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52배리어스 아티스트 – Tribute To Kim Hyun Sik: In Memory Of The Tenth Anniversary – Jags Media/Warner Music Korea, 2000

 

 

헌정의 의미가 잘 보이지 않는 헌정 앨범

김현식은 들국화와 함께 1980년대 신촌 언더그라운드 씬(또는 일명 동아기획 사단)을 대표하는 스타였다. 순수성과 퇴폐성이 교차하는 이미지를 갖고 있던 그는 남성적인 걸출한 음색으로 “사랑했어요”, “비처럼 음악처럼”, “넋두리” 등의 많은 히트곡을 남겼다. 그리고 1990년 11월 1일, 불과 서른 두 살에 간경화로 요절하면서 가요계의 ‘디오니소스’가 되었다. “내 사랑 내 곁에”가 담겼던 유작 앨범은 밀리언셀러가 되어 1991년을 평정했는데, 이는 김현식 신화의 완성이자 신촌 언더그라운드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김현식 트리뷰트 앨범의 발매는 예견된 일이다. 편집 음반과 트리뷰트 음반이 일반화된 점에서도 그렇고, 김현식에 대한 인기가 아직 편재해 있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비처럼 음악처럼”은 비오는 날 심심찮게 흘러나오는 ‘라디오 테마곡’이고, 김현식의 많은 노래들은 노래방에서 여전히 인기가 많다. 그가 죽은 뒤 꽤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음반 매장의 진열대에 그의 정규 음반 CD들이 갖춰져 있다는 점(그런 사례는 드물다)은 그의 상품성을 말해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올해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되는 해이다.

[Tribute To Kim Hyun Sik: In Memory Of The Tenth Anniversary]는 스물 다섯 명의 가수, 열 명이 넘는 편곡자, 수십 명의 연주자, 열아홉 명의 엔지니어가 2장의 CD에 김현식 노래 24곡, 25가지 버전을 빚어낸 음반이다. 현재 가장 인기 있는 가수인 조성모로부터 과거 김현식과 절친했던 엄인호까지 출연진의 스펙트럼은 매우 넓다. 이들은 크게 김현식의 후배, 김현식 생전의 동료의 두 무리로 나뉘어(물론 예외도 있다) 1장씩의 CD를 꾸미고 있다. 일명 ‘신세대편’인 CD 1에는 조성모, 신승훈, 이승환, 유승준 등이 노래하고 있고, 이른바 ‘386편’인 CD 2에는 장필순, 엄인호, 김동환, 강인원 등이 노래하고 있다. [명성황후]로 알려진 뮤지컬 배우 이태원과 영화배우 최민수도 우정출연하여 노래를 들려주고 있다.

참여진의 면면과 음반의 구성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음반은 현재 대중 음악계에서 인디 씬과 댄스가요 진영을 제외한 주류 뮤지션과 편곡자를 망라한 라인업으로 제작되었다(유승준은 예외에 해당한다). CD 1이 현재 음반의 주 구매층인 10대와 20대 전반의 수용자층을 노린 것이라면, CD2는 김현식을 동시대에 좋아했던 20대 후반 이상의 수용자층을 노린 것이다. 거의 모든 수용자층을 노린 기획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래서 음반에 담긴 음악들은 ‘김현식이 불렀던 노래’란 점 외에 공통분모는 없다.

음반에 담긴 리메이크 성향을 보면, 임재범의 “비처럼 음악처럼” 같이 원곡에 충실한 경우도 있지만 참여 뮤지션과 편곡자가 자기 스타일로 바꾼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승준은 중간 템포의 R&B 댄스 스타일로 “골목길”을 불렀고, 김조한은 R&B 발라드로 “내 사랑 내 곁에”를 불렀는데, 각각 X-Teen의 Chang과 이현도가 참여해 랩을 들려주었다. 김경호는 “사랑 사랑 사랑”을 메탈로 탈바꿈시켰고, 김종서는 “떠나가 버렸네”를 얼터너티브 록/메탈 식으로 변형했다.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가 이은미에 의해 레게로 바뀌었는가 하면, “어둠 그 별빛”은 이승환에 의해 좀더 로킹해지면서 동시에 테크노/인더스트리얼적인 오밀조밀한 효과가 첨가되었고, “추억 만들기”가 이태원에 의해 오페라 아리아 같은 분위기로 바뀌었다면, 원래 리 오스카 식의 하모니카 연주곡인 “한국 사람”은 함춘호의 기타 연주로 클래식 소품 같은 느낌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마치 각 참여가수의 앨범에서 리메이크 곡을 하나씩 뽑아서 편집한 컴필레이션 음반 같다는 느낌을 준다. 하긴 트리뷰트 앨범이 진심으로 ‘헌정’의 의미로 모여서 만들어졌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이제 그리 많지 않다. ‘김현식 음악의 계승과 대중화’라는 명분은 음반 보도 자료나 신문 기사 같은 데나 어울릴 듯하다. 김현식의 절친한 동료들이었던 엄인호, 한영애, 김동환, 정경화, 권인하가 부른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1991년 추모 음반 [하나로]에도 실린 바 있다)와 김현식과 비슷한 카테고리에 속할 임재범이 부른 “비처럼 음악처럼” 정도가 옛 향수를 자극하고, 이른바 모던록 스타일의 연주 위에 특유의 정갈한 음성을 실은 장필순의 “재회”가 근래의 감성을 보여주면서 이 음반의 백미를 이룰 뿐이다. 스물 다섯 트랙 가운데 몇 곡 건지면 면피는 되는 거 아니냐고 볼 수도 있겠지만.

1990년 김현식이 죽고 난 후 유작인 6집을 제외하고도 지난 10년 동안 라이브, 추모, 베스트, 미발표곡 모음 등의 명목으로 8종이나 되는 음반이 나왔다. 한편으론 김현식이 여전히 인기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른 한편으론 참 많이도 울궈먹는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이 음반을 통해 헌정의 의미를 찾는 것보다는 김현식 노래란 프리즘을 투과해 비쳐진 현재 한국 주류 음악의 형세와 그 백화점식 음반구성을 확인해보는 게 더 현명한 처사일지도 모르겠다. 울림 혹은 불만이 있는 사람은 김현식의 옛 음반을 꺼내서 먼지 닦아 들을 수도 있겠고. 20001213 | 이용우 djpink@hanmail.net

4/10

수록곡
CD 1
1. 한 여름밤의 꿈 – 조성모
2. 가리워진 길 – 신승훈
3. 언제나 그대 내 곁에 – 김민종
4. 골목길 – 유승준
5. 어둠 그 별빛 – 이승환
6. 우리 이제 – 윤종신
7. 내 사랑 내 곁에 – 김조한
8. 떠나가 버렸네 – 김종서
9. 사랑 사랑 사랑 – 김경호
10. 눈 내리던 겨울 밤 – 김범수
11.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 이은미
12. 한국 사람 (연주곡) – 함춘호

CD2
1. 비처럼 음악처럼 – 임재범
2. 재회 – 장필순
3. 우리 처음 만난 날 – 한동준
4. 추억 만들기 – 이태원(소프라노)
5. 겨울 바다 – 최이철(사랑과 평화)
6.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 엄인호 한영애 김동환 정경화 권인하
7. 봄 여름 가을 겨울 – 김동환
8. 비오는 어느 저녁 – 엄인호
9. 비오는 날의 수채화 – 강인원 김명상 강윤식
10. 당신의 모습 – 정경화
11. 당신의 모습 (연주곡) – 조동익
12. 넋두리 (시낭송) – 최민수
13. 사랑했어요 – 최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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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이트
티켓링크 김현식 추모 공연 페이지
http://www.ticketlink.co.kr/ticketlink/ProductView/6/3453

동아뮤직의 김현식 홈페이지
http://www.dongamusic.com/singer/002/index.html
김현식의 프로필 및 앨범 소개

김현식 팬페이지
http://loner.pe.kr/kimhyunsik
http://myhome.thrunet.com/~takion/html/khsfram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