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130093101-davidDavid Gray – White Ladder – IHT, 1999 (국내발매는 워너뮤직코리아, 2000)

 

 

싱어 송라이터의 전통, 포크의 미래를 만나다

올 한해, 영국 음악계를 흔들었던 아티스트들의 면면을 보면 오아시스나 블러 같은 슈퍼밴드의 이름보다는 낯선 이름들이 많이 등장한다(물론, 라디오헤드가 있지만). 콜드플레이(Coldplay), 도브스(Doves) 등 모던 록 밴드에 배들리 드론 보이(Badly Drawn Boy)와 데이빗 그레이(David Gray) 같은 포크 계열의 싱어 송라이터까지 ‘물갈이’라고 할 만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형태이다. 이를 새로운 영국 음악의 경향으로 분석하든, 묻혀있던 아티스트들이 한꺼번에 주목받은 우연의 일치로 보든 간에 10,000 마일 떨어진 나라의 한 음악팬으로서는 그저 행복할 뿐이다.

하지만 도브스, 배들리 드론 보이, 콜드플레이와 달리 데이빗 그레이는 신인이 아니다. 1993년 데뷔 앨범 [A Century Ends], 1994년 2집 [Flesh], 1996년 3집 [Sell, Sell, Sell]까지 꾸준한 그의 활동은 한번도 빛을 본 적이 없다. 허나, 그런 아티스트가 불현듯 4집 [White Ladder]에서 주목을 받았다고 해서 그의 성공이 근거없는 건 아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세련되어진 건 사실이지만, 특유의 섬세한 보컬과 어쿠스틱 기타를 중심으로 엮어가는 심플한 연주, 듣는 이로 하여금 아련함과 상쾌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특유의 송라이팅은 한번도 변한 적이 없었다. 이제야 진가를 알아보는 시장의 반응이 뜬금없을 뿐이다.

그러고보면 그의 음악은 벨 앤 세바스찬(Belle & Sebastian), 베스 오튼(Beth Orton) 등에 의해 주목받으며 영국 음악의 한 흐름이 된 ‘새로운 포크’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70년대 영국 포크 록의 전통에 보다 가까우면서도 아일랜드 셀틱의 아련한 정서와(맨체스터 출신임에도) 챔버 팝의 아기자기함을 접목해 다양한 감상이 가능한 음악적 여백을 살려내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의 경험을 넘어서는 느낌이다. 특히, 첫 곡 “Please Forgive Me”의 세련되고 꽉찬 연주의 대중적인 느낌과 마지막 곡 “Say Hello Wave Goodbye”의 쓸쓸히 비어있는 순도 높은 포크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조화는 싱어 송라이터의 전통과 포크의 미래가 만나는 새로운 음악적 경험을 던져준다.

최근 들어, 벨 앤 세바스찬 같은 밴드가 자신의 스타일에 묶여 지쳐 보일 때, 단번에 들어오거나 강하지는 않지만 진솔한 목소리로 새로운 음악을 들려주고 있는 데이빗 그레이나 배들리 드론 보이는 느닷없는 주목을 넘어 영국 음악계(포크 팝)의 주인공이 될 만한 충분한 자격을 보여준다. 그런 의미에서 이 앨범을 ‘2000년 과소평가 받은 앨범’ 중 하나로 적극 추천하고 싶다. 자기 취향이 아니더라도 듣는 이를 기어이 만족시킬 수 있는 음악적 깊이와 보편적인 감수성을 고르게 갖추고 있다는 장점 때문이다. 20001128 | 박정용 jypark@email.lycos.co.kr

7/10

수록곡
1. Please Forgive Me
2. Babylon
3. My Oh My
4. We’re Not Right
5. Nightblindness
6. Silver Lining
7. White Ladder
8. This Years Love
9. Sail Away
10. Say Hello Wave Goodbye

관련 글
Badly Drawn Boy [The Hour of Bewilderbeast] 리뷰 – vol.2/no.20 [20001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