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53삼호선 버터플라이 – Self Titled Obsession – 강아지/대영AV, 2000

 

 

마이너리그 올스타의 단한번 아름다운, 천만번 새로운 꿈

한국 대중음악계의 ‘마이너리그 올스타 밴드’가 제작한 이 음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몇 가지 특징이 있을 것이다. 첫째는 (영미의) ‘록 음악’ 이른바 ‘기타 록’을 많이 들어본 사람이고 그게 자기 삶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것이다. 클래식이든 모던이든, 메인스트림이든 얼터너티브든 가리지 않고 듣지만, 전자에서 후자로 주된 관심이 이동한 경우일 것이다(하지만, 가끔씩은 오래된 것도 들으면서 향기를 느끼려고 할 것이다). 그러니까 ‘1960-70년대 록이 역시 최고다’라고 생각하든가, ‘나는 옛날 록은 모른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는 사람은 이 음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1994년부터 1996년에 이르는 ‘한국 인디 록의 진짜 전성기’에 홍대앞을 들락날락한 일이 많은 사람일 것이다. 그러니까 1993년 이전 오렌지족이 들끓던 홍대앞이나 1998년 이후 ‘놀데’를 찾아오는 사람이 대다수인 홍대앞이 아니라 ‘무언가 일어나는 듯했던’ 시기 말이다.

지금의 홍대앞이 그렇듯 이 음반도 돌파형이라기보다는 종합형이다. 아울러 ‘중견’이라든가 ‘베테랑’이라든가 하는 단어들도 다분히 염두에 두고 제작한 음반이다. 처음의 세 트랙에서 소닉 유스제(製) 노이즈를 음악적 컨셉트로 삼은 것은 그게 ‘유행’이 지나간 줄 알지만 그게 ‘좋기 때문에’ 밴드의 색깔로 확립하기 위해서다(사실 성기완과 박현준은 지나치게 많은 음악 스타일을 건드려 왔다. 이번엔 마지막?). 반면 “창틀 위로 정오 같은”에 나오는 블랙 사바스제 리프가 ‘천편일률적’이라고 느껴진다면 그건 ‘록 음악’에 대한 애증(한국에도 그런 게 있는가를 불문한다면)을 표현하려는 소재이기 때문이다. 피드백의 인트로를 포함한 그런지 록의 텍스처를 선보일 때는 1997년 이후 새롭게 등장한 음악 중에서 흥미로운 것은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비단 사슴”처럼 드물게 벨벳 언더그라운드표 멜랑콜리 발라드가 나온다면(물론 벨벳표가 이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복고풍 팝 멜로디가 유행이기 때문이 아니라 이런 것도 역설적으로 신선할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이다. 남상아가 드문드문 영어로 노래부르는 것은 ‘왜 한국에 산다고 한국어로 노래불러야 하는가’라는 한때의 치기의 시대가 지나가고, 인터내셔널 인디 커뮤니티의 막연한 꿈이 있지만 그렇다고 그걸 꼭 드러내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손뼉치며 열광하는 청중의 열광적 반응을 의식하며 만들어진 ‘록 마스터피스 앨범’에 대한 반발이 너무 커서가 아니라 그 ‘시대’가 지나갔음을, 불청객으로 찾아왔다가 사라진 것에 대한 체념과 분노가 화학적으로 엉겨붙어있기 때문이다. 노이즈에서 분노를 찾기보다는 멜로디에서 긍정을 찾는 시대에 대한 고전적이고 문학적인 소수자의 불만스러운 자의식을 이 음반에서 찾기는 어렵지 않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래야만 하는가에 대한 자괴와 소수의 충성스러운 팬들에 대한 애정이 도착적으로 들썩거림도.

그래서 이 음반은 과소평가될 음반도, 과대평가될 음반도 아니다. 단, 음반 제목은 과소평가될지 모르겠다. ‘똑같은 제목의 강박’이라는 타이틀답게 사운드는 일관되게 강박적이고, 그 강박은 기본적으로 스스로를 향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을 슬쩍 초대한다. 하지만 초대는 불친절하고, 안내는 불편하고, 언제 헤어질지 모르게 만든다. 그래, ‘홍대앞 인디의 꿈’도 이젠 과거형이 되었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이런 식으로 말고 어떻게 다르게 표현될 수 있을까. 만약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건 ‘대박’이 될 것이다. 그 가능성은 “꿈꾸는 나비”에서 슬그머니 묻어 있다. 바이올린과 어우러져 몽환적으로 부르는 “단한번 아름답게 변화하는 꿈 / 천만번 죽어도 새롭게 피어나는 꿈”. 그러나 “한번의 꿈만으로 모든 걸 뒤엎을 순 없어”… “그래도 넌 꿈을 꿔”라는 가사 때문에? 그보다는 저 멀리서 들려오는 페이저와 리버브와 딜레이를 뒤섞은 듯한 슬라이드 기타의 노이즈 때문에. 이 소리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들을 수 있을까. 20001212 | 신현준 homey@orgio.net

5/10

수록곡
1. 말해 줘 봐
2. 별을 안았다
3. Coming Out
4. 걷기만 하네
5. 방파제
6. 거울아 거울아
7. 꿈꾸는 나비
8. 회전문
9. 비단 사슴
10. Ice Cube
11. 창틀 위로 정오 같은
12. 울음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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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ganga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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