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titled57구십구(99) & 옐로 키친 – 99 & 옐로 키친 – 강아지문화/예술, 1997

 

 

미래의 사운드, 미래의 음악 실천

옐로 키친은 최수환과 도순주로 이루어진 혼성 듀오로 1995년경 홍대 앞의 클럽 ‘드럭’에서 연주하는 것으로 음악적 경력을 시작했다. 드럭의 인디 앨범 [Our Nation]의 절반을 채웠으며, 기타를 위주로 몽롱하고 나른한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이후 그들은 직선적인 펑크 사운드가 넘쳐나는 이곳을 떠나 ‘고립적인’ 실험에 몰두해왔다. 99는 삐삐밴드-삐삐 롱스타킹 출신의 박현준과 권병준(고구마), 그리고 음악 활동을 지속하면서 음악평론가로도 알려진 성기완이 한시적으로 결성한 프로젝트 밴드인데, 꽤 오랜 음악 경력을 가진 이들은 여러 밴드를 거치면서 꾸준히 새로운 실험을 계속해 왔다.

이 앨범은 언더그라운드에서 낯선 젊은이들이 만들어낸 음악적 추상화이다. 이들의 음악에서 우리들 귀에 익숙한 목소리, 기타 소리, 드럼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흔한 가요에서 쉽게 지겹도록 들을 수 있는 일상사에 대한 시시콜콜한 묘사도, “우리 시대의 ‘통속적 진리’란 이런 거야”라며 목청 높여 부르짖는 강요나 설교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것은 단지 사운드로 표현되어 있을 뿐이다. 이들은 창고 같은 스튜디오에서 악기와 컴퓨터를 가지고 씨름하면서, 때로는 황량하고 때로는 꿈꾸는 것 같은 ‘초현실적인’ 사운드의 풍경을 다듬어냈다.

20대 초반의 두 명의 젊은이로 이루어진 옐로 키친과 20대 후반의 세 명의 젊은이로 이루어진 99가 반반씩 나눠 만든 이 앨범은 세상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적은 예산만으로 만들어낸 독립제작(인디) 음반이다. 일반 대중가요는 물론 언더그라운드의 여타 흐름과도 거리를 둔 사운드 풍경의 실험을 통해 만들어진 이 낯선 사운드는 독립적인 작업을 통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 전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옐로 키친은 거의 모든 사운드를 컴퓨터로 처리한다. 따라서 샘플링된 컴퓨터 사운드가 전곡을 뒤덮고 있다. 기타 소리도 목소리도 ‘흔적’은 남아있지만 사운드의 기원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전자음과 뒤엉키고 변형되었다. 그러나 컴퓨터 사운드라고 하면 전자 오락실에서 들을 수 있는 가벼운 비인간적 사운드만을 생각하는 우리들의 고정관념을 간단히 뛰어넘는다. 오히려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차원을 뛰어넘는 ‘초현실적, 초인간적’인 사운드라고 해야 할 듯하다.

“Dryards of Otamoth”, “Down on the Yogurt Island” 등 의미를 파악하기 힘든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고요하고 평온한 이들의 사운드는 일상적인 의미의 전달이나 의사소통을 거부하는 ‘비인간적’ 음악이다. 지웠다가 다시 덧씌운 듯한 사운드 처리는 이런 효과를 극대화한다. 소리의 파도는 밀려왔다가 사운드의 파편들을 던져놓고 다시 쓸려간다. 특히 의미를 알 수 없게 웅얼거리는 도순주의 ‘노래’는 천상의 소리나 요정의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 경험을 전해준다. 마치 무중력 상태와 같은 특이한 공간감(ambient)은 청자에게 보다 자유로운 상상의 공간을 제공해준다.

컴퓨터로 작업한 옐로 키친의 음악이 딴 세상 음악 같은 냉정함을 전해준다면, 상대적으로 기존의 음악 형식을 ‘이용한’ 99의 음악은 강렬함을 전해준다. 99의 음악에서는 기타, 베이스, 드럼 등 실제 악기가 연주를 이끌어나가며, 전자 악기를 사용하더라도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 무그 신시사이저를 사용했다. 또한 보다 ‘노래’ 형식과 곡 진행을 갖춘 곡들이 많다. 그러나 이들은 재즈의 즉흥 연주나 블루스 잼의 형식을 빌어온 긴 연주를 선보이면서도, 명쾌한 리프 연주나 테크닉을 뽐내는 솔로 연주를 배제한다. 그 대신에 음색과 속도를 미묘하게 변형시키고 전자적 사운드 이펙트를 가지고 ‘장난’을 친다. 99의 음악은 기존의 사운드와 형식을 뒤틀고 변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앨범은 기존의 가요계의 음반 제작 관행을 따르지 않고 나왔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것이지만, 경제적 의미뿐 아니라 사운드의 음향적 실험이라는 음악적 의미에 더 비중을 두고 싶다. 또한 이 앨범은 1997년경 ‘붐’을 일으켰던 클럽 중심의 언더그라운드에서도 흔치 않은 실험의 산물이다. 그런데 그 실험은 ‘첨단’이지만 비싸지 않게, ‘수공업적’으로 이루어졌다. 이 앨범은 미래의 사운드와 미래의 음악 실천을 제시하고 있는 셈이다. 19980219 | 이정엽 evol21@weppy.com

7/10

수록곡
옐로 키친
1. Dryads Of Otamoth
2. Sure To Rise
3. Down On The Yogurt island
4. Sweet
5. Digger Alice
6. The Crawler Swelled with Cold Smile
7. Nereids of Otamoth

99
8. 아랑후에즈 1악장
9. 토요일밤의 열기
10. 일요일
11. 슬픈게 없어
12. M.B.C(moon.bus.cake)
13. 검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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