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0년 6월 4일
장소: 연강홀
입장료: 3만원

20001025045600-seam1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끝내 모를 밴드, 씸(Seam)의 공연이 지난 6월 3, 4일 이틀에 걸쳐 총 3회 열렸다. 연극이 끝나고 난 후 객석은 텅 비듯이 씸 공연이 끝난 지금, 그들은 다시 수면 속으로 가라앉았다. 공연이 열리기 전까지 간헐적으로 보였던 포스터와 각종매체(까지는 아니지만)의 관심은 이제 레이지 어겐스트 더 머신(Rage Against the Machine)이라는 수퍼밴드에게로 간 것일까? 이제서야 씸의 공연 관람기를 올리는 것은 4일 이후로 누군가가 글을 쓰리라는 ‘안일한’ 생각에서 비롯되었는데, 역시 ‘안일한’ 생각이었다.

이 글에서 씸에 대하여 설명할 생각은 없다. 누군가의 말처럼, ‘알 만한 사람은 이미 알 테고, 모르는 사람은 아무리 얘기해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테니까’. 씸에 대하여 궁금하신 분들은 아래의 주소로 가서 그들을 찾아보시길. 비록 공연 당일 관객은 예상외로 열광했고 간혹 ‘오버’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미처 음악을 뚫지 못하면서도 나직이 절규하는 듯한 씸의 목소리는 마치 굶주린 갓난아이의 절절한 울부짖음을 연상시키며 우울하게 만든다. 오히려 들떠있던 관객분위기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던 씸의 콘서트. 하지만 그들은 우리 곁에 있다.

7시에 시작하는 콘서트. 하지만 언제 제 시간 맞춘 적이 있단 말인가. 아니, 그런데… 7시 5분에 공연이 시작되는 것 아닌가! 미국의 로컬밴드, 한국의 인터내셔널 밴드(라고 착각되어진) 씸의 공연은 의외로 상쾌하게 시작되었다. 씸의 공력 때문인지 공연은 전체적으로 차분한 분위기. 게스트로 나온 밴드들의 멘트도 적었고 관객들의 동요도 적었다. (오죽하면 “오늘 오신 분들은 모두 귀족출신인가 봐요”라는 소리까지 들었으랴.) 마이 앤트 메리, 3호선 버터플라이, 그리고 코코어. 연주가 끝날 때마다 바뀌는 조명과 대기 음악이 흐르면서 어둠 속에 주섬주섬 세팅이 끝나면 다음 밴드가 연주하는 식이었다.

7시 5분 마이 앤트 메리; 그들은 언제나 흥겹다. “느림보”, “강릉에서” 등 세 곡 연주 / 7시 25분 3호선 버터플라이; 붉은 색 조명 속에 등장한 이들은 돌아선 채 튜닝 겸 연주를 시작했는데 지난 ‘여악여락’ 공연 때 불렀던 “콩”, “방파제”, “창틀 위로 정오 같은”을 연주. 이날은 웬일로 제목까지 말해주었다. 아직 앨범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 그 제목이 될지는 미심쩍지만. / 7시 50분 코코어; 터질 듯한 음색에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 “고엽제” 등을 불렀고 녹색조명이 쓰였다.

가히 환상적인 게스트 공연. 다양한 색깔의 음악을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관객은 요지부동. 꿋꿋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심 바라고 있던 분위기였다. 씸의 음악은 헤드뱅잉用 음악이 아니다. 나직이 들리는 보컬은 융화를 거부하고 완급이 수시로 바뀌는 흐름과 엇박자의 비트는 몰입을 차단한다. 씸은 음악에 “소외효과”를 부여한다. 감정이 오르는가 싶으면 어느새 연주는 끝나는데, 정확히 말하자면 ‘서서히 타오르는 불꽃’이 아닌 타오를 듯하다가 꺼지는 불꽃이다. 그 아쉬움, 여백, 공간을 채워야 하는 버거움. 그것이 씸 음악의 본질이다. 8시 15분. 허클베리핀의 노래가 흐르면서 녹색 푸른색 조명 속에, 다소 건조한 분위기에, 수군거리는 소리, 졸고 있는 사람 중에 머리를 민 박수영 등장. 관객의 환호성. 무대에서 내려감… 8시 25분 다시 등장. 홀로 첫 곡 “Pale Marble Movie” 연주. 그 음악을 바탕으로 나머지 멤버들 존 리, 월리엄 신, 크리스 무대에 오름. 관객의 환호성. 이제 ‘이모 코어(emo-core)’에 몰입할 시간이 찾아왔다.

20001025045600-seam2그런데… 관객의 참여를 부추기는 진행요원들. 몇몇 요원들은 앉아있는 관객들을 일으켜 세우고 손짓으로 부르며 관객을 선동하는 것이 아닌가. 앞사람이 일어서서 무대 앞으로 나가버리면 뒷사람은 보이질 않아 더불어 나갈 수밖에 없다. 물론 모든 관객이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만, 씸은 한바탕 놀 만한 음악이 아니다. 대중적인 리듬도 아니다. 흥겨운 로큰롤은 더더욱 아니다. 미국에서 활동하지만 미국인도 잘 모르는 로컬 인디 아시아계 미국인 밴드이다. 그만큼 특별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분위기 때문이었을까. 별스러운 환호성, 박자에 맞지 않는 흔들거림, 어색한 헤드뱅잉이 시작되었다. (공연장에서 선글라스를 낀 관객은 처음 보았다.) 그러면서 씸은 무대 위의 인터내셔널 스타가 되었다. 부유하는 엇갈림이었다. 그 묘연한 “Inching Towards Juarez”를 부를 때조차 단발마의 환호성 두 번, 박수소리 한번이 들렸다.

하지만 씸은 동요하지 않았다. (한국말을 제대로 못해서일지도 모르지만) 보컬 수영 박은 기껏해야 “고맙습니다”정도의 멘트만 할 뿐, 여유롭게 맥주를 마시며 연주하였다. 그들에겐 팬도 없었고 스타도 없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제풀에 지친 관객은 자연히 뒤로 물러났고 이후 공연은 새로운 모습을 갖게 되었다. 무대 앞의 열혈 매니아들, 의자 위에 걸터앉은 관조인(觀照人), 눈을 감고 감상하는 이들, 기타 등등. 짐작하지 못했던 자유스러움. 이런 식으로 공연은 이어져 9시 15분, 씸의 연주는 모두 끝났다. 하지만 관객들의 환호성과 박수소리에 유일한 외국인 드러머 등장. “이런 적 처음이야, 놀라운 밤이군요, 한국 좋아요, 김치찌개…” 등등의 이야기를 하면서 나머지 멤버들이 다시 올라왔다. 그중 존 리가 보이질 않았는데 수영 박 말하길, “화장실”… “정말”. 이어지는 앙코르곡 “Aloha Spirit” 연주가 끝난 후 씸은 다시 퇴장했고 또 한번의 앙코르 요청이 이어졌다. 다시 씸 등장. 존 리는 생뚱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기타를 잡았다.

공연은 9시30분 경에 끝났다. 수영 박의 끝인사는 “잘 가”. 드러머인 크리스는 약 6개의 드럼 스틱을 관객들에게 친절히 나누어 주었다. 하지만 공연장에 불이 켜진 후 씸 멤버들은 무대 위에 남아있었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들의 태도. 자연스럽게 관객과 씸 멤버들은 인사를 나누고 사인을 주고받았다. 악수를 하기도 하고 서로 등을 두드려 주기도 하며 친근함을 표현했는데 그것은 팬과 스타의 상하관계가 아닌, 인간 대 인간의 동등한 관계였다. 인디음악의 정의가 모호하지만, 분명 씸의 태도는 그 단면을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선망의 대상이 아닌 소통의 수단으로 음악을 선택한 씸. 언제나 그들은 우리 곁에 있다… 20000607 | 신주희 zoohere@hanmail.net

* 이 글은 인터넷한겨레 하니리포터에 6월 7일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게재를 허락해주신 인터넷한겨레 측에 감사드립니다.

관련 글
조용하게 타오르는 파란 불꽃같은 록 음악, Seam – vol.2/no.10 [20000516]

관련 사이트
공식 팬 사이트
http://redrival.com/seam

국내 팬 사이트
http://hello.to/seam

씸 내한공연 페이지
http://www.bluenoise.co.kr/event/seam_in_seoul.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