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1116124324-djsoulscape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 – 180g Beats – MP/드림비트, 2000

 

 

재즈와 소울로 빚은 상쾌한 힙합

음악에 진화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 바람직한지는 모르겠지만, 음악의 좋고 나쁨을 떠나 그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일정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이 발견된다. 그것은 다름 아니라 음악의 기악화(器樂化)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표현력이 풍부한 인간의 목소리를 떠나 사운드 자체로 표정을 지으려는 시도는 많은 이들에게 도전을 불러일으키는 모양이다. 힙합도 예외는 아니어서 DJ Shadow로 대표되는 트립합이나 턴테이블리즘(turntablism) 등 랩 없는 힙합은 이제 어엿한 하나의 조류로 성장했다. 그리고 여기에 따라다니는 말이 하나 있는데 바로 비닐 문화(vinyl culture)라는 것이다.

최근 국내에도 이러한 조류에 부합하는 음반들이 발표되기 시작했다. 올 여름 호평을 받았던 곤충스님윤키의 [관광수월래]가 첫 번째 주자였고, 이제 DJ Soulscape의 [180g Beats]가 이 대열에 합류했다(특히 이 음반은 비닐에 대한 사랑을 공표하려는 듯이 CD 발매에 앞서 먼저 LP로 발매되어 눈길을 끌었으며, 앨범 제목의 180g는 바로 LP의 무게를 의미한다고 한다). 하지만 이 두 음반은 제목이 말해주듯이 그 느낌이 전혀 다르다. [관광수월래]가 녹음기를 들고 이곳저곳에서 소리를 채집하여 저잣거리의 생생함을 담고 있다면, [180g Beats]는 샘플에 의존하기보다 세련된 비트와 그루브로 고급스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DJ Soulscape는 소울 쳄버(Soul Chamber)에서 사운드를 담당하는 DJ이며, 올해 초 [2000 대한민국]에 수록된 Joosuc의 “정상을 향한 독주(It’s My Turn)”에서 스크래칭에 참여함으로써 사람들에게 알려졌다. 이제 힙합 전문 클럽으로 완전히 색깔을 굳힌 클럽 ‘마스터플랜’의 소속인데, 역시나 DJ Soulscape의 첫 솔로 앨범에는 같은 클럽 소속 뮤지션들이 래핑으로 일조하고 있다(그러고보니 이 음반이 100% 인스트루멘탈 힙합이 아님을 미리 고백하지 못했다). 피처링이 있는 트랙이 많을수록 다양성과 통일성 사이에서 위태로운 줄다리기를 하게 되는데, 이 음반은 아슬아슬하게 위험 수위를 넘지 않고 있다. 11곡 중 5곡이 객원 래퍼의 도움을 받았지만 DJ가 곡의 주도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 강렬한 메시지를 담고 있는 가사와 래핑은 종종 사운드와 충돌한다. 가사가 주는 선명하고 직접적인 이미지가 사운드의 쿨하고 재지한 분위기와 상충된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보통 빠르기/느리게”의 튀는 나레이션은 애교로 봐주자.)

그렇지만 이것은 이 앨범의 ‘유일한’ 문제점이다. DJ Soulscape는 경쾌한 힙합 비트에 소울과 재즈의 영향을 받은 감미로운 사운드를 입혀놓은 이 음반에서 놀라운 감각을 선보인다. “Piano Suite/Loop of Love”의 중간부분에서 첼레스타(?)의 음색이 곡의 분위기를 살짝 흐트리는 부분이라든지 “선인장”의 간주에 나오는 관악기의 미묘한 연주만으로도 그의 재능은 증명된다. 물론 유쾌한 스크래치와 그루브로 멋진 반주를 만들어내는 “일탈충동”도 주목할 만한 트랙이다. 개인적으로는 랩 없는 트랙에 주목하고 싶은데, 앨범에서 경쾌하고 유머러스한 “Candy Funk”와, 색소폰과 피아노 연주 여기에 여성 보컬이 인상적으로 덧입혀진 애시드 재즈 넘버 “Summer 2002″를 대표적인 트랙으로 꼽고 싶다.

한 인터뷰에서 ‘힙합의 무거움을 벗어버리고 싶었다’고 했듯이 이 앨범은 기존의 국내 힙합 음반들에서 찾아볼 수 없는 가벼움과 여유를 가지고 있다. 전면적으로 구현되지는 않았지만 랩 없는 힙합의 가능성을 시도했다는 점에서도 그 가치는 충분하다. 앞서 언급한 곤충스님윤키의 [관광수월래]가 실험적이긴 하지만 다음 행보가 ‘기대반 염려반’이라면, DJ Soulscape는 좀더 견고한 길을 걸을 것 같다. 물론 이는 애시드 재즈와 모왝스 트립합 사운드라는 안전한 영토 위에 발을 딛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데, 설마 이것이 그의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지는 않겠지. 20001114 | 장호연 ravel52@nownuri.net

8/10

수록곡
1. 음악시간
2. Morning
3. 浮草 (80日間 世界一周 外傳) – feat. MC Meta
4. Candy Funk
5. 일탈충동 – feat. Seven
6. Piano Suite/Loop of Love
7. Story – feat. Leo K’koa
8. Sigh (숨과 꿈) – feat. MC 성천
9. 보통 빠르기/느리게
10. 선인장 – feat. 大捌
11. Summer 2002

관련 글
곤충스님윤키 [관광수월래] 리뷰 – vol.2/no.15 [20000801]

관련 사이트
클럽 마스터플랜 공식 사이트
http://www.clubm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