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214101615-99구십구(99) – 스케치북 – 강아지문화/예술, 1998

 

 

무심한 일상에서 낯섬 찾기

99는 시인이자, 평론가이자, 뮤지션인 성기완을 중심으로 꾸려진 프로젝트 밴드다. 1997년 말에 옐로 키친과 앨범의 전후반을 나누어 앨범을 발표하였고, 두 번째 앨범 [스케치북]에서는 성기완만이 남아 여성 래퍼 등 다른 멤버들을 규합하였다. 한편, 1기 99를 함께 하던 다른 멤버들(고구마, 박현준, 손경호)은 ‘원더버드’라는 밴드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99의 음악을 처음 듣는 이들은 무척 낯설다고 말한다. 그렇지만 99의 앨범 [스케치북]을 들어보면, 곡조 좋은 가요나 팝송처럼 들리는 곡이 여럿 있다. “99”나 “초대”는 전형적인 록 음악의 구성을 따른 데다가 맛깔스러운 랩이 들어가기까지 했으니, 그야말로 ‘요즘 유행하는’ 스타일의 곡이다. 한편 “사진 속의 여자”는 비틀스를 연상케 하는 부드럽고 친숙한 모던록 선율을 선사한다.

다른 한켠에는 “아흔 아홉 구비”라고 이름 붙여진 세 곡을 비롯하여 흔히 듣던 ‘음악’처럼 들리지 않는 ‘음악’들이 있다. 물론 이 곡들에서도 역시 팝, 록, 랩, 재즈, 블루스 등 음악을 늘 접하던 사람이라면 그리 낯설지 않은 요소들이 등장한다. “아흔 아홉 구비 2″에서는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의 재즈 한 조각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새벽”에서는 귀에 착착 감기는 블루스 혹은 하드 록 리프가 들린다. “Night Train”은 여성 보컬(허클베리 핀의 남상아)이 매력적인 고즈넉한 발라드 곡이다.

그런데 이 음악 소리들은 무언가 알지 못할 힘에 압도되어 우리가 ‘원래’ 듣던 대로 들리지 않는다. 일상에서 채집한 소리와 잡음들이 끼여들어 그 알지 못할 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오래된 영화의 대사, 텔레비전의 혼란스런 소리, 자동응답 음성 안내 소리, 길거리에서 흘러다니는 소리 등등. 99는 이런 시도를 통해 ‘음악’이라는 것에 대한 기존 관념에 도전하고, ‘일상’이라는 것을 다시 정의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먼저, 99는 일상의 소리와 음악이 사실은 같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앨범이 서울과 뉴욕의 거리에서 채집한 걸인의 ‘연주’로 시작되어 끝맺는다는 사실은 그런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99는 자신의 음악이, 그리고 모든 소리가, 거리에서 나와서 떠돌다가 사라질 운명이라고 직감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점에서 99의 음악은 낯설고 실험적이지만, 아방가르드와 같은 ‘거창한’ 단어는 잊어버려도 좋게 만든다.

다른 한편, 어찌 보면 이런 일상의 소리는 음악 이상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이다. 99의 음악이 낯설게 느껴진다면, ‘너무나 친숙해서’ 무감각해진 소리들을 음악과 뒤섞어 놓았기 때문이다. 무감각해진 우리들은 99가 전해주는 구슬프기도 하고, 몽환적이기도 하고, 기괴하기도 한 음악에 당황하게 된다. 어쩌면 99의 음악이 낯선 것이 아니라, 우리 주변을 뒤덮고 있는 소음들이, 아니, 우리의 일상 자체가 소름끼치도록 낯선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은 혹시 무심코 지나쳤던 거리의 소리(소음)들이, 혹은 무심한 일상 자체가, 문득 낯설거나 구슬프거나 공포스럽다고 느껴본 일이 있는가? 99라면 영화 [파리, 텍사스] 중에 나오는 나스타샤 킨스키의 목소리를 빌어 이렇게 말할 것 같다. “Yeah, I know that feeling”. 19990304 | 이정엽 evol21@weppy.com

7/10

수록곡 (* = 추천곡)
1. 1996.8.7 09:30 am 서울 고속터미널 전철역
2. 99
3. 초대 *
4. 사진 속의 여자
5. 아흔아홉구비 1: 딸기치솔과 스케치북
6. 틈
7. 나비의 꿈
8. 클리티에의 노래
9. Night Train *
10. 아흔아홉구비 2: Coltrane vs Dr.Forrest
11. 2월
12. 새벽
13. 성벽
14. 아혼아홉구비 3: 재회 (Torn Inside)
15. 발아
16. 1997.4.24.01:00 pm 뉴욕 41번가 전철역

관련 글
99 & 옐로 키친 [99 & 옐로 키친] 리뷰 – vol.2/no.24 [20001216]
성기완 [나무가 되는 법] 리뷰 – vol.2/no.4 [2000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