델리 스파이스 – Deli Spice – 뮤직디자인, 1997 소외된 세대의 감성적인 청춘 송가 델리 스파이스는 크라잉 너트, 언니네 이발관과 더불어 인디(적 성향을 지닌) 뮤지션 중 대중적으로 이름을 알린 몇 안되는 밴드이다. 컴퓨터 통신을 통한 인연으로 결성, 홍대 앞 클럽 공연을 통해 한국의 대표적인 모던 록 밴드로 자리잡은 이들은 첫 앨범 [Deli Spice]에서 부담없는 팝적 선율은 물론 중량감 있는 기타 사운드와 유연한 리듬을 선보였다. 이들에게서 가장 먼저 느껴지는 특징 중 하나는 귀에 착착 감기고 따라 부르기 쉬운 멜로디와 흥겨운 그루브이다. “가면”과 “저승탐방기”의 보컬 선율은 쉽게 접할 수 있는 코드 위에 아기자기한 도약과 반복, 그리고 명료하면서도 재기발랄한 리듬으로 친근함을 전해준다. 반면 “귀향”과 “사수자리”의 보컬은 나직하게 읊조리다가 서서히 고조되는 구성을 취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흥미로움을 잃지 않는다. 이들의 대표곡인 “챠우챠우”는 같은 프레이즈가 반복되어 극적 구성이나 흥미로운 전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루하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이러한 음악적 색깔을 결정하는 것은 아기자기하고 꼼꼼한 기타 스트로크와, 유연하면서도 긴장감을 늦추지 않는 베이스의 운용이다. 특히 매 곡마다 기타 톤이 섬세하게 변화한다. “노 캐리어”에서는 와와 페달을 사용하여 출렁거리는 공간감을 조성하며, “가면”에서는 명징한 선율 라인을 소박하게 스트로킹한다. “귀향”은 그루브한 베이스와 드럼 및 신서사이저의 소리 사이를 기타의 아르페지오 음형으로 채워주며, “사수자리”는 U2의 기타를 연상시키는 딜레이를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부유하는 분위기를 표현한다. 이처럼 경쾌함과 서정성이 델리 스파이스의 음악적 특징이지만, 세대(혹은 개인)적인 고민과 상념을 가사 속에서 들여다볼 수 있다. 그리고 이 둘은 종종 충돌하기도 한다. “너의 요란하지만 어설픈 가면”을 벗겨줄 수도 있다는 냉소적인 메시지의 “가면”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예쁜 기타 멜로디를 갖고 있으며, “챠우챠우”는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모든 것을 노래했다는 애초의 의도와는 달리 ‘연가(戀歌)’처럼 들린다. 이러한 ‘역설’이 그들의 음악을 신선하게 만드는 하나의 요인인 것만은 분명하다. 인디 레이블에서 발매되지는 않았지만 클럽 공연을 통해 인디 씬에 알려진 델리 스파이스의 데뷔 앨범은 당시 클럽가의 지배적인 음악과는 달리, 서정성과 경쾌함을 특징으로 하는 음악적 경향을 보여주었다. 이들의 소박함은 때론 미덕으로 작용하기도 하고 때론 단점으로 부각되기도 한다. 세상과 교통하기 어려운 현실에 대담하게 맞서기보다 스스로 금을 긋고 그 주변에서 서성거리는 듯한 느낌이지만, 여기에는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는 묘한 흡인력이 있다. 단, 친화력 있는 사운드임에도 불구하고 전체를 하나로 모아주는 구심점이 부족한 듯하고, 후반부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20000331 | 최지선 fust@nownuri.net 8/10 수록곡 1. 노 캐리어 2. 가면 3. 챠우챠우-아무리애를쓰고막아보려고해도너의목소리가들려 4. 콘 후레이크 5. 기쁨이 들리지 않는 거리 6. 저승탐방기 7. 귀향 8. 누가? 9. 투명인간 10. 오랜만의 외출 11. 사수자리 관련 글 언니네 이발관 [비둘기는 하늘의 쥐] 리뷰 – vol.2/no.22 [2000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