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ek – Solaris – Astralwerks, 2000 열린 스타일, 풀린 긴장감 음악이 ‘질서 있게 정렬된 음의 구조물’이라는 고전적인 정의를 믿는다면, 음악은 수학과 대단히 가깝다. 그리고 대위법 음악이 수학적 질서를 구현한 클래식 음악이라면, 아마도 대중 음악에서는 드럼앤베이스(drum-n-bass)가 이에 가장 가까운 음악이 아닐까 싶다. 포텍(Photek)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드럼앤베이스 최고의 스타일리스트 루퍼트 팍스(Rupert Parkes)는 누구보다도 엄밀하고 밀도 높은 사운드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또 지금껏 최고의 성과물을 내놓았다. 포텍의 음악은 어쩌면 로큰롤에서 태어난 대중 음악이 가장 진화한 모습일 것이다. 포텍은 인간의 극단의 감정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발표된 싱글들을 재수록하고 있는 앨범 [Form & Function]은 낯선 무사들이 벌이는 승부의 현장으로 나를 데려간다. 한순간의 방심으로 목숨을 내놓을 수도 있는 극도의 긴장감이 지배하는 세계. 주위는 쥐 죽은 듯이 조용하고 무사들은 서로의 눈을 노려보며 칼끝을 곤두세운다. 이윽고 칼의 휘두름은 시작되고, 그 모습은 점차 춤으로 변해간다. 테크노 컴필레이션 앨범 [AMP]에 소개된 “Ni Ten Ichi Ryu”나 [Wipeout XL]에 수록된 “The Third Sequence” 역시 마찬가지다. 일본의 사무라이들과 UFO에 매료되어 있는 포텍은 미지의 것에 대한 공포와 호기심이 자신의 상상력의 원천이라 믿는 듯하다. 그리고 그의 음악을 듣는 우리들은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드는 대신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만다. [Solaris]는 1997년 데뷔 앨범 [Modus Operandi]에 이른 그의 두 번째 정규 앨범인데, 이전의 사운드와 비교할 때 여러모로 다르다. 일단 일관된 스타일을 고수하며 박력 있게 몰아붙이고 있는 지난 앨범과 달리 [Solaris]는 스타일면에서 훨씬 개방적이다. 시카고 출신의 로버트 오웬스(Robert Owens)가 함께 한 두 트랙(“Mine to Give”, “Can’t Come Down”)은 골디(Goldie)나 LTJ 부켐(LTJ Bukem)의 곡처럼 소울풀한 느낌을 강하게 주며, “Glamourama”는 붐붐거리는 4박자의 하우스 리듬에 이태리어 대사가 흐르는 이색적인 트랙이다. “Halogen”은 덥 스타일이며, “Under the Palms”는 제목처럼 이국적인 분위기를 짙게 풍긴다. 그리고 앨범을 마감하는 “Lost Blue Heaven”은 앰비언트 하우스 넘버다. 이처럼 다양한 스타일이 혼재하다보니 그의 음악의 장기였던 긴장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렇다면 그가 긴장감을 포기한 대신 얻은 것은 무엇일까? 불행히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차갑고 정밀한 기계의 엄밀함은 파고를 예측할 수 없는 대양의 흐름으로 바뀌었지만, 뭔가 산만하고 안일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소리 하나하나가 주는 임팩트도 예전만 못할 뿐더러 곡의 밀도도 떨어진다. 그의 변화를 십분 존중해주면 과도기적이라는 말로 변명을 달 수도 있겠다. 그렇긴해도 그는 대체 어디로 나아가려는 것일까. 극소의 세계에서 극대의 세계로? 아니면 모노톤의 세계에서 칼라풀한 세계로? 20001031 | 장호연 ravel52@nownuri.net 4/10 수록곡 1. Terminus 2. Junk 3. Glamourama 4. Mine to Give 5. Can’t Come Down 6. Infinity 7. Solaris 8. Aura 9. Halogen 10. Lost Blue Heaven 11. Under the Palms 관련 사이트 소속 음반사의 포텍 페이지 http://www.astralwerks.com/phote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