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tboy Slim – Halfway Between The Gutter And The Stars – Skint/Sony, 2000 파티장을 떠나 흑인 음악으로 눈을 돌리다 “You’ve Come A Long Way, Baby”. 이 친숙한 제목의 팻보이 슬림(Fatboy Slim, 본명은 Norman Cook) 앨범은 1999년 국내에서 테크노의 열풍이 수그러들고, 테크노가 매니아들만의 컬트 장르가 된 후 국내에 발매된 히트 (테크노) 상품이었다. 프로디지(The Prodigy)나 케미컬 브라더스(The Chemical Brothers)만큼의 큰 족적을 남기지는 못했지만, 이렇다 할 히트 음반이 없는 상황에서 팻보이 슬림의 이 음반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촘촘히 뜯어보면 차이가 드러나지만 팻보이 슬림은 프랑스의 다프트 펑크(Daft Punk)나 영국의 벤틀리 리듬 에이스(Bentley Rhythm Ace)처럼 코믹스럽고 유쾌한 파티 음악이라는 게 지배적인 평이었다. 하지만 이번 앨범은 파티장에서 꽤 먼 길을 가버린 것처럼 보인다. 앨범 발매에 앞서 공개된 그의 첫 싱글 “Sunset (Bird Of Prey)” 역시 짐 모리슨(Jim Morrison)의 무거운 육성이 샘플로 쓰인 것이다. 이 곡에 쓰인 짐 모리슨의 저음의 읊조림은 그의 시로만 된 앨범 [American Prayer]에 실렸던 자작시로, 가사나 곡의 분위기가 결코 팻보이 슬림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비록 팻보이 슬림의 깔끔한 편곡으로 원곡의 허무함은 사라졌지만, 노먼 쿡의 유쾌한 음악 같은 느낌도 주지 않는다. 이 곡의 뮤직비디오 역시 노먼 쿡의 심경 변화를 확실히 느끼게 해준다. 곰인형이 폭파되어 조각조각 날아가는 화면이나 아폴로 파마를 한 댄서들이 정신없이 춤추는 그런 영상에 익숙해져 있는 팻보이 슬림의 팬이라면, 군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형식의 (알란 파커 감독의 [The Wall]을 보는 듯한) 무거운 분위기는 좀 의외일 것이다. 앨범의 첫 곡인 “Talking Bout My Baby”에서부터 노먼 쿡은 전자음을 절제하고 가스펠 스타일과 둔탁한 피아노, 그리고 와와 페달을 사용한 기타로 시작한다. 이렇게 계속 진행되다가 곡의 후반으로 가면 그제서야 층층이 전자 음향이 하나씩 더해지는데, 어차피 샘플링의 원재료는 아날로그 음악이지만, 노먼 쿡은 흡사 그 아날로그에 다가가려는 것 같다. 이 곡에서 감지되는 올드 스타일의 블루스, 친(親)흑인음악의 경향은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이미지이다. 붓시 콜린스(Bootsie Collinse)의 목소리가 담긴 “Weapon of Choice”은 이 앨범에서 가장 흥겹고 훵키한 곡이고, “Drop The Hate”는 제임스 브라운(James Brown)의 곡을 테크노로 편곡한 것 같다. 또 다른 변화양상은 전작에서 들을 수 없었던 객원 보컬의 전진배치이다. 데뷔 앨범에서 DJ Shadow와 함께 작업한 메이시 그레이(Macy Gray)는 “Love Life”와 “Demons”에서 매력적이고 훵키한 목소리를 들려주며, 노먼 쿡은 반주자로 물러나는 겸손을 보인다. 그렇지만 곳곳에서 조금씩 느껴지는 독특한 브레이크 비트는 저작권을 표시하는 멀티미디어의 워터마크처럼 노먼 쿡 자신을 은근하게, 그러나 확실히 드러낸다. 특히 이 앨범에서 가장 돋보이는 곡 중 하나인 “Demons”에서는 범상치 않은 전자 음향이 곳곳에서 튀지만, 형식적으로는 매우 전통적인 R&B 형식을 취하고 있다. 과거의 팬들에 대한 서비스 차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예전 팻보이 슬림의 스타일도 5, 6, 7번 트랙에 논스톱(혹은 메들리)으로 배치되어 있다. 하우스 리듬과 계속 반복되는 가사는 전과 다를 바 없지만, 보다 리듬과 그루브에 신경을 쓴 흔적이 보인다. ‘빈민가와 팝스타의 그 사잇길에서’라는 회고적인 앨범의 제목에서도 느껴지듯이 이번 앨범은 노먼 쿡의 야심이 담겨있는 앨범이다. 흑인 음악으로 방향을 선회한 것은 결과적으로 성공한 것으로 보이며, “Sunset (Bird Of Prey)” 같은 튀는 싱글을 빼면 앨범 색깔이 일관성을 갖추고 있다. 물론 과거의 재치가 사라진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감상용으로는 꽤 높은 품질을 갖고 있다. 20001114 | 이정남 Rock4Free@lycos.co.kr 8/10 수록곡 1. Talking Bout My Baby 2. Star 69 3. Sunset (Bird Of Prey) 4. Love Life – feat Macy Gray 5. Ya Mama 6. Mad Flava 7. Retox – feat Ashley Slater 8. Weapon Of Choice – feat Bootsie Collins 9. Drop The Hate 10. Demons – featuring Macy Gray 11. Song For Shelter – feat Roland Clark & Roger Sanchez 관련 사이트 팻보이 슬림 공식 사이트 http://www.gutterandstars.com/ “Sunset”의 뮤직비디오를 볼 수 있는 곳 http://realmedia.ipc.co.uk:7070/ramgen/nme/video/october/Fatboy_56k.r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