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미국 시장에 불어닥친 라틴 열풍이 ‘예상대로’ 한국에도 불어닥치고 있다. 라틴 클럽들이 여기저기 생겨나고 있고 ‘라틴 댄스 동호회’의 모임이 언론 지상(그리고 웹상)에 오르내리고 있다. 공식 명칭은 ‘스포츠 댄스’란다(그걸 왜 스포츠라고 부르지?). 그래서 탱고와 살사 등 ‘볼륨 댄스’의 교습도 과거의 어두운 모습을 벗고 양지로 나오고 있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몰아붙일 생각은 없다. 하지만 솔직히 이런 사람들이 ’30대 전문 직업층’ 중심이라는 혐의는 지울 수 없다. 그건 그렇고.

문제는 라틴 음악에 대한 소개가 영 이상하다는 점이다. 이에 대한 견해는 대충 두 가지다. “영어권 팝 중심의 음악들에 물린 우리 대중들에게 라틴 음악은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서고 있다”는 낙관적 진단이나 “소니, 아리스타 등 메이저 음반사에 의해 만들어진 의도적 전략”이라는 비관적 진단 둘 중 하나다. 우선 앞의 주장. 한국의 대중들이 영어권 팝 중심의 음악을 ‘물릴’ 정도로 많이 들었던가. 적어도 대중음악 소비의 막강한 주체인 10대들은 이전 세대보다 영미의 팝에 친숙하지 않다. 20대 이상은? 대학을 졸업한 뒤에 외국의 음반을 구매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별난 친구’로 취급받는다. 너무 일반화하는지 모르겠지만 음악 좀 듣는 이들도 과거에 나온 음반을 들으며 불멸의 가치를 음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전처럼 라디오에서 팝송을 줄기차게 틀어주는 것도 아니다. 직배사 관계자의 말에 의하면 U2와 R.E.M.의 음반은 기껏해야 5만장밖에 안 팔린다는데, 그렇다면 영어권 팝 음악을 물릴 정도로 듣는 사람은 고작 전체 인구의 0.1%정도라는 얘기밖에 안 된다.

20001018095541-1rickymartin또 이런 질문을 던질 수 있다. 현재 우리가 듣는 라틴 음악들이 과연 ‘팝 음악’과 얼마나 다른가. 내가 들은 라틴 음악 대부분은 영어 가사다. 제니퍼 로페즈(Jennifer Lopez)의 “If You Had My Love”, 리키 마틴(Ricky Martin)의 “Living La Vida Loca”같은 빌보드 차트 1위 곡들 말이다. 엔리케 이글레시아스(Enrique Iglesias)의 빌보드 1위 곡이나 리키 마틴의 다른 곡들은 스페인어 가사가 있다고? 그래봤자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메가히트곡들의 음악적 어법이 (영미의) ‘팝’과 무관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 있으면 나와봐라. 이 정도의 라틴’적’ 분위기는 플로리다와 텍사스 출신의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굳이 저런 접경지대가 아니라도 뉴욕과 LA같은 ‘멀티컬처’의 분위기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잘 하는가는 둘째 문제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현재 들려오는 ‘라틴’ 음악 대부분이 ‘미국’ 대중음악의 하나(이건 나쁜 뜻 아니다)는 것이다. 빌보드 차트를 보자. ‘Hot Latin Tracks’라는 이름의 차트가 있고, 이는 다시 라틴 팝, 살사/트로피컬(Salsa/Tropical), 멕시컨(정확히 말하면 ‘Regional Mexican’)으로 세분된다. 미국 내의 라틴 음악 방송국에서 틀어주는 빈도에 따라 측정하는 차트라고 알고 있다. 차트에 그토록 쌈빡한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이런 건 왜 하나도 설명해주지 않는지 모르겠다. 나같이 차트 본 지 10년은 넘은 사람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음악 비즈니스계에서 라틴 음악을 어떻게 다루는가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은 다음으로 미루자. 어쨌거나 ‘라틴 음악’을 좋아할 만한 사람은 영미 팝의 어법에 익숙한 사람이지 물린 사람이 아니다. 제니퍼 로페즈의 음악은 댄스 지향적인 R&B의 팬이라면 좋아할 것이고, 리키 마틴은 몇 년 전에 불었던 라운지/스윙/스카 붐에 주목했던 사람들이라면 익숙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즉, 라틴 음악에 특별한 취향을 가질 필요 없이 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왜? 그건 바로 ‘라틴계 미국인’이거나 ‘미국화된 라틴인’들의 음악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지금 라틴 음악이란 ‘처음부터 잡종’이었기 때문이다. 만약 라틴 음악이 영미 팝과 구분된다고 본다면 이는 빅토르 초이(와 Kino), 추이 지엔(崔健), 박수영(과 Seam) 등의 이질적 음악을 모두 ‘한국 록’이라고 우기는 것과 똑같다. 하긴 윤모 가수처럼 이러는 사람이 정말 있기는 하다. 무시무시한 민족물신주의(ethnofetishism)여!

라틴 음악 돌풍이 ‘메이저 음반사의 전략’이라고 몰아붙이는 것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한두해 전도 아니고 1990년대 초반부터 ‘빌보드 차트’의 하나로 존재해 왔던 음악을 두고 ‘갑자기 떴다’고 하니 말이다. 라틴 돌풍이 ‘푸에르토 리코 출신의 리키 마틴, 멕시코 출신의 루이스 미구엘(Luis Miguel), 스페인 출신의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의 치열한 삼파전’으로 환원되지는 않는다. 월드컵 축구 B조 예선전 예상 같은 이야기가 다가 아니라는 말이다(아차, 푸에르토 리코는 ‘나라’가 아니라 미국 령이지). ‘갑자기’라고 말한다면 존 세카다(Jon Secada)와 글로리아 에스테판(Gloria Estefan)이 서운해할지도 모른다.

줏어들은 바에 의하면 라틴 음악을 삼분하는 데는 문화적 이유가 있다고 한다. ‘트로피컬/살사’는 푸에르토 리코를 위시하여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캐러비언(왜 우리는 이 말만 들으면 ‘에버랜드’와 ‘고현정’이 생각나는가)들을, 그리고 ‘리저널 멕시컨’은 멕시컨(혹은 치카노)들을 주요 청중으로 삼고 있다. 지역적으로도 느슨한 구분이 가능한데 트로피컬/살사에는 푸에르토 리코와 마이애미, 뉴욕을 잇는 씬(과감하게 말하면 ‘살사 씬’)이, 리저널 멕시컨에는 멕시코와 텍사스, 캘리포니아를 잇는 씬(대담하게 말하면 ‘테하노 씬’)이 존재한다고 한다. 그렇게 된 지도 꽤 오래된 일이고, 따라서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은 다음 슈퍼스타를 탄생시키는 과정을 두고 ‘깜짝쇼’라고 말하는 건 사태를 잘 모르는 소치다.

평론가들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다. 1994-5년 경 펑크에 대해 이런저런 말이 많았을 때 “나는 섹스 피스톨스를 당대에 경험했다”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지 의심해 왔다. 그런데 이번에는 “나는 오래 전부터 라틴 음악이 뜰 거라고 예상했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건 좋다. 문제는 라틴 음악이 뜬 다음에 그걸 소개하는 방식이다. 대부분은 쿠바의 맘보, 아르헨티나의 탱고, 브라질의 삼바와 보사노바 어쩌구 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각국의 ‘국민음악’을 소개하는 데 바쁘다. 그런데 저게 언제적 음악인가. 저건 우리 어머니가 나보다 더 잘 아는 음악들이다. 다시 돌고돌아 최신의 유행으로 다가온다고 하지만 그게 어디 라틴 음악뿐인가.

쿠바 사람이 모두 맘보만 듣는 건 아니고, 브라질 사람들이 모두 삼바만 즐기는 건 아니다. 왜 그곳에는 세대 차이나 인종 차이도 없다고 전제하는가. 재즈와 포크와 록과 힙합과 테크노는 서로 다른 음악이라고 생각하여 음반점에서 따로 분류하면서, 왜 ‘라틴 음악’은 페레즈 프라도(Perez Prado)부터 엔리케 이글레시아스까지 한 자리에 진열하는가. 미국 아닌 다른 나라의 음악을 ‘동질적’이라고 취급한다면, 어떤 외국인이 ‘한국의 음악은 트로트’라고 말해도 할 말 없을 것이다. 음악은 들어본 적 없지만 한 문헌에 의하면 브라질의 하층 계급들은 삼바에 지긋지긋해 하여 ‘미국의’ 힙합과 훵크를 듣는다고 한다. 강력 본드처럼 다인종 사회를 화합시키던 삼바조차도 최근에는 국민화합능력의 약발이 떨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위에 열거한 음악들은 트로트와 다른 점이 있다. 이들은 ‘국제적’ 음악이지 ‘국민적’ 음악이 아니다. 아르헨티나인이 아닌 탱고 음악인이나 브라질인이 아닌 보사노바 음악인은 부지기수다. 그러니까 ‘어떤 지역에서 나온 음악이냐’는 갈수록 중요하지 않다. 물론 그걸 중요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른바 ‘월드 뮤직’ 열성자라면 그럴 것이다. 카리브해의 해변, 아마존강 유역, 안데스 산맥같이 문명으로부터 초연한 어딘가에 팝의 비즈니스와 레코딩 테크놀로지에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음악이 있다는 환상 말이다. 꿈 깨자. 세계 각국은 좋든 싫든 이미 ‘미국화’되어 있고 그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음악 역시 마찬가지다. 게다가 미국 문화 자체가 ‘멀티컬처’다. 멀티컬처라는 말이 허울좋은 말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지만, 여러 문화가 동등하게 존립한다는 뜻이 아니라 위계질서가 있는 상태에서 서로 뒤섞인다고 본다면 아직은 쓸 만하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어디서 나온 음악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만든 음악인가’이다.

20001018095541-2reconquista지금 내 앞에는 [Reconquista: The Latin Rock Invasion]라는 음반이 있다. 부제는 ‘라틴 록 인베이전’이고 밴드들은 대체로 라틴 아메리카 출신들이다. 이들의 음악은 얼핏 듣기에 캘리포니아 출신의 얼터너티브 록(이 말 정말 쓰기 싫지만) 밴드들을 연상시킨다. 훵크, 스카, 하드코어 등이 잡탕된 기타 록(guitar rock) 말이다. 그렇지만 드문드문 들어가는 퍼커션 소리나 스페인어 특유의 굴리는 발음은 영락없이 라틴 아메리카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평론가들이 뒤늦게 ‘외우려고’ 애쓰는 탱고, 삼바, 쿰비아 등은 어쩔 수 없이 록 사운드 간간이 배어나오고, 때로는 사운드 샘플로 등장하다가 록 비트에 ‘엿먹임’을 당할 때도 있다. 라디오에서 샘플을 따오기도 한다. 1999년 그래미상을 수상한 아르헨티나 출신의 로스 파불로소스 카딜락스(Los Fabulosos Cadillacs)는 역시 그 명성 그대로였다. 개인적으로는 러시아나 중국의 록을 접했을 때처럼 이들 ‘후진국’의 록 커뮤니티의 수준(뮤지션의 표현력-연주력이 아니라-이나 팬의 저변 모두에서)이 한국보다 몇 수 위라는 걸 느끼고 다시 한번 절망하게 된다.

이 음반을 포함하여 ‘라틴 록’ 이른바 ‘rock en espanol’은 이미 [CMJ] 1998년 7월에 소개된 바 있다. 이 용어마저도 미국 내의 히스패닉계 대학생들을 겨냥하는 또 하나의 비즈니스 용어라서 찜찜하다. 어쨌거나 아르헨티나의 ‘민중가수’ 메르체데스 소사(Mercedes Sosa)가 부르는 노래를 [정사 O.S.T.]에서 듣는 것보다 이들의 음악이 라틴 아메리카의 현실에 보다 가깝게 들린다. 이 말도 안 되는 사운드트랙 음반은 진보언론이 발행하는 시사주간지에서 “라틴 음악을 대표하는 다섯 장의 명반” 중의 하나로 소개되었다. 하긴 이런 식의 센티멘탈리즘이 어제오늘의 일이랴. 아말리오 로드리게스(Amalio Rodriguez), 티시 히노호사(Tish Hinojosa), 베빈다(Bevinda)… 이들이 누구냐고? 이들의 노래가 삽입된 TV 드라마 이름을 알려주면 모두 알 것이다. ‘윤상이 틀어주는 음악’도 마찬가지다. 라틴 음악을 제대로 들으려면 ‘라틴 음악의 고전들을 알아야 한다’는 식의 주장도 그다지 경청하고 싶지 않다. 무슨 고전 예술 음악 감상하는 것도 아닌데 그럴 필요까지야.

20001018095541-3mastersatwork앞에서 로스 파불로소스 카딜락스 등을 언급한 것을 두고 당신이 ‘록 매니아’라서 그런 취향을 가졌을 뿐이라고 시비 걸 사람이 있을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볼 때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하우스 DJ인 매스터스 앳 워크(Masters At Work)라는 프로덕션 팀이 있다. 두 명인데 모두 푸에르토 리코계 미국인이고, 이른바 뉴요리컨(뉴욕에 거주하는 푸에르토 리코계 미국인)들이다. 이들의 사이드 프로젝트 중의 하나가 뉴요리컨 소울(Nuyorican Soul)이다. 정말 소울이냐고? 아니 하우스 음악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하우스, 힙합, 살사 등이 모두 들어있지만 순수한 하우스, 순수한 힙합, 순수한 살사는 하나도 없다. 작곡 방식은 재즈에 빚지고 있어도 느낌은 라틴’적’이다. 장소를 LA로 옮겨 오조마틀리(Ozomatli)라는 ‘힙합’ 그룹을 찾아봐도 비슷한 양태를 발견할 수 있다. 힙합에 보다 가까워 보이지만 재즈, 레게, 테하노, 레게, 쿰비아 등이 혼재되어 있다.

나는 이런 ‘라틴 짬뽕’ 스타일의 음악을 많이 접한 것이 아니라서 이들의 음악이 특별히 훌륭한지 아닌지 판단하기가 힘들다. 좌우지간 이런 음악들은 라틴 음악의 다른 용도를 보여준다. 쌈마이 댄스가요의 반주 리듬으로 사용하거나, ‘영미 팝 음악보다 조금 이국적’이라는 용도로 듣거나, ‘정통 라틴 댄스의 사운드트랙’으로 사용하는 것 이외의 용도 말이다. 영미 팝 음악과 구별되는 라틴 음악? 그런 건 없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훌륭한 대중음악인은 자신이 속한 ‘로컬’한 문화적 커뮤니티의 정서를 표현한다는 ‘오래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이 생각이 낡았다면 누군가 신선한 생각을 줬으면 좋겠다). 문화적 커뮤니티는 단지 지리적 장소가 아니다.

‘글로벌’ 시대에 음악적 재료는 언제 어디서나 구할 수 있다. 문제는 음악적 재료가 무엇인가가 아니라 이걸 어떻게 요리하는가에 있다. 라틴 음악의 한국적 수용? 그런 것도 없다. 음악적 뿌리(roots)가 사라진 시대에 전세계에서 채취할 수 있는 뿌리들을 어떻게 이용할까의 문제가 있을 뿐이다. 20000415 | 신현준 homey@orgio.net

관련 사이트
빌보드 라틴 음악 차트
http://www.billboard.com/charts/latintracks.asp

“Rock en Espanol’ 사이트들
http://www.labandaelastica.com/
http://www.rockenespanol.com/(under construction)

Los Fabulosos Cadillacs 공식 홈페이지
http://www.virtualizar.com/lf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