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밴드 – 불가능한 작전 – 송스튜디오/DMR, 1996 삐삐밴드의 ‘록’ 씹는 방법 1996년 여름. 김건모의 “스피드”, 클론의 “쿵따리 샤바라”, 신승훈의 “나보다 조금 더 높은 곳에 니가 있을 뿐”이 한반도를 휩쓸고 있었다. 7월 1일, 삐삐밴드는 서울 홍대앞 카페 ‘황금투구’에서 2집 [불가능한 작전] 발표회를 열었다. ‘The Art of ‘가요'(예술+가요)’란 야심찬 제목으로 열린 이 발표회는 일반적인 음반 발표회와 달리 설치미술, 영상, 만화, 무용을 끌어들여 대중 예술과 순수 예술의 경계를 지운다는 의도로 꾸며진 기획이었다. 이에 ‘그렇담 이번엔 예술적인 록 음악?’이란 예상을 한 사람들은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 삐삐밴드가 들고 나온 음악은 댄스 음악이었으니까. [불가능한 작전]이 대중들에게 선보인 것은 TV 프로그램이었다. “유쾌한씨의 껌 씹는 방법”을 들고 나온 삐삐밴드의 모습은 데뷔 때보다 더 충격적이었다. “안녕하세요”의 2탄쯤을 예상하던 사람들을 마치 비웃기라도 하는 것처럼, 그 곡은 훵키한 댄스 음악이었다. TV에 나오는 록 밴드들을 패러디라도 하듯, ‘뻔뻔스럽게도’ 박현준과 강기영은 악기를 폼으로 들고 나와 연주하는 ‘척’했고 이윤정은 몸을 흔들면서 ‘립싱크'(게다가 다 표나게) 했다. 이 음반의 키워드는 댄스 음악, 저급함, 안티록 등이다. 1집에서 맛뵈기로 보여준 바 있던 가벼움의 전략은 저급함의 감초, 댄스 음악을 적극 차용하는 전술로 전면화된다. 딱히 어느 한 곡을 집을 필요 없이 이 음반은 각종 일렉트로닉 댄스 리듬, 샘플링, 신서사이저 음들로 가득하다(어쿠스틱 기타 반주에 이윤정이 유아적으로 옹알거리는 ‘깨는’ 첫 곡 “intro 슈풍크”만이 예외이다). 디스코, 뉴 웨이브, 테크노, 하우스, 훵크, 재즈에 이르기까지 여러 요소들이 들썩거린다. 드럼 머신으로 만들어낸 기계적인 비트들이 실제 드럼을 대체하는 가운데, 각종 댄스 리듬과 샘플링이 1집의 말쑥한 록큰롤의 흔적을 지워버리고 있다.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이라고 해서 다 비슷비슷한 것은 아니다. “유쾌한씨의 껌 씹는 방법”은 박수라도 치면서 엉덩이와 허리를 빠르게 흔들어대고 싶을 정도로 타이트한 느낌을 주는 훵키한 곡이고,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는 머리가 두 배는 커보일 듯한 곱슬머리 가발을 쓰고 박진영 춤이라도 추고 싶게 하는 디스코 곡이며, 유로 댄스 계열의 “설탕”은 가볍게 몸을 움직이면서 잡념을 지워나갈 만한 몽환적인 곡이고, “S.O.S.”는 ‘나이트’ 플로어에서 정신없이 흔들어대면 딱 좋을 하우스 리듬의 곡이다. C+C 뮤직 팩토리(C+C Music Factory)를 연상시킨다는 평을 들은 “나쁜 영화”는 여러모로 이 음반의 양상을 집약하는 트랙이다. 예의 댄스 리듬이 곡을 주도하고 있고, 첩보 영화 샘플링을 삽입하고 있으며, 멜로디는 부차적인 요소로 격하된다. 가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인데, 대체로 서사 구조가 흐트러지는 음반의 경향처럼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이 쓴 가사는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특히 신세대의 정서를 일부분 드러내는 듯한 “이름은? 이윤정. 직업은? 가수. 좋아하는 음식은? 껌. 싫어하는 사람은? 아저씨.”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는? 누가 누굴까. 그 영화가 좋은 이유는? 재밌으니까. 싫었던 영화는? 나쁜 영화”로 이뤄진 질문/대답 부분은 흥미롭다(피치카토 파이브(Pizzicato Five)가 써먹기도 한 형식이다). [불가능한 작전]은 한편으론 하우스니 레이브니 정글이니 하는 새로운 리듬을 썼다면서 실제로는 적당히 가요 멜로디에 랩을 병렬하는 데 불과한 주류 댄스 가요 씬에 대해 차분히 반론을 제시한 것이었으며, 다른 한편으론 록에 대해서는 받들어 모시면서 댄스 음악에 대해서는 경멸해 마지않던 록 공동체의 오랜 편견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이 음반에서 삐삐밴드는 자신들의 의도를 좀더 뚜렷하게 드러냈다. 신비화된 록의 가면을 벗기는 것, 상업적인 쓰레기 취급받던 댄스 음악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것, 논란을 야기함으로써 기성의 이데올로기를 뒤집는 것, 펑크가 사운드나 장르만이 아니라는 것. 미국 영화 [미션 임파서블]에서 따온 음반 제목인 ‘불가능한 작전’ 또한 한 마디 하거나 ‘씹기 딱 좋은’ 것이었다. 역설이 아니라, [문화혁명]의 ‘시건방진’ 제목에서 후퇴한 것도 아니다. 1집의 펑크는 부정되면서 동시에 부정되지 않고 이렇게 이어졌다. 20001128 | 이용우 djpink@hanmail.net 8/10 수록곡 1. intro 슈풍크 2. 나쁜 영화 3. 왜냐하면 4. 유쾌한씨의 껌 씹는 방법 5. 설탕 6. 나의 이야기 7. 생일 8. S.O.S. 9.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 10. 1996.06.12 PM 01:12′:15” 관련 사이트 이윤정 홈페이지 http://blue.netpark.co.kr/~cyren 이윤정 및 삐삐 프로젝트의 뉴스, 오디오, 비디오, 사진 자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