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56허클베리 핀 – 18일의 수요일 – 강아지 문화/예술, 1998

 

 

서정이 배어난 한국식 그런지

1990년대 중반 이후 홍대 주변 클럽들을 중심으로 형성된 ‘인디씬’은 구조적인 문제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나름대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인디 레이블이 하나둘씩 설립되었고, 공연만 하던 밴드들은 서서히 자신들의 음악을 음반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들 인디 밴드들의 음반이 본격적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 해가 1998년이었다. 허클베리 핀의 음반 또한 미선이, 코코어, 허벅지, 앤, 볼빨간, 갱톨릭 등의 첫 작품과 함께 1998년에 발매되었다.

당시 클럽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공연 활동을 하던 밴드 중 하나였던 허클베리 핀은 남상아(보컬/기타), 이기용(기타/베이스), 김상우(드럼)로 이루어졌다. 이들의 음악을 굳이 장르의 개념으로 설명하자면 펑크(punk)와 그런지(grunge)에 가까운 음악이라 할 수 있겠다. 처음에는 조용하게 노래 부르다가, 후렴 부분이 되면 거친 목소리로 질러대는 보컬. 그리고 이 때 여지없이 등장하는 ‘폭발적인’ 사운드. 이 정도라면 누구나 너바나(Nirvana)를 연상할 만도 한데, 모든 곡이 그렇다는 것은 물론 아니다. “보도블럭”, “갈가마귀”는 확실히 그런 곡에 속하고, “불을 지르는 아이”에서 남상아가 걸걸한 목소리로 외쳐대는 ‘헤이 예 예’를 듣고 있노라면 커트 코베인이 떠오른다.

그러나 이들의 음악을 전형적인 그런지 스타일로만 한정시켜서 볼 수 없는 것은, 이들의 음악에는 그런지가 갖고 있는 공격적이고 분출하는 사운드에 자신들만의 서정성이 조화롭게 공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제 분노했냐는 듯 시종일관 정감 있는 분위기가 이어지며 남상아의 노래를 배경으로 앞에 나왔던 가사를 이기용이 저음으로 중얼중얼 읊조리는 것이 인상적인 “Huckleberryfin”, 곡 시작부터 어쿠스틱 기타 반주가 등장하면서 곡의 전반적인 느낌을 부드럽게 이끌어 가는 “Work”에서 이들의 서정적 측면은 잘 드러난다. 게다가 이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운드를 배경으로 내지르듯 노래 부를 때조차도 억지로 한다는 느낌이 없고 자연스럽다.

이들은 ‘펑크적’이었지만 홍대 앞 클럽 ‘드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화려한(?) 펑크 밴드들과는 확실히 달랐고, 그렇다고 방 한구석에서 조용히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감상자들이 환호할 만한 존재도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이들이 큰 인기를 얻는다거나 다수로부터 주목받는다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지만 강약이 적절히 배분된 균형 감각만으로도 이 음반은 충분히 의미가 있으며, 좀 더 의미를 부여하자면 외국의 음악으로부터 흡수한 음악적 자양분을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어 낸 이들의 모습은 한국 인디 밴드들에 하나의 좋은 전형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음반의 발표 이후 남상아와 김상우는 밴드를 떠났고, 이기용만이 남은 허클베리 핀은 멤버가 모두 교체된 채로 여전히 활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바뀐’ 허클베리 핀은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최근에 남상아와 김상우가 소속된 밴드인 3호선 버터플라이의 신보가 발매되면서 이런 궁금증은 더해졌다. 20001212 | 정훈직 seattle1@chollian.net

7/10

수록곡
1. 보도블럭
2. 첫 번째 곡
3. 당당
4. 불을 지르는 아이
5. Huckleberryfin
6. 풀
7. 갈가마귀
8. 사마귀
9. Teacher Says?
10. Work
11. 죽이다

관련 사이트
남상아 팬사이트
http://my.netian.com/0.000000E+00kdongin/main.htm
허클베리 핀과 3호선 버터플라이에 관련된 정보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