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00년 3월 6일 장소: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입장료: 3만원 REM이 94년 [Monster] 앨범을 발표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은 ‘웬 그런지?’ 라는 말로 놀라움을 표시하고 그 말 끝에 일말의 사족을 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추앙 받는 대부급 선배가 때로는 영향을 주었던 후배들로부터 배우기도 하는 모양이라고… 물론 이 이야기는 REM과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너바나(Nirvana)와의 각별한 관계(?)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시인과 촌장의 공연을 보면서 REM의 뜬금없는 앨범과 후일담이 뜬금없이 떠올랐던 이유는 아마도 시인과 촌장 그리고 허약하게나마 씬을 형성하고 있는 모던 록 밴드를 잇는 모종의 커넥션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커넥션이라고 해서 뭐 그리 대단한 내막이 있지 않으리라는 것은 읽는 이들이 더 잘 헤아려주리라 믿는다. 포크 감성을 기조로 하는 모던 록 밴드들이 음악 초년 시절에 들었던 몇 안되는 국내 음반이 시인과 촌장, 어떤날 류의 음악이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언더그라운드의 맹장들이 자신의 방식대로 대중음악의 질적 도약을 이끌었던 80년대 중반, 시인과 촌장은 그 가운데에서도 독특한 음악성을 드러내었다. 그 시인과 촌장이 오랜 침묵을 깨고 새 음반을 내고 때맞춰 공연을 하였다. 아… 여기에서 오랜 침묵이라는 것은 포크 뮤지션으로서의 하덕규 혹은 시인과 촌장을 기억하는 이에게만 유효하다. 알려졌다시피 하덕규는 그동안 방송인으로, CCM가수로 ‘복음의 전파’에 힘써왔고, 함춘호는 일급 세션 기타리스트로 음악적 경력을 탄탄하게 쌓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새 앨범의 기조는 홍보 카피를 빌리자면(혹은 하덕규의 말을 인용하자면) 모던 록이다. 요즘의 모던 록을 많이 좋아하고 알게 모르게 그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굳이 감추지 않았다. 델리 스파이스의 기타리스트 김민규가 이 앨범에 참여했다는 풍문도 들린다. 그러나 공연은 당연하게도 올드 팬들을 위한 ‘추억의 메들리’로 문을 열었다. 이것은 기만원을 들여 외진 곳까지 찾아온 팬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리라. 멘트 없이 주욱 이어진 1부의 마지막 곡은 “푸른 애벌레의 꿈”. 고통스런 고해성사와 같은 이 곡은 아직도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을 간직하고 있나 보다. 지긋이 눈을 감고 나직하게 따라 부르는 사람들이 간간이 보였다. 레퍼토리는 “얼음무지개” 한 곡을 제외하고는 2집의 곡들로 채워졌다. 그러다보니 ‘매’나 ‘고양이’와 같은 유니크한 곡들을 들을 수 없었다. (그 이유를 깨닫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팬 서비스 시간이 끝나자 하덕규는 객석을 한번 둘러보더니 “많이 와주셨네요”라는 의례적인 인사말을 하고 이어 “80년대에는 모두 소년 소녀였는데…”라는 말을 덧붙이고야 말았다. 흑 ~ 그리고 시인과 촌장 이후의 노래들이 이어졌다. 이 시간… 하덕규 집사님을 찾아온 이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겠지만, 서울 밤하늘에 뻘겋게 떠있는 십자가를 보는 순간 하모 작가 소설의 한 구절을 저절로 떠올리는 나에게는 고문(–+)의 시간이었다. (그럴줄 모르고 그 자리에 갔느냐고 누군가 반문한다면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그 정도일 줄은 몰랐다’고 한다면 변명이 되려나?) 그에게는 절절한 영적 고백이었을 법한 ‘쉼’의 생경함은 특히나 껄끄러웠다. 곰곰 생각해 보니 “쉼”이라는 곡… 나온 지는 꽤 된 노래같은데 제대로 들은 것이 그때 그 자리가 처음이었다. 아무튼 2부는 최근에 파문(?)을 일으킨 조모 가수의 가시나무에 대한 원작자의 변(?)을 술회하고 원곡을 연주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내가 조 모 가수보다 더 잘 부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라며 그답지 않은 멘트를 하는 것으로 보아 꽤나 심기가 불편했던 듯하다. 허긴 그럴만도 하겠다. 객석은 다시 시간 여행 분위기. 배배 꼬여가던 심기도 조금씩 풀여졌다. 따지고 보면 시인과 촌장 이름으로 발표되었던 음반이나 이후 종교적 색채를 분명히 한 음반이나 ‘굳건한 믿음’를 기반으로 하기는 매한가지다. 초창기 음반이야 어지러운 그의 내적 여정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있고 때로는 탐미적 분위기마저 드러나므로 논외로 하더라도… 그러나 너무도 확연한 느낌의 차이는… 뭐랄까… 오랜 기다림과 지리한 우회로의 끝에서 대면한 자아조차 관조할 수 있었던 거리 바로 그 거리의 부재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어디엔가, 무엇엔가 골몰한다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지만 타인이 느낄 몫을 빼앗아 버리는 법이다. 이러한 느낌은 신곡을 본격적으로 소개한 3부에도 지속되었다. 사운드의 출력은 높아졌지만 그리고 세상으로 탈출하려는 언어는 분주해졌지만 ‘인간다움’을 반복하는 그의 목소리는 아픔을, 번민을 그대로 보여줄 때보다 힘이 빠져보였다. 번다한 말과 공허함 사이의 간극은 이 세상이 인간다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죄악에 가득해서일까? 억쎄게 회개해야할 그 무엇이 너무도 많기 때문일까? 그는 너무나 평온했고 때로는 확신에 찬 사도의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정작 그의 음악은 쏟아져 나오는 말씀을 감당하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있었다. [Monster]를 낸 REM은 ‘고출력 신 모험’을 거쳐 원래의 음악 어법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불멸의 히트곡 “사랑일기”의 여운을 간직하고 공연장을 나서는 나는 시인과 촌장을 당분간 80년대라는 시간 속에 묶어 두기로 했다. 20000316 | 박애경 ara21@nownuri.net 관련 사이트 시인과 촌장 공식 홈페이지 http://poet.jags-media.com/ 하덕규 홈페이지 http://gong.snu.ac.kr/~onpetra/