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J Harvey – Stories from the City, Stories from the Sea – Universal/Island, 2000 광기의 샤머니즘은 어디로 포크와 블루스, 그런지 혹은 포스트 펑크, 마침내는 포스트 록까지 시대적 조류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 타자화된 여성에 대한 노출증적 집착으로 자신만의 기이하고 강렬한 아우라를 만들어온 피제이 하비의 신세기 첫 앨범이 나왔다. 그런데 팬의 입장에서 듣는 기분이 다소 당혹스럽다. ‘하비 디스코그래피 사상 최고의 역작’이라는 식의 NME의 환호에도 불구하고 범작의 수준에 못 미친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반대로 ‘실패로 끝난 실험’이란 식의 혹평을 면치 못한 전작 [Is This Desire]의 얌전한 테크노 그루브를 꽤나 즐겼던 사람에겐 당연한 일일까? 그런 의미에서 첫 트랙 “Big Exit”는 제목만큼이나 의미심장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노이즈없이 건반처럼 울리는 기타 사운드의 공명위로 실리는 하비의 보컬은 ‘선전포고적’인 울림을 가지고 있지만 이전의 ‘연극적으로 과잉된 분노’와는 거리가 멀다. 동일한 기타톤과 동일한 보컬이 세 번째 트랙인 “A Place Called Home”까지 계속되면 속삭이는 듯한 “One Line”과, 톰 요크(Thom York)의 귀기어린 백 보컬이 어렴풋한 “Beautiful Feeling”으로 침잠한다. 단말마적인 비명으로 소절 끝을 장식하는 하비 특유의 신들린 창법이 그런지하고 다이나믹한 록 사운드와 함께 울려 퍼지는 “The Whores Hustle And The Hustlers Whore”나 “Kamikaze”에 가서야 ‘그간 알고있는 과거 정서’로 조금 고조되는 정도다. 전위와 감성, 양 극단을 효과있게 오가던 하비 특유의 바이올린이나 첼로도 없고 기이하게 폭발하는 내적 분열도 쉽게 발견되지 않는다. 단조롭고 조용한 기타의 드론 위로 무기력하지만 영적으로 충만한 톰 요크의 보컬이 하비의 숙연한 음색으로 위안받는 “The Mess We’re In”은 이 앨범에서 가장 아름다운 곡이다. 그 외에 존 레넌의 “Love”를 생각하게 하는 피아노 인트로와 신음하는 듯 질질 끌려 다니는 하비의 보컬이 아름다운 “Horeses In My Dreams”를 제외하면 나머지 곡들은 평이하게 들린다. [Is This Desire]의 얌전하지만 실험적인 일렉트로니카 사운드가 ‘외도’였다면 이 앨범은 [To Bring You My Love] 이전 시절로의 소급이다. 그 시절보다 ‘정제’되어 ‘정상적(?)’으로 들리는 게 유일한 공통점이랄까? 그러나 “이것이 가령 [Dry](데뷔 앨범)의 후속이었다면, 혹은 음질의 표면위로 샌드페이퍼를 힘껏 문지르지 않으면 성이 풀리지 않는 듯한 스티브 알비니(프로듀서)없이 매끄럽게 뽑아낸 [Rid of Me]라면”이란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반가움’이 아닌 ‘결핍감’에서 온 것이다. 톰 요크의 솔로 곡이라고 해도 무방할 “The Mess We’re In”가 가장 좋다는 건 그래서 아이러니다. 혹시 변모한 하비의 ‘가사쓰기’ 때문에 이렇게 평이해진 걸까? [Dry]때부터 확립한 남성 지배체제에 대한 굴욕적인 순응을 불사하는 여성에 대한 거울 비추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광기어린 집착과 왜곡을 샤머니즘적인 차원까지 밀고 나갔던 뒤틀린 페르소나는 더 이상 하비의 업이 아니다. 생득적 딜레마로 자신을 노예화하는 이브, 성도구화된 정체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되 폭력적 광기로 사랑의 방식을 선택하는 미친 스토커, 남성 전이를 목표로 하는 트랜스 젠더(“Man-sized”)대신 그녀가 선택한 새로운 여성성은 ‘보니(Bonnie and Clyde)’, 즉 ‘사랑의 여전사’다. 더 이상 남성은 여성을 갈등하게 하는 요소가 아니다. ‘폭압적 세상에 대해 함께 총구를 겨누는 연인’으로 화해한 남성은 이제 동등하게 세상으로부터 소외된 피해자(“The Whores Hustle And The Hustlers Whore”)다. 그 외로운 동맹은, 둘을 진창에 쳐 박혀 있게 하는 세상(“The Mess We’re In”)에 대한 분노나 절망에 대한 유일한 해결이다. 일종의 ‘자기로부터의 탈출’? 그러나 이것 때문에 때로는 음습한 절망으로, 때로는 작위적인 광기로, 때로는 명쾌하고 다이나믹한 자기선언으로 드러났던 그녀만의 음악적 카리스마가 묽어진 것이라면 그 굴레를 다시 씌워주고 싶은 생각마저 든다. 피제이 하비의 미덕을 ‘캠프’와 ‘노출증’으로 굴절시킨 ‘절망’에 대한 내밀한 쾌락으로만 제한하려는 부분적 수구주의의 정도가 너무 지나친 걸까? 그러나 나는 이 아티스트에 대한 기대치를 정말로 높게 두고 있다. 이 정도만으로 피제이 하비를 ‘호평’할 수는 없다. 20001127 | 최세희 nutshelter@hotmail.com 7/10 수록곡 1. Bit Exit 2. Good Fortune 3. A Place Called Home 4. One Line 5. Beautiful Feeling 6. The Whores Hustle and the Hustlers Whore 7. This Mess We’re in 8. You Said Something 9. Kamikaze 10. This is Love 11. Horses In My Dream 12. We Float 관련 사이트 피제이 하비 팬사이트 http://moment1.com/pj/mainflsh.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