이브’는 아니다. 어차피 미리 녹음된 음원을 가지고 하는 ‘테크노 라이브’이거나 ‘라이브 디제잉’은 물론이고, 따지고 보면 기타 이펙트도 미리 조정해 놓고 나가야 하는 걸 보면 록 공연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청중에게 보다 좋은 사운드를 서비스해 준다는 차원에서 그러는 걸 뭐라고 그럴 수는 없다. U2같이 대형 라이브에 통달한 밴드도 시중에 판매하는 비디오를 보면 나중에 스튜디오에서 다듬은 걸 느낄 수 있다(덧붙일 말이 있다면 보노의 보컬은 레코딩보다 한음 정도 음정이 낮을 때도 많다). 비디오(이른바 ‘롱 폼 비디오(long form video)’)가 음반만큼 떼거지로 팔려나가는 건 아니므로 양질의 음을 선사한다는 차원에서 이해할 수도 있다(물론 이걸 용납 못하는 것도 자유다). 또한 최근의 데이빗 보위나 플레이밍 립스의 공연을 보더라도 현악기나 관악기 같은 소리는 미리 녹음하여 ‘틀어놓고’ 라이브 연주를 병행한다. [weiv] 뉴스에서 한번 다뤘지만 플레이밍 립스 같은 또라이들은 휴대용 라디오와 이어폰을 나눠준다고도 한다.

그런데 서태지의 공연은 미심쩍은 면이 있다. 이번 음반에 수록된 음악은 베이스, 드럼, 기타로 연주할 수 있는 음악, 이른바 ‘기타 록’이다. 관악기나 현악기처럼 번거롭게 세션을 불러오거나 불러오더라도 맞춰보려면 힘겨운 스타일의 음악이 아니라는 뜻이다(현악기 같은 경우는 e-보우(electric bow: 전기 활?)를 잘 사용하면 전기 기타로도 비슷한 사운드를 낼 수 있다). 그렇다고 테크노/일렉트로니카 스타일이라서 드럼 루프가 들어간다거나 샘플링된 효과음이 많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럴 때는 라이브 공연에서는 신서사이저나 샘플러(국어로 ‘키보드’)를 전면에 내세워서 하면 된다.

그런데 그날 공연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록 순수주의자’이거나 ‘펑크 원리주의자’라서 이런 말을 하는 건 아니다. ‘밥 딜런이 전기 기타 들고 나온다고 돌 던지던 포크 순수주의자’라서 하는 말도 아니다. 어쨌든 그날의 공연은 ‘생’연주로 팬들과 함께 호흡하는 모습은 아니었다. ‘100% 라이브면 어떻고 아니면 어떠냐, 나는 충분히 그와 함께 호흡했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나 같은 경우는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걸 숨길 수 없었다.

모르겠다. 아직도 완벽한 연주로 청중을 압도하는(메탈리카 같은?) 연주가 아니면 ‘실력 없네’라는 말을 쉽게 하는 ‘어떤 관람태도’ 때문인지도. 그리고 나같은 발상은 ‘연주력은 좀 떨어져도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자기표현을 하려는 모습’에서 얻는 감흥을 소중하게 여기는 ‘낙후된’ 건지도 모르겠다. ‘반주 틀어놓고 하는 라이브’에 대해서는 젊은 음악팬들이 정리해야 될 문제인 것 같다. ‘그냥 들어서 좋으면 좋은 게 아니냐’는 태도는 넘어섰으면 하는 바램이지만 이 또한 존중될지 어떨지는 모를 문제다. 20001213 | 신현준 homey@orgio.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