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gados – The Great Eastern – Beggar’s Banquet, 2000 천진난만하고 성실하기 그지없는 비가(悲歌) 오케스트라 모과이(Mogwai)와 비스(Bis), 애럽 스트랩(Arab Strap)이 속한 케미컬 언더그라운드(Chemikal Underground) 레이블의 소유주들이기도 한 델가도스(Delgados)의 통산 세 번째 앨범 [Great Eastern]은 글래스고우에 위치한 노숙자, 약물 중독자들의 수용소에서 앨범 제목을 따왔다. 부클릿을 채운 사진들은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수용소의 괴기스러운 모습을 담고 있으며, 절망적인 현실에서 도저히 빠져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무기력한 페르소나로 가득 찬 가사들을 읽게 되면 “거지들의 잔치”란 발매 레이블의 이름이 눈물나게 지독한 자가당착임을 알게 된다. 스페인어로 “나약한, 여린, 예민한 사람들”을 의미하는 델가도스는 기타 드론과 노이즈사이를 오가면서 훅이 살아있는 팝 음악을 선보이던 예전에 비해 오케스트라 팝의 채널로 더욱 집중한 듯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언뜻 플레이밍 립스([Soft Bulletin])가 연상되기도 하는 것은 샘플링과 믹싱을 맡은 데이브 프리드먼(Dave Fridmann)의 손길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포스트 록의 코드를 유보한 듯 사라진 기타 노이즈의 여백을 채우는 것은 스트링, 목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 오토하프, 덜시머, 눈썰매 종, 하몬드와 같은 다채로운 사운드이다. 10개의 수록곡의 사운드 구성은 대개 비슷한 구조를 띠고 있다. 스트링 섹션과 키보드, 혹은 목관/현악기의 단일한 사운드 프레임이 ‘희미한 회상적인’ 분위기로 시작되면 여기에 앨런 우드워드(Alun Woodward)나 에마 폴록(Emma Pollock)의 유아기적이고 단정하지만 상실감에 푹 젖은 보컬이 마찬가지로 ‘머뭇거리듯’ 얹힌다. 세 네 소절이 지나면 뒤로 물러나 있던 사운드가 드럼, 관현악 오케스트레이션 등이 힘있게 ‘가세’하는 것으로 확장되고, 상실감으로 가라앉았던 남녀의 보컬 역시 댓구, 중창의 형식으로 나뉘거나 겹쳐진다. 오케스트라-팝의 전통적 형식의 관습적인 추종일지 모르나 캐논 형식을 연상케 하는 점층적인 구조와 함께 이루어내는 단아하고 장중한 사운드 프레임은 이들이 가진 탁월한 팝 감각을 두드러지게 하는 데 손색이 없다. 또한 그 사운드의 겹겹이 배어나오는 희망 없는 삶의 살아있는 목소리는 이들을 ‘절망을 전달하는 음악적 방식’에 있어서 새로운 채널을 만들어 냈다고 평가해도 될 정도로 설득력을 가지고 있다. 그로 인한 정서 발화(發火)가 잔인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니까. (온갖 종류의 학대를 받아온 아이들로 구성된 합창단의 예쁜 노래들을 듣는 기분은 간접적으로 아동학대를 자행하는 죄책감을 수반한다.) 이것은 전술한 대로 사운드와 함께 내러티브의 통일성으로 인해 가능한 정서다. 수용소 안에 쓰러져 금단 현상으로 괴로워하는 약물 중독자(“The Past That Suits You Best”), 스스로를 방기(放棄)해 버린 지 오래이니 아무래도 좋다고 또박또박 말하는 낙오자(“Stealing”), 실어증에 걸리는 것이 세상을 살아가는 현명한 방법이라고 비웃는 염세주의자(“Reasons for Silence”), 그럼에도 좋았던 한 때로 돌아가고 싶은 그리움이 존재한다고 아픈 가슴을 가리키는 피터팬 증후군 환자(“Witness”)가 모여 벌이는 수용소 뜨락의 ‘잔치’는 순도가 높은 만큼 비극적이다. 20001014 | 최세희 nutshelter@hotmail.com 7/10 수록곡 1. The Past That Suits You Best 2. Accused of Stealing 3. American Trilogy 4. Reasons for Silence (Ed’s song) 5. Thirteen Gliding Principles 6. No Danger 7. Aye Today 8. Witness 9. Knowing When To Run 10. Make Your Move 관련 사이트 Chemikal Underground Records 홈페이지 http://www.chemikal.co.u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