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대수 – Eternal Sorrow – 크림, 2000 아직 다다르지 못한 거장의 종착점 “이번 나의 마지막 작품 [영원한 고독]도 나오지 않을 뻔했다. 다섯 개의 음반사를 찾아갔지만 모두들 대답이 ‘예, 한선생님 음반을 제작해야지요’ 하고선 조용히 문을 닫았다. 이것이 나의 32년 동안 음악 활동의 결과였다.” 스스로 마지막 작품이라 토로하는 한대수의 여덟 번째 앨범은, 그의 첫 번째 앨범과 나란히 놓았을 때 표면적으로나마 대칭점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은 앨범의 커버사진을 비교해 보는 것으로, 이상의 [오감도]에 나오는 “무서운 아해와 무서워하는 아해”와도 같이 [멀고 먼 길]에 등장하는 무서운 아해는 어느덧 무서워하는 아해의 표정을 짓게 되었다. 이는 ‘영감의 쇠잔’이라는 본인의 고백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국내 음반사의 외면이 더 크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어느덧 국내 음악은 정치상황에서 경제논리로 변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런 연유로 [Eternal Sorrow]가 면죄부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섯 개의 음반사를 전전하다 손무현의 도움을 얻어 제작된 그의 ‘마지막’ 앨범은 거장의 종착점이라고 보기엔 힘들기 때문이다. 그동안 그의 앨범이 가사와 곡, 음반의 컨셉이 조화를 이루었던 반면, 이번 앨범은 새로운 노래가 다섯 곡에 불과하며 프로듀서의 색채가 진하게 남아있는 미완의 결과물인 채로 출고되어 버렸다. 여기에 경제논리의 피해의식 탓인지, 음악의 통시성보다는 공시성에 치중하여 특유의 목소리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미끈하게’만 들린다. 물론 그의 음악 철학은 “사운드가 새롭지 않으면 할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이야기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새로운 사운드라기보다는 다만 정제되고 깔끔한 손무현식 악기구성으로 점철되어 있다. 따라서 “Paranoia”의 패셔너블한 기운과 “멍든 마음 손에 들고”의 훵키한 리듬으로 동시대의 공감을 얻을지는 모르겠지만, 오랜 생명력을 갖기는 힘들 것 같다. 간혹 “그리움”이 스산한 고독의 정서를 집어내거나 2집에 수록되었던 “여치의 죽음” 등이 그 간극을 메우려 하지만 이 또한 원곡의 분위기를 흉내내는 데 그칠 뿐이다. 이는 마지막 수록곡인 “Outro/Demo Tape”를 들어보면 보다 확연해지는데, 오리지널 버전에 어느 정도의 파운데이션으로 덧칠했는지 찾아보자. 덕분에, 거칠게 말하자면 한대수는 객원 보컬 같은 인상마저 든다. 그러므로 이번 앨범을 한대수의 마지막 음악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 역시 이번 작업을 변명하기 위해서라도 모두를 끝내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될 것이다. 다시 한번 시대의 모순에 희생되었다고 생각한다. 늘 ‘청년의 마음’을 갖고 자신의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역작으로 스스로를 전복시킬 때, 비로소 ‘마지막’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닐지. 아직까지 그에게 ‘마지막’이라는 단어는 어색하다. 20001213 | 신주희 zoohere@hanmail.net 4/10 수록곡 1. Intro (여러분!) 2. Paranoia 3. 멍든 마음 손에 들고 4. To Oxana 5. 멸망의 밤 (for over 19) 6. 멸망의 밤 (for under 19) 7. 그리움 8. 남자/여자 9. 그대 10. 옥의 슬픔 11. Headless Man 12. 여치의 죽음 13. Outro/Demo Tape 관련 글 한대수 [Masterpiece] 리뷰 – vol.2/no.12 [20000616] 관련 사이트 한대수 공식 홈페이지 http://hahndaes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