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다가 개인 주말. 이대 정문을 통과하니 때를 만난 듯 흐벅지게 핀 목련꽃이 시선을 대번에 잡아맸다. ‘이곳은 음기가 세서 늦게까지 춥더라’던 누군가의 야그가 생각나서 잠시 키들. 금남의 땅에 꾸역꾸역 모여든 사람들은 세월의 때가 묻어나는 대강당을 향해 한가로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이대 강당 – 30년전 한 벽안의 딴따라에게 동방예의지국의 처자들이 속옷을 집어던지는 일대 해프닝(?)을 연출한 파문의 장이었으며, 세종문화회관이 개관되기 전에는 각종 내한 연주회가 열렸던 품격있는 공연장이기도 했다. 극성마마 열전 ‘Top10’에 들고도 남을 이모 여사는 신경 예민한 딸(바로 한국이 낳은 세계적(!)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이 기차 지나가는 소리에 신경 긁힐까봐, 연주회 시작 시간에 기차가 이화교를 통과하지 못하도록 신촌역장을 찾아가 신신당부했다는 무용담도 전한다. 주위를 휘익 둘러보니 대부분 간만에 공연장을 찾은 듯한 중년의 줌마와 저씨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간간이 주말 데이트를 즐기 러 온 직장인 커플도 보이고…다른 공연장에 가면 나는 갈데없는 경로우대감인데 이렇게 얼라 축에 속하다니… 어 그러고 보니 진짜 얼라들도 있구나. 엄마 아빠의 주말 외출에 동행한 이 광경은 한마 디로 ‘열린음악회’였다. 이 공연의 모토 중 하나가 성인음악의 복원 이었던가? 그런데 이 공연 주최측 중 하나가 이대 총학이었다는 생 각이 새삼스레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1달 전이던가…하위 문화의 트렌드를 잽싸게 기사거리로 써먹던 옆 대학 학보에서 전면을 할애 해 포크 특집기사를 냈던 생각도 났다.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 그리고 스위트 피의 앨범에 대한 이야기와 왕년의 카수 은 희의 흑백사진이 기기묘묘하게 조화를 이룬 그 기사. 그리고 그 위 로 지금은 한국 포크 명반 순례에 바쁜 총감독의 이름이 겹쳐졌다. 입장이 끝나고 당연히 15분쯤 늦게 ‘혁명의 낭만, 낭만의 혁명’이라는 부제가 붙어있는 ’99 포크 페스티발’이 시작되었다. 강당을 거의 메운 사람들은 오프닝으로 선 이대 노래패의 미숙하고 귀여운(?) 공연에서부터 ‘와우!’하는 함성도 지르고 박수도 치며 즐거워하기 시작했다. 일기예보가 약간은 머쓱하게 공연을 시작하자 이들은 마치 오늘 하루 즐기기로 작정한 사람들마냥 환호하기 시작했고, 안치환이 나온다는 사회자(무슨 연극배우라고 하더라. 문성근과 목소리가 흡사한)의 멘트에 괴성을 지르기도 했다. 밴드를 대동하고 나온 안치환은 이날 가장 고출력의 사운드를 들여주었다. (어떤 꼬마는 귀를 꼭 막고 머리를 기웃기웃거렸다. 구여버라 ^^;) 워낙 많은 팀이 출연하다 보니 한 팀이 달랑 2곡만 부르고 들어가던데, 주최측의 고충을 헤아린 관객들은 환호는 하되 앵콜은 요청하지 않는 성숙한 무대 매너를 보여주었다. 이날 출연진 중 가장 막내였던 급조 프로젝트 그룹 김광석(윤도현,엄태환,이정열,서우영)의 천진한(?) 무대 사이에 끼어든 서유석은 공연장을 잠시 푸른신호등 생방송 분위기로 바꾸기도 하였다. 짜증 –; 그래도 ‘타박네’ ‘하늘’ 등 그 옛날의 레퍼토리가 나오니 객석은 또 박수+싱어롱의 분위기. 막간에 자료 화면으로 나온 장발 단속 장면에 객석은 잠시 출렁이고…’저 아저씨도 악을 벅벅 쓰며 머리를 길렀을까? 저 아줌마도 한때 끼를 주체하지 못해 명동 거리를 쏘다니던 시절이 있었겠지’. 임창제의 느끼하고 썰렁한 입담이 시작되면서 또 짜증이 도지기 시작했다(이수영 아자씨는 멀쩡하게 그것도 아주 잘 살고있다더라). 그래서 임창제의 스테이지는 화장실 가는 시간. 더듬더듬 자리를 찾아오니 오홋! 이정선 아저씨가 나오는 것이었다. 왠지 빈 듯하지만 묘한 울림을 주는 보컬 사이로 어쿠스틱 기타의 다양한 톤을 들려주었다. 노찾사, 신형원이 나올 무렵 사회자는 부쩍 말이 많아졌다. 젊음과 낭만의 음악언어…비판과 저항 그리고 진지한 예술 이런 말들이 간헐적으로 들렸다. 아주 익숙한 어법과 문체. 우라까이의 대왕 한동준이 나와 또 화장실 행을 할까 했는데 곧 조동진 아저씨가 나올 듯하여 참고 앉아있기로 했다. 과연 필순이 언니의 뽀샤샤한 노래에 이어 조동진 아저씨가 나오더라. 역시 예의있는 관객들은 대가에 대한 예우를 한다. 존재에 비해 아직 온당하게 평가받지 못한 사람(아닌가?). 이제와서 하는 얘긴데 조동진 아저씨는 나의 10대 시절 이상형이었다. 하하! 행복한 사람을 부를 때에는 필순이 언니의 부추김에 힘입어 열린음악회의 한 장면이 연출되었다. 장엄하고 장황한 멘트에 이어 정태춘.박은옥 부부가 나올 때, 객석은 거의 기립박수 분위기였다. 평소 많은 말을 하던 정태춘은 왠일인지 잠잠하고, 박은옥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환대에 눈물로 답했던 전날 공연의 감격을 예의 그 정감있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던 것같다. 그리고 이후는 그랬다. 창기 오라버니가 빠진 동물원이 나오고 (허전해…) 동물원의 대부였던 산울림의 김창완 아저씨가 왠 아지매의 ‘오빠!’ 비명 속에 등장하고… 영상 속의 고 김광석과 박학기의 이중창이 나직히 흐르면서 공연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량한 테크놀로지는 영매의 구실을 하기도 한다. ‘Unforgetable… 훗’ 천원짜리 할인권으로 장장 3시간이 넘게 죽치고 앉아있는 동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고 들고 더 많은 노래가 흘렀다. 그리고 사이사이 말이 있었다. 무성한 말은 최종 합류점은 ‘청년문화의 복원’ 쯤 되는 것같았다. 뇌사 상태에 빠진 그 말을 입에 올리는 심경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지만 그날 그 자리의 그 단어는 씁쓸함을 안겨주었다. 이건 기름이 덕지덕지 낀 표정으로 ‘4.19 어쩌구’하던 모습에서 느꼈던 비애와 같을까? 다를까? ’99 포크 페스티발’이라는 것도 ‘그래도 살아온 날들이 있으니’ 판이라도 벌리고 안락사를 시키자는 산오구굿 쯤 되는 것인가? 김광석의 부재를 새삼 확인하고 그를 다시금 추모하게 만든 씬은 그러고보니 심상치않다. 그런데 부고장을 선포하는 자리라고 하기엔 그날 분위기는 너무도 의욕에 넘친 듯 보였고 앞으로의 일정도 찬란했다. 그렇담 죽음으로써 재생을 얻는 입사제의의 장? 조짐은 보이기 시작했다. 숱한 말은 결국 이러한 간절한 염원을 담은 진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사장의 진언은 그 대상을 포크에서 록으로 바꾸기만 하면 4~5년 전 줄기차게 설파하던 록 담론 바로 그것이었다. 과연 제사장의 간절한 기구로 포크는 뜰 수 있을까? 장흥과 일산, 남한강 변 카페, 소극장에서 노래하던 사람들을 몽땅 색출하여 제물로 바치면 포크는 살아날까? 과연? 아저씨, 아줌마를 위한 위민잔치 같은 공연을 보면서 나는 최근 쿨한 모던록 팬의 훼이보릿이 되어버린 벨 엔 세바스티안(Bell&Sebastian), 마그네틱 휠즈(Magnetic Fields), 레드하우스 페인터스(Redhouse Painters), 머큐리 레브(Mecury Rev) 등의 이름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수퍼스타 급이 된 벡(Beck)과 아니 디프랑코(Ani DiFranco)도. 이들은 인디팝의 전통, 안티 포크 무브먼트와 결합하면서 포크를 재정의하는 인간들이다. 이건 도저히 척박한 우리 땅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바다 건너 이야기일 뿐일까? ‘개인과 타자에 대한 진지한 성찰, 목소리의 표현력과 전달력’이라는 아주 자의적인 포크관을 가지고 있는 나에게 포크는 아직 현재형이다. 언니네 이발관, 미선이 – 포크 아닌가? 모던록 팬이 찾아듣는 몇 안되는 국내 음반인 어떤날 1,2집은 훌륭한 포크 음반 아닌가? ’99 포크 페스티발’로 포크가 다양한 흐름과 결합하여 개신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도하던 의도하지 않았던(전자가 더 큰것같다.) 차단했다면, 그리하여 결과적으로 포크의 입지를 좁히고 말았다면…돌 날라올 소린가? 이런저런 생각이 두서없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나 공연이 끝난 후 나는 공연히 마음이 요상해져서 기어이 신촌역이 내려다 보이는 호프집에서 맥주를 홀짝거리고 말았다. 시간은 이미 자정에 가까워졌는데… 역시 나에게(혹은 우리같은 어정쩡한 나이의 사람들에게) 포크란 꽤 그럴듯한 감정이입 수단인가보다. 그렇지만 여전히 이러한 바램은 있다. 포크가 노스탤지어를 자극하는 I.M.F형 상품이 되기 않기를… 뱀발 ‘포크 30년’이라는 홍보카피가 무색하게 내용이 받쳐주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하고 싶었는데, 쓰다보니 빼먹었다. 19990701 | 박애경 ara21@nownuri.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