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난을 가장 큰 원인으로 폐점해 버리는 홍대 주변의 클럽들이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다. 한국 펑크 록의 메카인 클럽 ‘드럭’이 생존권을 위협받을 정도의 재정난 때문에 폐점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드럭 측근에게서 들은 것이 지난 여름이다. 건물 재개발 문제로 홍대 앞 모던 록의 메카로 군림(?)했던 클럽 ‘스팽글’이 간판을 내렸을 때 ‘인디 모던 록의 몰락’이라는 비관론(이기만을 바란다)을 보이던 클러버 친구들도 기억난다. ‘채송화’를 헤드라이너로 하는 슬로코어(slow-core) 밴드들이 넷씩이나 나오는데 음료수까지 합쳐 4,000원의 입장료만을 받던 클럽 ‘라이브’도 문을 닫은 지 한 달이 조금 넘었다(참고로 필자가 갔던 그 날의 관객 수는 참여한 밴드 멤버들보다도 적었다).

한국 인디 음악 문화는 ‘거품’에 지나지 않았다고, 그 원인은 무엇보다 인디 문화의 자생성의 부족과 다양한 음악 채널의 부재라는 식으로, 인디 씬에 화살을 돌린 몇몇 문화 평론가들의 이름도 떠오른다. 과연? ‘저예산 독립’이라는 수식어의 처절한 진상(眞想)을 처음부터 각오하고 자족적인 유희 하나에 기대 음악을 시작한 수많은 ‘인디 밴드들’의 주변에 뛰어 들어, 성급하게 그들을 성찬하고, 그들이 의도하지도 않고 관심도 갖지 않았던 ‘진정성’과 ‘정치성’에 대한 무수한 담론들을 양산했던 것은 누구였던가? 그 담론들을 통해 거꾸로 어떤 일방향성 강박을 요구한 건? 무엇보다 그 말많은 ‘거품’의 ‘실질적인’ 수혜자는 과연?

한국 인디 음악 역사의 원년이 되는 1994년 직후 약 2년 간, 홍대 주변의 클럽들을 중심으로 한 자료들은 ‘언더그라운드=펑크’라는 공식이 거의 강박적인 수준으로까지 인디 음악 씬을 특징지우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인디 음악 문화의 발흥(勃興)의 시초가 되는 클럽 ‘드럭’의 개장이 이루어진 해라는 것이 ‘펑크 강박증’의 원인이 아니라는 것은, 전술한 대로, 이제 상식이다. 당시 주류 대중 음악에 대한 ‘대안’, 좀더 가시적으로는 ‘의도적인 카운터 컬쳐’의 가능성으로 인디 씬을 바라본 수많은 저널리스트들과 문화 호사가들이 만들어낸 거품으로 인해 한동안 펑크가 아닌 것은 인디가 아닌 것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물론 당시 미국 얼터너티브 록의 펑크 에토스적 영향이 국내 펑크 록 씬의 자생에 일조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주류 음악의 기형적 시스템에 대한 ‘절대적인’ 반문화의 기치로 집중된 펑크는 정작 펑크 씬에서도 의도하지 않았고 관심도 없었던 마이너리티 환타지(minority fantasy)를 파급(波及)하게 된다. 이른바 뒤늦은, 그리고 편협한 ‘진정성의 폭발’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것은 생성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디 씬의 가능성을 처음부터 축소시킬 위험성 이외의 그 어떤 결과도 되지 못한 허장성세(虛張聲勢)에 지나지 않았다. 엘리트주의에서 기인한 자의적 해석이 지나쳤던 제도권의 홍보의 덕을 ‘실질적으로’ 받은 밴드나 레이블이 전무하다는 점, 그리고 펑크 록 이외의 채널을 인디의 ‘변방’처럼 만들어버리는 또 다른 기형적 록 이념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뒤늦게 비판의 쟁점이 되기도 했지만, 그것은 펑크 혹은 다른 스트레이트 록 사운드가 아닌 다른 음악적 채널로부터 나온 움직임에 의한 것이었다.

음악 수용자의 관점에서 한국 인디 음악 씬이 펑크가 아니면 진정성도 없고 인디도 없다는 강박에서 풀려나기 시작한 시점을 정확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비(非)펑크 음악 레이블들이 설립되고 정치성이 펑크처럼 가시적이지 않은 ‘모던 록 밴드’, ‘포스트록 밴드’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1997년 정도가 될 것이다. 소속 클럽과 소속 밴드들의 홍보를 주 역할로 삼았던 드럭이나 재머스와 같은 레이블들과 달리 정식 레이블로서의 체계를 갖춘 ‘인디’ 레이블, ‘강아지 문화 예술’, 그보다 1년 전에 설립된 ‘카바레 사운드’는 로큰롤, 포스트록, 힙합, 포크 팝, 기타 팝, 테크노 등등 보다 다양한 음악 채널을 추구하는 밴드들을 배출하는 통로가 되기 시작한다.

20001116112726-unnineh가장 괄목할 만한 움직임은 뭐니뭐니해도 언니네 이발관과 델리 스파이스다. 언니네 이발관은 1996년 말 [비둘기는 하늘의 쥐](석기시대)에서 로파이 그런지(lo-fi grunge) 기타와 비(非)펑크 록적인 목소리, 소박한 멜로디와 서정성이 하나로 맞물린 개성적인 모던 록의 채널을 만들어냈다. 인디 밴드의 성공적인 케이스로 언급되곤 하는 델리 스파이스의 데뷔 앨범 [Deli Spice](뮤직디자인)는 1997년 가을에 나왔는데, 언니네 이발관과는 다른 의미에서의 모던 록 사운드를 들려주었다. 언니네 이발관의 ‘의도적인 소박함’과 ‘뚜렷한 지형성'(다시 말해 이 땅(?)의 정서)과 달리 델리 스파이스는 보다 여성적이고 영적으로 침잠하는 사운드의 세련됨을 보여 주었다. 펑크 록의 ‘남성적 체제비판주의’나 전위 록(황신혜밴드, 어어부 프로젝트 사운드 등)의 ‘현실에 대한 희화적(喜畵的) 비틀기’가 궁극적으로 드러내는 음악 형식의 파괴나 정치적 노선과 무관하게 멜로디와 개인적 서정성에 무게를 둔 이들의 음악은 영, 미 모던 록에 대한 새로운 형태의 응답이자 인디 문화의 또 다른 채널이 된다.

20001116112726-misoni1998년에 이르러서 이러한 움직임은 미선이, 이성문의 가세로 더욱 넓은 지형도를 확보하였다. [Drifting](라디오)으로 언니네 이발관과 델리 스파이스가 물꼬를 튼 인디 모던 록의 바톤을 이어받은 미선이는 “송시”와 “Sam” 등 멜로디적 감수성이 뛰어난 곡들을 통해 여성적 서정주의 음악의 진지함을 더했고, 레이블 ‘카바레 사운드’의 설립자이자 소속 뮤지션인 이성문은 [이성문의 불만]에서 로파이 포크(lo-fi folk)적 사운드를 통해 허위적 엘리트주의에 물든 일부 인디 씬의 행태를 조롱했다. 인디 씬에 과적된 진정성의 의무와 자세(attitude)에 대한 음악적 반항? 그 어떤 ‘정의’에 대한 강박과 상관없는 자족적인 음악의 출구를 꾀하고자 하는 소박한 에티튜드? 그것이 무엇이었건 간에 그로 인해, 과격한 스테이지 다이빙과 모싱이 어우러지는 속의 한시적 공동체가 이루어지는 클럽들뿐만 아니라 정적인 율동(?)과 싱얼롱이 어우러지는 평화로운(?) 클럽의 광경이 가능해졌다는 것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음악사적으로는 1980년대에서 1990년대에 융성(?)하다 닫혀버린 포크 팝(여행 스케치, 어떤 날, 11월, 빛과 소금, 하덕규 등)과의 단절을 잇는 미싱링크(missing link)라는 의미를 가지기도 하는 이러한 음악적 서정주의의 행진은 1999년에 이르러 스웨터, 은희의 노을, 스위트피의 등장으로 더욱 극대화된다. 최근 데뷔 앨범 [노을팝]을 통해 복고적 서정주의를 끝까지 밀고 나간 은희의 노을은 1980년대에서 더욱 아래로 내려간 1970년대 후반의 한국 포크 팝 사운드를 ‘향수’하게 만드는 다소 희한한(이것이 요즘의 ‘엽기’라는 말로 대변될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경험을 하게 한다. 출신 레이블의 설립자인 이성문씨의 다양한 음악적 캐리어가 소속 밴드의 ‘자유로운 음악 정신에 대한 보장’으로까지 이어지는 카바레 사운드에서 최근의 메리고라운드와 함께 말랑말랑한 포크 팝의 노선을 추구하는 은희의 노을이 복고추구의 서정성과 퇴행성을 어떻게 줄타기할 것인지 차후의 행보가 주목된다.

20001116112726-sweetpea한편 1999년의 [달에서의 9년](마스터플랜)을 시작으로 2000년, 자주 레이블인 ‘문라이즈’를 통해 [neverendingstories]로 본격적인 활동을 예고한 스위트피의 경우, 1집 이후의 델리 스파이스가 추구한 록의 다양한 스펙트럼으로부터 한 걸음 물러나 슈게이징과 슬로코어 등 다소 퇴행적이지만 영롱한 포크의 선율을 추구한다. 델리 스파이스의 김민규가 설립자인 문라이브 레이블을 통해 활동하게 될 Thomas Cook, 이한철, 이다오, Clare, 납 메아리들의 음악들을 들어보면 ‘침잠하는 개인주의 혹은 감상주의’적 모던 록에 대한 ‘본격적인 추구과 다양화’라는 목표가 읽혀진다.

‘분노를 터뜨리는 목소리’가 아니라는 이유로 정작 씬 안에서의 자체적인 움직임들과는 상관없이 변방의 변방으로 취급되어야 했던 ‘내적인 우울로 침잠하는 목소리’가, 현실적으로 더욱 어려워져 가는 상황 속에서도 자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 무엇보다 그 방향 내에서 주목할 만한, 향유할 만한 ‘소리’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는 것은 여전히 소중한 가치로 매겨져야 할 현상(?)이다. 물론 이 안에서의 내성어린 비판 역시 동시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과정이다. 즉, 감상과 멜로디, 사적 감정이 지배하는 듯한 복고에의 천착(穿鑿) 등은 그들이 걸어가는 음악적 통로의 길을 다갈래로 뻗게 하기보다는 한 쪽 내리막길로 치닫게 할 수도 있다는 비판 말이다. 더 이상 거품에 쌓여 있지 않은 한국 인디 음악 문화 내에서, 여전히 가난하지만, 최소한의 음악적 자유를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된 이들에 대한 이런 비판이 ‘기우’로 끝나기를 바란다. 20001115 | 최세희 nutshelter@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