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세네갈 출신의 월드뮤직 슈퍼스타 Youssou N’Dour(그쪽 식으로 발음한다면 ‘유쑨두”라고 할 수 있겠다)의 맨해튼 공연은 11월 19일, 일요일 저녁 9시에 시작되었다. 무려 50불이나 하는 거금의 공연이 벌어진 맨해튼 한복판의 Hammerstein Ballroom(체육관 공연을 제외한다면 뉴욕에서 손꼽히는 대형 공연장이다)은 놀랍게도 흑인 청중들로 가득 채워졌다. 실제 몇몇 흑인 청중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확인했지만 이들 대부분은 아프리카, 유럽, 카리브에서 건너온 흑인 이민들이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이 뉴욕 시에서 스몰 비즈니스나 서비스업에 고용되어 일하는 저임금 노동자들이라고 볼 때 이들이 유일하게 쉴 수 있는 일요일 저녁 9시에 공연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해 보였다.) 맥주나 음료수 뿐 아니라 공연장 구석구석에서 다양한 세네갈 ‘토속음식'(물론 미국식으로 순화된 ‘퓨전 푸드’)을 팔고 있었고, 실제로 공연장 안은 술과 음식을 즐기며 음악에 젖어 있는 흑인 청중들로 거의 열정적인 파티 분위기였다. 일반적으로 대중음악 공연장을 찾아오는 백인이나 아프리칸 아메리칸 흑인 관객들이 평상복 차림이라면, 이날 공연을 찾아온 이들 흑인 이민들은 남녀를 막론하고 대부분이 고급스러운 정장이나 첨단 뉴욕 스타일의 옷차림들이었다. 한 친구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이럴 때 아니면 자기들 같은 노동자들이 언제 이런 옷을 입겠느냐고 반문한다. Youssou N’Dour Live 1 Youssou N’Dour Live 2 Youssou N’Dour Live 3 1시간 반 동안의 세네갈 출신 디제이들의 디제이 셋(철저한 아프리칸 팝 댄스 뮤직의 리믹스 메들리)에 맞춰 흥겨운 댄스 파티가 진행되었고, 뒤이어 유쑨두의 무지막지한 마라톤 공연이 10시 반에 시작되어 새벽 2시에야 막을 내렸다. 4-5 옥타브를 넘나드는 아프리칸 챈트(chant) 스타일의 그의 보컬과 수시로 갈아입었던 세네갈 전통의상들, ‘아프리카 만세, 세네갈 만세’의 메시지를 지속적으로 표현하는 가사와 독특한 쇼맨십, 십여 명의 아프리카 전통 타악기 주자들, 흑백이 뒤섞인 기타와 드럼, 건반 주자들이 천여 명의 흑인 이민 청중들과 어울려 벌이는 5시간 여의 광란의 댄스 파티는, 마치 세네갈 민족주의와 아프로센트리즘(Afrocentrism)의 아우라를 맨해튼 한복판에서 고스란히 내뿜는 열정어린 대축제 그 자체였다. ‘진정한’ 월드뮤직은 존재하는가? 미국과 서유럽의 대중음악과 제3세계 혹은 제4세계의 그것과의 무수한 형태의 복합적인 접촉, 교류의 과정은, 복잡다단하고 기나긴 인류의 역사를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사회문화적, 역사적 표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 당연한 것처럼 오랜 기간 진행되어왔던 양자간의 음악적 ‘퓨전’은 1980년대로 접어들면서 ‘월드비트’, ‘월드뮤직’, 혹은 ‘월드퓨전’이라는 거창한 이름 하에 음악산업의 새로운 상품으로 변모하게 된다. 혹자는 종족음악학(ethnomusicology)의 연구대상으로서 ‘이국적 타자(exotic Other: 서양음악과 문화의 범주와 대별되는 낯설고 미개한 존재로서)’화되었던 제3, 혹은 제4세계의 음악이, 사실은 어떠한 형태로든 간에 서구의 그것과 과거의 어는 순간부터 결코 분리된 적이 없었다는 것을, ‘월드뮤직’을 통해 우리는 이제서야 인지할 수 있게 되었다고 떠들며 이 상품을 노골적으로 찬양한다. 그러니 월드뮤직이 그들에게는 탈중심적이고 해체적인 지금의 이 세상을 압축해서 보여주는 ‘세계문화(world culture)’의 아이콘과 같은 존재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월드뮤직’ 혹은 ‘월드비트’라는 상품은, 그 복잡하게 얽힌 오랜 퓨전의 과정에도 불구하고 그 명명이 이루어진 시기 이후부터 더욱 노골적으로, 마치 낯선 세계의 사람들과 그들만이 지닌 문화적 ‘진정성(authenticity)’ 혹은 ‘순수성(purity)’을 고이 간직한 ‘문화적 정수’인양 포장되어 미국과 서유럽의 백인 중산층에게 어필해왔다. 민족적, 국가적, 혹은 종족적으로 경계지워진 문화적 진정성과 순수성이 존재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인가에 대해서는 여기서 길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다만, 초기 월드비트 사운드의 명반 중 하나인 Talking Heads의 [Remain in Light]에서 명백하게 차용했던 나이지리아 아프로비트(Fela Kuti의 바로 그것)가 James Brown 스타일의 미국 소울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음악이고 브라운의 사운드는 역으로 분명히 아프리카의 그것에 음악적 뿌리를 두고 있었다는 사례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월드뮤직의 음악적, 문화적 뿌리의 복합적 성격을 가늠할 수 있을 것이며, 따라서 문화적 진정성과 순수성에 기댄 이국적 취향이 사실은 말짱 허구적으로 구성된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왜 ‘월드비트(World Beat)’였을까? 1982년, Dan Del Santo의 앨범 [World Beat]가 세상에 나온 이후 1990년대 중반까지 월드뮤직이라는 단어보다는 월드비트라는 단어가 이러한 종류의 음악들을 일반적으로 총칭하는 용어로 쓰여왔다는 것은, 이러한 영미권 음악과 제3세계 음악의 퓨전이 전자에 의한 후자의 종속적이고 불평등한 결합이었음을 노골적으로 상징한다. 즉, 후자의 음악적 내용은 영미권 팝 음악의 주된 멜로디를 뒤에서 따라가는 ‘비트’일 뿐이며, 동시에 뮤지션간의 관계에서도 이들 아프리카와 중남미, 중동 출신 비트 전문가들은 영국과 미국 뮤지션들의 뒤를 지키는 백업 뮤지션 혹은 백 밴드일 뿐임을 월드비트라는 단어는 압축해왔다. 월드뮤직 전문 레이블에 대한 다국적 메이저 음반기업의 통제(생산과 배급의 측면에서)는 말할 것도 없고, Peter Gabriel이나 Paul Simon의 초기 월드비트 사운드에서부터 가장 최근의 Frederic Galiano나 dZihan & Kamien의 ‘월드퓨전’ 일렉트로닉 비트 실험(가령 전자는 아프리칸 퓨전, 후자는 중동식 전자음악)에 이르기까지 서구 뮤지션들이 주도해온 그 무수한 종류의 음악적 퓨전은 음악적 내용이나 뮤지션십, 음악의 제작과정까지 모든 측면에서 제3세계와의 불평등관계를 내포해왔다. (물론 이들과 함께 작업해온 제3세계 출신 뮤지션들 모두가 자본가와 그들의 앞잡이 노릇을 하는 서구 뮤지션들로부터 일방적으로 착취만 당하는 빈민들이라고 상상하는 것 또한 금물이다. 가령, [Graceland]에서의 Paul Simon과의 협업, 이어지는 전세계 투어와 SNL(Saturday Night Live) 출연으로, 1980년대 월드뮤직의 대표적 스타로 떠올랐던 Ladysmith Black Mambazo가 이미 이 앨범이 나오기 이전부터 남아프리카의 몇 안 되는 부유한 흑인 뮤지션들 중의 하나였고, 또한 그 심각하디 심각한 1980년대 초, 중반의 남아프리카 상황에서 아파르트헤이트에 전혀 무관심한 채 노골적으로 백인 대중을 타깃으로 한 음악을 해 왔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물론 그것을 알면서도 그들과 함께, 이전에 Harry Belafonte나 Miriam Makeba 같은 이들이 쭉 해왔던 것과 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포크의 가면 하에) 월드비트 작업을 진행했었던 Paul Simon의 상업적 혐의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이제 월드뮤직의 주체는 누구인가?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서구뮤지션들이 주도해온 이러한 월드뮤직의 한 축과는 별도로, 1990년대 이후 아프리카나 중남미, 중동, 혹은 미국이나 서유럽 내의 마이너리티 출신의 뮤지션들이 직접적인 음악적 실천의 주체로서 월드뮤직의 또 다른 축을 주도하고 확장해 왔다는 것에 더욱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너무도 많은 뮤지션들이 ‘월드뮤직’이라는 명함을 달고 음반시장에 쏟아져 나오고 있기에 특정한 누구를 여기서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 [weiv]의 독자들 중 월드뮤직에 관심 있는 이들은 신현준의 지속적인 글을 통해 이미 많은 스타급 월드뮤직 뮤지션의 이름과 음악들을 만나보았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 음악의 복잡한 뿌리(사회문화 전반에 걸친 식민지적 상황과 뒤이은 후기 식민지적 상황, 그리고 곁들여진 지속적인 서구 문화제국주의의 침투에 영향을 받은)를 보면서, 문화적 진정성이니 순수성이니 하는 것에 기댄 이국적 취향이 얼마나 허구적으로 서구에서 구성되었었는지도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들 뮤지션 중에는 1980년대 월드비트의 붐 속에 서구 백인 뮤지션들과의 협업으로 이름을 음반시장에 알린 후 그 후광을 업고 재차 독자적으로 월드뮤직 시장에 진출한 고참들도 있다. Salif Keita, Ofra Haza, Manu Dibango, Cheb Khaled, Mori Kante 같은 뮤지션들이 그렇다. 그리고 사실 이 글의 원래 주인공이어야 했던 세네갈 출신 뮤지션, 유쑨두도 마찬가지의 경우다.) 하여튼 고참이든 신참이든 간에 분명한 건, 이들 제 3세계 출신 월드뮤직 스타 뮤지션들이 단순히 ‘월드뮤직’이라는 한 단어로 무리하게 그들의 색깔을 규정하기에는 너무도 다양한 음악적, 사회문화적 뿌리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그 다양성을 간과한 채) 그들의 음악을 서구사회에서 ‘월드뮤직’이라는 단어로 한꺼번에 엮고자 하는 의도의 배후에는 명백한 서구중심적 사고(자신들은 얼마나 많은 이름들로 자신들의 음악을 분류하고 세분해 왔는가)와 인종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숨어있음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월드뮤직과 다이아스포라(diaspora) 사실 음반시장 내에서 제 3세계 출신 월드뮤직 뮤지션들이 상대적으로 최근에 부각된 것은(물론 월드뮤직을 추구해온 기존의 미국이나 서유럽의 뮤지션들에 비하여), 왠지 그냥 넘어가기에는 예사롭지 않은 중요한 뭔가를 내포한 듯하다. 항상 그러했지만, 서구대중문화(여기서는 대중음악)가 비서구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서 ‘문화제국주의’라는 표제 하에 많은 얘기들이 과거에 오고 갔었다. 그리고 역으로, 1980년대 이후 서구사회에서 월드뮤직의 급부상은, ‘비서구의 토속음악’으로 포장된 월드뮤직이라는 상품이 서구사회의 청중들과 관계를 맺어오는 방식에 대한 논의를 새롭게 부각시켰다. 이런 이야기들의 대부분은 왜 미국과 서유럽의 백인 청중들이 그런 음악을 듣는가에 대한 것이었고, 따라서 문화적 진정성과 순수성으로 포장된 이국적 정서에 매혹된 백인 여피들이 월드뮤직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모습은 이전의 ‘문화제국주의’에 바탕한 논의에 진부해진 이들에게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하기에 충분하였다. 하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이러한 ‘월드뮤직’이 미국과 서유럽에 살고 있는 ‘백인 이외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의미로 받아들여질지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것 같다. (이 당연스러운 배제의 바탕에도 역시, ‘미국과 서유럽 = 단지 백인의 사회’라는 서구중심적, 인종주의적 공식이 깔려 있다.) 분명 이들 사회의 대부분이 엄청나게 쏟아져 들어오는 제3세계 출신의 이민자들과 그들의 2세대, 3세대, 그리고 기존의 마이너리티 집단들(가령 미국 내의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나 아메리칸 인디언처럼)로 급격히 ‘회색깔’로 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더욱이 월드뮤직 시장에서 간판으로 내세우는 음악적 주체(즉 뮤지션들)가 더 이상 폴 사이먼이나 스팅과 같은 서구 뮤지션들이 아니고, Gilberto Gil이나 Femi Kuti 같은 제3세계 출신들이라고 한다면 상황은 더욱 분명해진다. 사실 월드뮤직이라는 명함을 들고 미국과 서유럽을 제 집처럼 넘나드는 제 3세계 출신 뮤지션들이 급증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과거의 월드뮤직 소비에 대한 논의처럼) 단순히 백인 여피들의 이국적 기호를 만족하기 위한 상품화의 요구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이제는 무리가 따르는 것같다. 그러기엔 유색 인구가 이들 사회에 너무도 많고(물론 그만큼 그들이 지닌 사회문화적, 정치경제적 의미 또한 막대해졌다), 동시에 그들과 같은 인종적, 민족적, 종족적 뿌리를 지닌 뮤지션들의 음반과 투어도 너무 많아졌다. 뒤늦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지난 여름 센트럴 파크에서 있었던 ‘서머스테이지(SummerStage)’ 공연은 필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주었었다. Frederic Galiano, Les Nubians, Amadou & Mariam 등 아프리카 출신 혹은 그 쪽에 뿌리를 둔 유럽 출신 흑인 뮤지션들(물론 Galiano는 프랑스 백인이지만 그와 함께 무대에 오른 뮤지션들은 역시 흑인들이었다)의 공연에 찾아온 청중의 반 이상이 흑인들(그것도 아프리칸 아메리칸 흑인들이 아닌 아프리카, 중남미, 카리브, 유럽 출신의 흑인 이민들)임을 목격하면서, 월드뮤직과 백인 여피들의 소비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는 공식이 이제는 얼마나 단순하고 구태의연한 것인가를 깨닫게 된 것이다. 물론 ([weiv]가 학술잡지는 아니므로) 여기서 ‘지구화(globalization)’니 ‘트랜스내셔널리즘(transnationalism)’이니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니 ‘다이아스포라(diaspora)’니 하는, 현재의 변화된 미국과 서유럽의 사회적 상황과 문화를 설명해 온 최근의 학술적 논의의 맥락들을 직접적으로 언급할 생각은 없다. 분명한 건, 이러한 제 3세계 출신 뮤지션들의 최근의 급격한 성장과 서구 사회의 유색인구집단들의 자기세력화 간에는, 다시 말해 ‘월드뮤직’과 ‘다이아스포라’ 간에는, 너무도 밀접한 상호작용과 불가분의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실 ‘서머스테이지’ 공연이 공짜 야외공연인지라 확신을 못하던 차에 그 이후에 찾아간 아프리카와 중남미, 중동 출신 ‘월드뮤직’ 뮤지션들의 유료(?) 공연들은 어느 정도 그러한 관계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었다. 특히 앞서 서술한 세네갈 출신의 월드뮤직 슈퍼스타, 요쑨두의 최근 공연은 더욱 그러했다. 이제 제3세계 출신 월드뮤직 뮤지션들의 상당수가 (요쑨두처럼) 자신의 과거의 족적(?)과 상관없이 민족주의나 그러한 경계를 넘어서는 ‘범인종주의'(가령 범아프리카주의(Pan-Africanism)나 범아랍주의(Pan-Arabism)처럼)를 음악적으로, 혹은 여타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차용하고 있다. 그리고 이들 대부분은 이제 백인 청중들보다는, 자신들의 다이아스포라 인구집단을 그 타깃으로 한다. 한편으로 이들 월드뮤직 뮤지션의 음반과 공연을 통해 다이아스포라의 성원들은 자신들의 원천적 장소(물론 마을, 지방, 나라, 민족 혹은 대륙 중 어느 것이든 그들의 근원적 대상으로 선택가능할 것이다)에 대한 노스탤지어(그것이 실제 자신의 고향에 대한 기억이든 상상 속의 그것이든 간에)를 공유하게 되고, 실제적 추억 혹은 상상적 기억을 통해 그 곳에 대한 영원한 연결 (혹은 결속)을 도모한다. 따라서 이러한 문화적 소비를 통한 자신의 원천적 장소에 대한 원거리에서의 대리적 체험은, 자신들의 현재의 열악한 처지에 반비례하여 거대한 만족(혹은 자족)으로 전환되고, 나아가 이러한 다이아스포라적 삶이 결코 단절되고 낯선 사회 속에서의 이방인적인 것만은 아님을 주입하고 이국에서의 삶에 지속적인 희망(혹은 욕망)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비싼 공연 티켓과 시디들을 구입하는 이들 흑인 이민들이, 미국 내에서의 경제적, 사회적인 열등한 위치와 인종적 불평등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모국에 남아있는 이들보다는 상대적으로 우월한 계급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식의 불편한 의심은 여기서는 하지 말자.) 월드뮤직과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그렇다면 (좀 더 비판적으로 까놓고 얘기해서) 미국과 서유럽에서 월드뮤직은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 이데올로기의 첨병 구실을 하는 대표적인 문화적 아이템 (혹은 상품)이라는 혐의를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다문화주의(특히 신자유주의적 다문화주의(neo-liberal multiculturalism)와 기업형 다문화주의(corporate multiculturalism))가 미국사회 내의 본질적인 인종적, 계급적 ‘불평등’ 관계에 대한 언급은 회피한 채, 유색인종들의 음악을 비롯한 다양한 예술적 아이템들의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단지 다양한 유색 인구집단들의 문화적 ‘차이’만을 ‘축복’함으로써 기존의 불평등관계를 유지하고 재생산하는 새로운 미국 주류사회의 지배적 담론이라고 할 때, 월드뮤직은 너무나도 분명한 다문화주의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월드뮤직을 통한 다이아스포라 유색인구집단의 음악적 실천과 소비는, 다문화주의라는 이데올로기를 그 속에 숨긴 채, 교묘하게 세력을 확장하고 있는 글로벌 자본주의(이제는 제 3세계의 소비자들을 넘어서 미국과 서유럽에 거주하는 제3세계 출신 이민자 집단들을 타깃으로 하는) 상품의 소비 이상의 의미는 획득하지 못할 위험을 내포하게 된다. ‘월드’뮤직 혹은 월드’뮤직’ 다국적 음반산업의 거대한 생산과 배급의 틀(특히 그들이 월드뮤직을 마케팅하고 군소 월드뮤직 전문 레이블들을 엮어대는 방식과 관련하여), 복잡한 역사적 뿌리를 지닌 채 지속적으로 변모하고 있는 월드뮤직이라는 퓨전음악 텍스트(특히 점점 더 많이 발굴(?)되고 있는 ‘토착’음악들, 점점 더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서구음악과의 퓨전들, 혹은 독자적인 제3세계 출신 월드뮤직 뮤지션들의 성장과 관련하여), 그리고 이를 소비하는 다양한 서구사회의 인구집단들(특히 백인 여피 뿐 아니라 다이아스포라 인구집단들이 이를 소비하고 자신들만의 의미로 이용하는 방식과 실천들과 관련하여)의 뒤얽힌 관계는, 월드뮤직이라는 상품의 급격한 확장과정이 실로 단박에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지형 속에 있음을 보여준다. 단순한 문화제국주의 논의(백인 뮤지션들이나 다국적 음반기업이 제3세계 뮤지션과 음악들을 이용, 착취하는 방식에만 단지 초점을 맞추는)나 역시 획일화된 소비집단에 대한 논의(백인만이 월드뮤직의 소비자라는 식의 가정에 바탕한)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재의 월드뮤직 시장(특히 다문화주의 이데올로기라는 무기를 휘두르며, 다이아스포라 집단을 주된 타깃으로 설정하고 있는)의 확장과정을 꼼꼼히 지켜보는 것은 앞으로의 대중음악, 나아가 문화 전반의 새로운 변화들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에서도 이미 ‘월드뮤직’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음악들이 소개되고 있고 그 소비층도 차츰 늘어가고 있는 상황인지라, 그 이름 하에 꿈틀거리며 변하고 있는 문화적 지형에 대한 논의들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만은 아닐 것임을 덧붙이고 싶다. 20001127 | 양재영 coct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